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앞서 청년연구소 [구태의연한 청년 담론, 빈곤 청년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에서는 논문 <청춘 밖의 청춘, 그들의 성인기 이행과 자아정체성-빈곤 청년을 대상으로>을 바탕으로, 가정․학교․노동의 차원에서 빈곤 청년의 환경적 특징을 담았다. 그들은 빈곤한 경제상황 때문에 일찍부터 생계를 부담하고, 가족관계를 재구성하며,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더 쏟고, 노동현장에서 저임금과 착취를 당하는 청년기를 보낸다. 그 결과 빈곤 청년들이 일반적 청년들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성인기로 이행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번 청년연구소는 같은 논문을 통해 빈곤계층 청년들의 자아정체성 특징을 살펴본다.

 

 

일상적인 차별과 배제, ‘아웃사이더’라는 정체성

 

빈곤 청년들은 노동시장이나 진학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한다. 가정환경과 개인 사정 때문에 중졸 학력을 가진 박수정(여, 28세)은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해야만 하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고 말한다. “남들은 이런 거 쓰잖아요. 누구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근데 그런 거 못쓰잖아요. 최대한 좋게 써야 되는데, 나는 뭐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매일 맞고 힘들게 자랐다고 쓸 수 없잖아요.” 그녀에게 어려서부터 이런 경험은 일관되고 지속적이다.

 

빈곤계층 청년들은 일상적으로 배제와 차별을 경험한다. 엄마가 없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임대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승차거부를 당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적인 시선은 자신의 상황과 존재에 대해 자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또한 ‘한 부모 가정’, ‘수급권자’, ‘임대주택 거주자’ 등 사회 정책적 담론은 그들에게 아웃사이더’라는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자각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복지정책 자체가 이들을 폐쇄적인 주체로 호명되게 하는 것이다.

 

 

전략으로서 ‘도덕적 성인’이라는 정체성

 

논문에서 25명의 빈곤 청년들은 ‘성인됨’에 대한 표상을 매우 도덕적인 단어들로 구성한다. 우선 ‘성인됨’에 대한 주관적 인식에는 각자 차이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 중에 하나는 이들 모두 ‘아직 성인이 아니다’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세계 면면을 보면 성인 못지않은 경제적 책무와 사회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성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빈곤계층 청년들의 객관적 조건과 자아에 대한 주관적 인식 간의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모순된 정체성을 표현한다.

 

이들이 표상하는 성인됨의 기준은 ‘책임감’, ‘배려’, ‘의무감’, ‘이해심’, ‘인내심’, ‘고민’, ‘포용력’ 등이다. 예를 들어 “나이가 많다고 어른은 아니”며 “매너 있고, 성실하고, 잘 챙겨주고, 다정다감하고 그런 사람” 또는 “태풍 불어도 휘청거리지 않을 정도로 꼿꼿하고 곧은 사람”이다. 저자는 이를 “성인됨의 기준이 심미적 가치보다는 도덕적 혹은 규범적 가치로 판단함으로써 구성된 결과”로 분석한다. 이들에게 성인됨의 정체성은 ‘자율성’, ‘창조성’, ‘혁신성’보다는 ‘올바름’이라는 도덕성이다. 이유는 청년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빈곤함은 사회적 순응이나 적응에 필요한 도덕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조승구(가명)曰 “솔직히 막막하죠. 현재로썬 아무것도 없는 상태고, 지금 하는 거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자신의)인생을 봤을 때, 아마 잔잔하게 끝날 거 같아요.”

이연희(가명)曰 “지금 상황에서 나아지게 해달라고 그런 건 없는데, 돈이 없건 적건 같은 대우였으면 좋겠어요.”

유지혜(가명)曰 “(사회의 역할에 대해) 부유한 계층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리게 해줄 순 없겠지만, 쫌 질적으로 다르더라도 양적인 건 어느 정도는 채워줘야 되지 않나. 우리나라 정부나 외부기관에서 해주는 건 사실 되게 공치사하는 게 되게 많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것들이 아이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하고, 뭐 표면적으로만 보여주는 그런 것이 많은 것 같아서, 사실 쓸모없는 것들도 좀 많은 것 같아요.”

 

응답자들은 대체로 사회 현실에 대해 불신, 회의, 체념 등과 같은 감정을 표출했다. 더불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전망이 밝지 않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객관적 현실을 간파하고 있지만, 이를 돌파할 사회적 자원의 부재 또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고, 등록금 부담, 학력차별, 취업난 등 삶에 기본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살아남는 능력’일 뿐이다. 생존 능력조차 갖기 힘든 현실 앞에서 빈곤 청년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꿈을 갖거나 온전한 성인으로서의 표상을 구축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이 지닌 ‘성인됨’에 대한 표상은 “필요노동과 적응 및 순응에 요구되는 능력”이다. 즉 책임감, 인내심, 포용력, 배려 등을 포괄하는 ‘올바름’이다.

 

BN-GP883_LAB_il_G_20150126115808

ⓒ월스트리트저널

 

빈곤 청년들의 사회적 탄력성을 높이자

 

살펴본 바와 같이, 청년 일반의 삶에 비해 빈곤계층 청년들은 몇 가지 차원에서 이른 성인기를 경험해왔다고 볼 수 있다. ‘성인’으로서의 자아정체성 또한 일정 정도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준(準) 성인에 가까운 역할을 반(半) 강제적으로 부여받고, 학교에서는 일반적인 학생의 표상에서 벗어난 ‘학생’으로 취급받으며, 이른 나이부터 노동시장에 참여하지만 경제적 독립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불안정한 노동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이들의 자아정체성은 빈곤한 경제상황, 가정해체, 차별, 노동착취 등 다양한 굴곡을 거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성인기 이행은 순조롭지 않다. 빈곤 청년들은 주관적인 차원에서는 성인기 이행이 빨리 진행되지만(애어른의 예처럼), 객관적인 차원에서는 성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는 ‘비동시성’을 경험한다. 그 결과 이들은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의지는 강하지만, 불안정한 독립에 머물 수밖에 없고, 일상생활에서는 성인 역할이 기대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다.

 

논문에서 인터뷰한 빈곤 청년들은 ‘구조적 제약’과 ‘개인의 자발적 선택’ 사이에서 끊임없이 경합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곤경이나 역경을 잘 극복함으로써 내성을 기르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자원을 획득함으로써 이전보다 좀 더 역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 청년들은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비롯된 제약이 많기 때문에 탄력성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경제적 조건을 높여줄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논문은 이를 “빈곤청년들의 탄력성에 관한 논의”라고 정의하며, 사회적 뒷받침이 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글. 아호(9208kjh@hanmail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