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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한옥마을에서 선보인 “언니들의 국악”

7월 10일,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 가운데 남산골한옥마을을 찾았다. “언니들의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획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언니’라는 단어와 ‘국악’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끌릴 수밖에 없었다. 모성에 기대는 기획의도 소개는 조금 갸우뚱했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또 국악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는 점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시간이 맞으면서 관심이 닿아 있는 <창작 판소리 장태봉> (이하 <장태봉>)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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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산국악당 입구. 공연장은 지하에 있다.

 

<장태봉>은 극 중 등장하는 놀부의 아내 이름이다. 소리꾼 박민정을 주축으로 한 ‘손손손 프로젝트’의 작품으로, “흥보가”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현재의 시점과 맞아 떨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흥부와 놀부의 아내를 동일 인물화하여 흥미로움을 만드는 동시에 이중적인 면모들을 잘 섞어낸다. 그래서 흥보가의 눈대목도 살짝 들리고,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기반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장태봉>은 장태봉이라는 허구의 주인공이 자신의 자식들과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용은 웃기지만, 마음 놓고 웃을 수는 없는 이야기들이다.
 
장태봉의 이야기는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쓸 때가 언제인가’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는 가부장적 아버지, 가정 폭력, 학교 폭력, 낙태 문제 등 복잡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상황이 현재의 문제인 만큼 현재 시점에 쓰는 단어나 표현을 가져오기도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웃음을 주기도 한다. 더불어 장태봉이라는 사람이 가진 긍정적이고 따뜻한 매력은 이야기를 최대한 밝게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장태봉에게는 총 열 명의 자식이 있지만, 이 중 첫째부터 넷째까지가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극은 놀부가 하던 나쁜 짓을 그대로 하다 범죄자가 되어버린 경우, 매질을 사랑의 표현이라 배워 친구를 때려죽인 경우 등 놀부의 자식들이 가졌을 법한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는가 하면, 놀부가 어떻게 흥부가 될 수 있었는지 만드는 전개를 통해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계속 소리를 보고 듣는 과정에서 복잡한 마음이 생겨났고, 장태봉이라는 주인공과 함께 공감 이상의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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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이 진행한 박민정 씨와의 5문 5답 중에서 ⓒ 남산골 한옥마을 페이스북

 

위에서 말했듯, <장태봉>은 마냥 우울하거나 어둡고 무거운 것은 아니다. 극 내내 등장하는 깨알 같은 재미와 소품은 웃음을 주고, 대부 OST를 살짝 연주한다거나 효과음, 배경음 등의 배치는 마음의 여유와 웃음을 이끈다. 이러한 음악은 국악 악기와 멜로디언 퍼커션 등이 함께 섞여서 연주되는데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고수 또한 조연부터 코러스의 역할까지 해내며 꽉 찬 무대를 만들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심플하면서도 다 갖추고 있던 무대 장치와 조명 역시 좋았다. 무엇보다 장태봉이라는 사람이 가진 귀여움, 슬픔, 씩씩함 등 수많은 감정선을 연기하는 박민정의 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착한 언어라는 표현이 이상하지만, 어쨌든 잘 만들어진 판소리를 하는 데 있어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굉장했다.
 
작품은 하나의 스토리를 잘 엮어내었으며 전체적인 리듬 또한 좋았다. 개별 갈래의 곡이나 표현도 모두 좋았다. 이렇게 칭찬만 하는 이유는 그만큼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판소리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 있지만(링크), 소리꾼 이자람이 이야기한 것처럼 판소리에 있어 중요한 것은 ‘현대화’가 아닌 ‘현재화’다. 그런 의미에서 사천가는 (거의) 최초의 시도였지만 한승석, 정재일이 선보였던 국악밴드 푸리의 적벽가나 “바리abandoned”처럼 여러 변형과 재해석은 모두 판소리가 그 자체로 남아야 할 유산임을 넘어서 하나의 장르 혹은 문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태봉> 역시 현재화를 기가 막히게 해낸 하나의 작품이고,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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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 내에 걸려있는 포스터. 정원이 가까이에 있다.

현재화 작업이라는 것은 이야기 차원에서, 그리고 그걸 풀어내는 방법의 차원에서 많은 논의가 오갈 것 같다. <장태봉> 역시 잘 들리고 또 잘 표현되는 선에서 꾸려낸 작품이다. <창작판소리 장태봉>은 2015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이며, 지난 해 10월 먼저 공연이 열렸던 바 있다. 아직 두 차례의 공연만이 열렸기에, 또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다섯 채의 한옥과 국악당, 전통정원,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간이며 충무로역 근처에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예술공간을 표방하며, 각종 공연프로그램 및 체험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한다. 지난 봄 기간에는 “안뜰 콘서트”라고 하여 인디 음악가들의 무료 공연이 수요일 점심 시간에 있기도 했다. 더운 여름이기에 공연을 보러 가는 데 집중했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면 천천히 둘러보며 정취를 즐길 예정이다.

글/사진. 블럭(blucshak@gmail.com)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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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도 역사입니다.

1 Comment
  1. Avatar
    손상희

    2015년 7월 21일 02:39

    연출한 손상희라고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업자들 같이 돌려보고 있어요.
    저희에게 아주 큰 힘을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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