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행선 열차를 타러 내려가면, 호주가 보였다.

집에 가는 길에 마주친 호주 광고는 호주 따위에 관심 없던 사람도 호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호주에 가면 일상이 좀 더 나아질까? “요새 호주 광고 카피가 ‘당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곳,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곳, 호주’다. 다양한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웃음).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다, 사람이 몇 시간 일할 수 있는가? 땡볕에 몇 시간 서 있으면 탈수증이 오는가?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으니까.” 정진아 작가가 말했다. 그는 일상이 나아졌다는 표현 대신 일상이 달라졌다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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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책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를 펴냈다. 작가가 2009-10년에 겪었던 호주에서의 10개월을 기록한 책이다. 겉으로는 분명 정보서지만 속을 펴보면 이 책의 카테고리를 정하기가 애매하다. 워홀 정보서라 하기엔 극적이고, 여행기라 하기엔 이국의 환상이나 방랑자의 낭만이 적다. 고민하다, 이것을 르포 카테고리에 넣기로 했다. 얼핏 보면 타겟 독자가 명확한 워홀 가이드북일지 몰라도 이는 분명 멀리서 바라본 우리가 사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인터뷰가 끝나는 순간, 그 생각은 옳은 결정이 되었다. 

호주 워홀을 가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뭐였나?

회사 잘린 게 결정적이었던 거 같다. 인턴을 3개월하고 정규직으로 넘어갈 때 회사 사정으로 직원들이 나가게 됐다. 인턴 쪼무래기(웃음)가 ‘저는 남아있겠습니다’ 할 수 없는 거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들 중에서도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그만둔 친구도 있고, 취직 준비하다가 잘 안되어서 온 친구들도 있었다. 요즘에 가시는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외부적 요인이 가장 큰 계기였나보다.

나는 그렇다. 근데 말하기에,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는 회사 잘리고 갈 데가 없어서 갔어.’ 이럴 수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목적을 위해서 갔어’라고 하신다. 요즘 자기계발서 너무 많아지니까, 제일 먼저 그렇게 말한다. 그거 정말 진심일 거다. 근데 그 이유와 더불어서 현실적인 상황들, 자기가 준비했던 게 계속 안되고 좌절하는 상황들이 같이 맞물려지는 거다.

 

“어쨌든 한국에서 몇 번의 실패를 겪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가서 친구들하고 공감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치사하고 더러운 일을 겪었는가 이런 말을 하면 금방 친해지거든요.”

 

왜 하필 호주 워홀이었나?
 
급하게 준비하려 했으니까 빨리 간단하게 발급되는 비자가 필요했는데 호주가 가장 조건이 없었다. 호주는 진짜 몸뚱어리 하나, 신체검사 증명서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이름, 주소, 나이 쓰고 클릭하면 몇 일있다가 확인메일이 온다. 그 메일을 출력해서 들고 가면 바로 입국이 된다.

 

“(딸기 농장의) 작업의 강도가 궁금한 사람은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굽혀 손끝을 바닥에 닿게 하고 1분만 참아 보면 된다.”
-3장 ‘농장으로 떠나다’ 중에서

 

읽다가 중간중간 조언이나 묘사가 굉장히 꼼꼼해서 읽으면서 작가가 ‘사려 깊은 사람이구나ー’라고 느꼈다.

 

책이 일기에 기초해서 출판됐다. 일기 분량이 엄청 많았다. 화나서 썼던 남 욕(웃음)은 드러내고 정보성 글을 넣는 식으로 바뀐 부분도 있지만. 그때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쓰려 했다. 정신 안 차리고 멍하니 있으면 시간이 막 지나가 버리니까. 더 시간을 쪼개서 기억하려 했다. 심심했기도 하고(웃음).

 

한국에서도 일기 자주 썼나?

 

10년 동안 한 권 썼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처음엔 해외여행 처음 가는 사람의 설렘으로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렸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 힘들어서 사진을 찍든 좋아서 사진을 찍든 ‘와ー 외국이다. 좋을 것이다’ 이렇게 짐작을 하고 댓글을 남긴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있더라. ‘자아를 찾고 있네, 대자연을 보면서 견문을 넓히고 있네’ 이런 것들. 관심이 좋으니까 그에 부응하면서 글을 쓰려다가 그게 핵심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 끊고 아무 데도 안 올리고, 사실 그대로 써보자 하고.

 

책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이 그거였다. 한국 교민들이 악덕 업주로 유명하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일본, 베트남 등등도 한인업소랑 시급이 비슷하게 낮다니.

 

다른 나라 사람이 업주인데도 가보니 다를 바가 없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서로를 등쳐 먹으니까’ 식의 민족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등 시민, 즉 시민권을 가진 백인 시민들이 있고, 그들의 복지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한 공산품이나 서비스업을 제공하기 위한 2등 시민들이 밑에 쫙 있는 거다. 이민자들이 바닥에 있는 노동을 전부 담당하고 있는 거다.

 

언제 그런 구조를 직접적으로 느꼈나?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일할 때 소방점검으로 전 직원이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유니폼을 보면 어느 업소에서 일하고 어떤 직급이고 이런 게 대충 보인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분들이 관리자 직급에 쫙 계셨다. 관리자가 높은 관리자가 아니라 청소나 물류 운송하는 분들의 관리자다. 식당 쪽에 아시아 사람들이 있었고. ‘이 쇼핑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호주 백인들인데, 이 쇼핑센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구나, 이게 되게 민족적으로 구성돼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굉장히 이상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우리도 갈수록 업종별로 일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묶이는 경향들이 있지 않을까. 마트만 가도 계산하시는 분들이 성별과 연령대가 비슷해진다.

 

“내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것이 사실은 나와 똑같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워킹으로 일하면서 깨달았다.” 
– 에필로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중에서

 

 
호주에서 노동자의 시선,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바라보는 시선을 얻은 것 같다. 호주 워홀 가기 전에도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들었다. 왜 호주에 가서야 그 시선을 얻은 것 같은지?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알바는 다들 하니까 ‘나는 학생이다. 나중에 졸업하면 정식의 직장을 가질 거고, 지금은 학생의 위치에서 보조적으로 일을 살짝 하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학생’은 신분이니까. 상황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신분 자체만으로 지위가 결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호주에 갔을 때 나는 학생이 아니었다. 아예 나는 노동자고, 그게 나의 신분이었다. 근본적인 신분이 변화한다는 것은 엄청 달랐다. 무례한 대우를 많이 받다 보면 ‘이게 뭐지 신분이 너무 많은 걸 결정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뉴스가 아니라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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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알바하나?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워홀 때랑 하는 일이 달라지니, 그때 호주에서 느꼈던 생각들이 흐려지는 느낌도 있겠다.

 

‘안 보면 안 볼 수 있겠다. 모르면 정말 모르고 살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일할 때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일 때는 동료들을 존중한다. 서로 관리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손님이 왕이야’하고 진상 안 부린다. 경주마 눈가리개 끼듯, 신경 안 쓰면 내가 호주에서 살았던 그런 생활을,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면 모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러면 나도 편하고. 그런데 이런 삶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게 아니고, 내가 노력을 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라는 걸 아니까, 좋으면서 안 좋다. 기분이 복합적으로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런 생각들을 유지하려는 거 같다.

 

맞다. 그런 게 중요한 거 같다. 책 말미에 ‘사회적인 안전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워홀 제도만이 아니라 일하는 환경 전반에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근데 사실 그건 반쪽짜리 결론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있으면 법이 보호하는 것들, 예를들어 최저시급이나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으면 분명 좋은 거다. 그런데 그렇다고 노동강도가 높은 직업은 사라지진 않는다. 그것까지 고려하면 나도 온전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경찰들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호주가 우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사람들을,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호주에 머물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 4장 ‘우리는 모두 이주 노동자인 걸’ 중에서 

 

농장에서 도난사고를 겪고 나서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정을 한다. 책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던데, 그 때의 심정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다.

 

책을 크게 시티(도심시역)와 농장, 두 파트로 나눴다. 시티에서 농장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나도 사람들이 보이는 데서 살아야겠다’였다. 구석에 있고, 제도적으로 아무 보장도 못 받으니까 농장에서 몸이 괴로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농장에서 막상 가보니 나는 거기에서도 가려지더라. 도시에서는 내가 호주인 밑에 있는 한국인들, 그 계층 안에서도 밑에 있는 노동자니까, 한국 사람들이 나빠서 부당한 대우를 받나라는 생각이었었다. 그런데 오히려 농장에서 한국인, 한국인 업소들이 아예 없어지니 호주 사회 피라미드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도난사고 때문에 경찰이 왔을 때, 농장주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숨겼다. 그걸 보면서 ‘나는 숨겨지는 존재가 맞구나. 인종이나 민족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피라미드 맨 밑에 있어서 제도든 법이든 아무런 적용이 안 되는구나. 그럼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무력함을 느꼈다. 도시에서는 내가 노력하면 되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지내는 내내 이력서를 계속 넣었는데 호주인 업소에서는 한군데에서도 연락이 안 왔다. 그래서 농장에 가면 노력할 여지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이 딱 막혀있어서 그렇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그렇게 호주에서 돌아오고 나서는 뭘 했나?

 

히키코모리처럼 몇 달을 살았다. ‘이거는 그야말로 대실패다.’ 이렇게 자신감이 되게 없었다. 노력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됐으니까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책을 내려고 하면서 많은 워홀 분들을 인터뷰 했는데, 이런 얘기를 나중에 용기 내서 해도 ‘제대로 못해서 그런거지, 난 잘했는데?’하고 나가시더라. 들어보면 잘한 거 같지도 않은데(웃음). 그 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잘 재구성해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잘 하신 거 같은데, 나는 그걸 잘 못했다.

 

실제로도 기존의 많은 워홀책들이 자신의 경험을 미화하는 것 같다. 때문에 그에 못따라가면 자연스레 열등감도 느낄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다. 지금도 ‘내가 잘 못했나?’라는 생각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혹자는, 그때 날 알았던 사람들은 ‘가서 고생한 게 뭐가 자랑이라고 떠들고 다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맞을 수 있다. 근데 뭐랄까. 이 제도 자체가 누구나 다 노력해서 100% 성공할 수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 실패할 수 없는 구조라니?
워홀로 3만 명이 나간다. 그들의 목적이 ‘최저임금의 절반만 받아도 된다, 일만 해서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하면 된다’면 이 제도가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워킹’과 ‘홀리데이’를 하려고 나간 사람들이 3만 명인 거다. 그렇게 매년 통계가 잡히는데 현지에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전혀 없다. 정규직의,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는 정상적인 업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력이 점점 줄어들고, 일자리가 없으니 한인 업소들로 많이 빨려들어 간다. 그쪽은 또 공급이 과잉이니까 노동환경이 계속 낮아진다. 수용이 안 되면 인원을 줄이는 게 맞는데, 정부에서는 여전히 인원제한 하지 않고 ‘갈 테면 다 가라’ 이런 식으로 가고 있다.

 

최근에 대법원에서 이주노동자 노조를 인정했더라. 그걸 보면서 워홀도 관련된 노조가 생길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나도 소리를 집약해서 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워홀 비자는 평생에 딱 1년만 가능해서 갔다 온 사람들은 ‘나는 이제 끝났는데’ 하기 쉬울 거고, 가기 전에 사람들은 ‘1년밖에 안 되는데 노조활동해?’ 이렇게 말하는 문제가 있을 거다. 호주 정부도 노동 단속을 제대로 안 하고 이중적인 법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하는데 그건 또 외국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고. 생겼으면 좋겠지만 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압박줄 수 있을 정도의 여론만 형성되면 좋겠다.

 

어쨌든 요새 워홀 관련 문제가 조금씩 얘기되고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웃음), 여성영화제에서도 워홀 관련 다큐가 나오고. 이렇게 일단 먼저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특히 갔다 오신 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을 떠나 팩트 자체를 많이 얘기해야 한다. 책 출판하려면서 만났던 워홀러 분들이 많이들 ‘나는 워홀이 많이 도움이 됐는데 이게 문제다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 마음 뭔지는 알겠는데 그러면 워홀 문제들이 계속 숨겨진다. 정부도 워홀이 일해서 여행비 벌어서 영어 배우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 지금 현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저렴한 노동력으로 충당하기 위한 제도라는 걸 알아야 된다.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 가는 소설. 신기하게도 두 책은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었다)’ 중에서

 

 
약간 분위기를 바꿔서 질문하겠다. 그래도 ‘호주가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이 있을까?

 

나는 이게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호주에 있을 때 친구들이 ‘호주는 차별이 없다’고 많이 그랬다. 한국에서는 부모의 재력, 학력, 성별에 등에 따른 차별이 많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같이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는 거다. 이게 되게 슬픈(?) 말인데 맞긴 하다.

 

호주로 떠난 2009년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선택을 할까?

 

늘 대답이 바뀌지만, 만약에 나라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 바뀌면 똑같을 거 같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리고 다녀와서 인생의 방향이나 시선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는 마지막으로 “워홀 가지 말라고 말리는 책을 쓴 건 아니다(웃음)”라고 말했다. “가시는 분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시라고 쓴 거다. 용기를 낸다는 건,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또 그래야 나처럼 ‘내가 문제’라고 열등감을 안 느낄 수 있다.”

 

그가 워홀에서 발견한 건 ‘자아’가 아니라 자아가 놓인 ‘사회’였다. 사회의 전체 그림은 보이는 이들뿐만 아니라 숨겨진 이들까지 보아야 완성될 수 있었다. 게다가 호주에서 느꼈던 사회의 피라미드는 비단 호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문득 ‘한국이 싫어서’ 혹은 ‘한국에서는 글러서’ 타국으로 떠날 수 있다. 도착한 타국. 여행자의 입장에선 보이지 않은 노동자, 거리의 빈민들조차 감성적인 사진 배경이 된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여행자라는 지위는 오래 갖고 있을 수 없다. 발을 붙이기로 결정한 이상,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 “눈가리개 끼듯” 사회 전체 모습을 안 보려는 것보단, 끊임없이 자각하는 것이 ‘나’와 ‘우리’에게 좋은 사회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정진아 작가의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는 워홀 가이드인 동시엔 사회 가이드라고 칭해야겠다.

 

 
인터뷰/사진. 릴리슈슈(kan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