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최저임금 인상 운동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해외 최저임금 운동의 성공 사례들이 계속해서 보도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의 최저임금 인상 운동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겨우 450원 올랐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시간 일하면 올해보다 450원 더 받는다. 내년에는 맑스돌이 “이런 시급, 쬐끔 ‘더’ 올랐어요!”라고 할지 모르겠다.

비록 뱀의 꼬리로 끝나긴 했지만, 용의 머리로 시작되었던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용의 꼬리로 이어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던 한 근로자위원을 고함20이 만나보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근로자위원으로 처음 위촉되었고, 최초로 청년들의 노동을 대표하는 위원이며, 임금협상이 지속되는 내내 SNS를 통해 안에서의 상황을 밖에 있는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했던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민수(25)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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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바몬 광고, ‘알바가 갑’이라고 한 광고모델 혜리에게는 ‘맑스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청년유니온, 최저임금 위원회에 입성하다

청년유니온이 출범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잡은 목표가 바로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었다. ‘①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②최저임금을 지켜야 한다 ③ 최저임금 협상에 당사자가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3가지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목표 중 하나가 올해 이루어졌다. 청년유니온 위원장인 김민수 씨가 양대 노총(민주노총, 한국노총)의 추천을 받아 제10대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다. 최저임금의 커다란 수혜자인 청년들의 ‘당사자성’이 인정되었다. 그렇기에 청년단체 또한 직접 최저임금협상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논의가 이루어졌고, 청년의 임금에 대해 청년이 비로소 목소리를 낼 순간이 온 것이다.

“부담감이 굉장히 컸죠.” 최저임금 위원회에 참여하기 전 김민수 씨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활동을 해왔지만 중앙정부 단위 수준에서 교섭 경험은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다른 위원으로부터 얕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청년 조합원 1500명의, 넓게는 청년 근로자의 대표였다. 자료를 준비하고 위원들과 토론하고 최저임금 협상에 참여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대표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다른 근로자 위원들보다도 더 간절한 심정이었다. 그 자신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근로자 위원으로 참여했던 홈플러스 노동조합 본부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식구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최저임금의 당사자죠.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긴장감이 있었어요.” 같은 근로자 위원이라도 최저임금의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위원은 기준선이 달랐다. 각기의 입장과 관점을 절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근로자 위원들과 어떻게 협상에 들어가야 할지,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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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위원 VS 노동자위원

“어린 놈이!” 사용자 위원이 근로자 위원 중 한 명을 겨냥해 던진 말이다. 이 ‘막말 논란’에 사람들은 ‘어린 놈’의 정체가 김 대표라고 생각했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그건 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70대의 사용자 위원이 40대 근로자 위원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는 그 상황은 아주 일부일 뿐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도 처음에 사용자 위원들이 제가 어리다고 해서 예의 없는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정중했어요.” 김민수 씨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청년유니온이라는 단체와 노조원의 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다. 아무도 그가 어리다고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용자위원들이 청년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린 놈들’ 그 자체였다. “청년들의 노동을 단순 용돈벌이,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사용자위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그들이 청년들, 더 나아가 청년들의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적잖이 상처도 받았다. 청년의 노동이 결국 그 정도 가치로 폄하되는데, 최저임금에 대한 청년들의 주장이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사용자위원들과 근로자위원들 간의 치열한 토론과 협의 과정이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대표적으로 *최저임금의 시급과 월급 병기 안을 놓고 사용자위원들이 강력하게 반대를 할 때였다. ‘솔직히 왜 이걸 가지고 그렇게 반대를 하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머리로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협상장 안에서는 노사 간의 정치적 유불리 또한 따질 수밖에 없다.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은 제도 안에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다.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 법률과 제도를 합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급 병기 문제는 결국 합의 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 최저임금 시급 월급 병기 안 :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시급은 물론 월급으로도 명시해 ‘주말 휴일수당’을 제대로 못 받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영계는 이러한 주장이 개별 업종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사용자위원들은 병기 안에 합의할 수 없다며 전원 퇴장하기도 하였다. 결국 사용자위원의 양보로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우선 시급으로 정하되, 월 환산액을 병기하기로 했다.

6,030원, 하지만 내년엔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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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 페이스북 / 10차 전원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용자위원은 기존 최저임금에서 30원 인상안 5,610원을 들고 나왔다

위원회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최저임금을 결정할 일만 남았다. 물론 그 과정도 끝까지 순탄치는 않았다. 사용자위원들과 근로자위원들 사이의 최저임금을 둘러싼 양보 없는 줄다리기였고, 결국 칼자루는 공익위원들에게 돌아갔다.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심의 촉진구간을 5580원에서 6.5%~9.7% 인상한 5940원에서 6120원으로 제시했다. 노동자위원들이 항의하며 모두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앞서 노동계는 3차 수정안으로 기존 안보다 100원 낮춘 8100원을, 경영계는 70원을 올린 5715원을 제안했었다.

김 위원장의 입장은 어땠을까? 그는 “근로자위원들 중 나가자는 쪽이 다수였는데, 나는 솔직히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쪽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노동계가 제시했던 금액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구간이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협상할 여지가 남아있었다. “끝까지 남아서 책임 있게 협상을 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동자위원들과 함께 퇴장하면서도 걱정이 컸죠.”

상황이 이쯤 되자 최저임금이 6000원도 넘지 못할까 불안해졌다. 사용자 위원들 중에서도 특히 소상공인 위원과 중소기업 위원들 사이에서 6000원 선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나왔다. 사회적으로 6,000원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다간 그것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진통 끝에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되었을 때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우리가 목표했던 액수보다는 터무니없이 낮기는 하지만 그래도 6,000원을 넘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거죠.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 다음에는 ‘아쉽다’는 감정이 밀려왔다. 근로자위원들은 서로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며 위로를 했다. 그러나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지 않은 사람들은 화가 날 수 있어요. 어떻게 450원밖에 오르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우리와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함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어요. 우리가 노력하고 애쓴 것을 아니까.”

그러나 ‘안타까움’이 ‘절망’이나 ‘포기’의 동의어는 아니다. “다음이 없는 상태가 절망스러운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내년, 그리고 내후년의 최저임금위원회가 남아있어요.” 내년에 두고 보자는 그의 다짐이었다.

 

그들이 이룬 것들

아쉬움은 남았지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저임금의 시급과 월급 병기와 함께 최저임금 위원회 회의록을 회의가 있는 날마다 공개하게 되었다. 회의록 공개는 김 위원장에게 가장 절실한 사안이기도 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수정안이 얼마나 나왔는지, 그리고 그 금액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잘 알지 못해요. 이렇게 되면 싸움을 같이 만드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회의장 안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다양한 토론들이 이루어지는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듣는 것은 단순히 ‘사용자 위원이 얼마를 냈다’, ‘근로자 위원들이 얼마를 냈다’와 같은 정보들뿐이었죠.” 그는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은 위원회 안의 논의 과정을 상세하게 들여다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회의록 공개’는 앞으로 최저임금인상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또 하나의 성과는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확인한 것이었다. “길거리에 나가서 캠페인을 하면 5년 전에 최저임금 캠페인 할 때와 분위기가 확실히 많이 달라요. 예전에는 최저임금이 무엇이고, 왜 인상을 해야 하는지 등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죠.”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고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대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도중 사무실 옆 보드를 가리켰다. 위원회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보낸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회적으로 최저임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고 우리의 행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그것이 이번 최저임금 위원회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요?”

 

인터뷰/정리: 베르다드(qwerty9254@naver.com), 상습범(bis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