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 빙하기 시대다. 차갑게 얼어붙은 고용 시장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정책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의가 첨예하지만, 청년들이 체감온도는 여전히 낮다. 빙하 위에 서 있는 청년들은 세상이 따뜻해지기만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시트콤 대사도 있지 않은가.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5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청년 실업에 대한 해결책은 청년들 각자의 ‘철저한 준비’로 남겨졌다. 우리는 부단히 손발을 움직여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뿔싸! ‘뭐라도 할 수 있는 상황’조차 특권인 시대가 돼버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서울은 말 그대로 ‘특별시’다. 일생의 과업인 취업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서울 공화국에서 지방 청년들의 발걸음은 서울로 향한다. 취업 준비를 하거나 혹은 그곳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사회가 만든 서울 중심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청년들 개인의 노력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더욱이 그들은 개인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서울에 대립하는 이분법 구도에서 지방은 ‘특별하지 않은’ 또는 ‘뒤떨어지는’ 맥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시선의 끝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희망하는 직종을 정하고, 준비를 하여 필기(인적성)와 면접을 보기까지. 일반적인 취업의 단계를 세분화하여 다섯 명의 인터뷰를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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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자기검열 표류기> #창원_김수희_24세

“스스로 묻는다. 과연 이 학벌로 취업할 수 있을까?”

 

대학에서 배운 게 세무·회계가 전부라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4학년 1학기가 끝나니 취업이라는 막연한 미래가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 현실 안에서 나는 습관처럼 취업카페에 들어가고, 검색어를 입력한다. “지방대”, “지방대 은행”, “지방대 금융권”… 취업에 앞서 나를 검열하게 만드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지방대라는 꼬리표다.

 

평상시에도 스스로 지방대생임을 자각하며 산 건 아니다. 취업을 앞두고 비로소 지방대에 다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정확히는 나를 바라보는 사회의 눈을 인식하게 된다. 취업 시장에서 출신 대학교는 나의 상품가치를 결정한다. 고등학교 교실에 붙어있는 대학배치표의 서열은 취업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 안에서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이름이 없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교 밑부터는 통틀어 그냥 ‘지잡대’로 불리기 때문이다. 지역 금융권 기업은 서울권 대학에서 내려온 혹은 지거국 출신 취준생들의 몫이다.

학력 차별은 부당하지만 출구는 찾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지방대’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능할까?’ 식의 글이 많다.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방출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을 보며 안일한 위로를 얻는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댓글로 달리는 조언을 읽는다.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생활하고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혹은 ‘학벌을 뛰어넘을 스펙을 만들어라’로 나뉜다. 나를 드러내는 이름(대학)이 남들보다 부족한 상태니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의문이 든다. 정말 모든 결과는 내가 하기에 달린 걸까? 과연 학벌을 뛰어넘을 만한 스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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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만 명의 회원을 가진 취업 커뮤니티에 ‘지방대’를 검색한다.
“지방대도 가능할까요?” “지방대라도…” “지방대라는 게 발목을 잡을까요? 라는 제목이 보인다.

 

<서울 스펙 상경 생활기> #청주_강일구_26세

“서울에 와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들”

 

서울로 오게 된 건 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사회의 어떤 문제들도 청주를 빗겨나가는 것 같았다. 청년과 관련된 주거, 등록금 문제도 피상적으로 느껴졌다. 장학금을 받으며 부모님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항상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있으면서 과연 기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최전선에서 보고 싶었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공부할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가끔 외로울 때는 고향이 그립지만, 나는 서울이 좋다. 청주에서 할 수 없었던, 서울에 와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들 때문이다. 학교도,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는 청주에 흔하지 않다. 시민단체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길이 없었고, 학내 언론사 활동을 빼면 ‘기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도 없다. 지금은 참여연대에서 인턴을 하며, 20대 독립 언론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두 단체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뜻을 펼치는 수많은 청년이 있다.

하지만 서울살이의 고충도 있다. 지난겨울은 나나 내 친구들에게 너무 추웠다. 청주에서 서울로 같이 올라와 6평의 원룸에서 사는 우리 셋은 보일러를 마음껏 틀 돈이 없었다. 밤이 되면 이불 안에 드라이기를 틀었다. 상경한 지 고작 7개월이지만 카페, 라운지 바, 레스토랑,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 7개월 동안 커피를 내리고, 술을 제조하고, 대량의 설거지를 하며, 상품의 바코드를 찍는 사람으로 지낸 것이다. 그렇게 번 돈은 무조건 아껴야 생활할 수 있다. 어느새 고민은 늘어간다. 생활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서울에 온 목적에서 멀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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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은 경험 폭 자체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인적성 분투기> #부산_오성민_28세

“찜질방은 극한의 모의고사 연습장이었다”

 

인적성 시험 전날 서울로 올라왔다. 시험 3일 전부터 확인 가능하다던 수험표를 출력하니 시험이 아침 10시 건국대란다. 부산에서 서울 가는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도 아침 10시에 건국대를 가는 건 불가능하다. 전날 건국대 근처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다. 왕복 버스비 6만 8천 원도 덜덜 떨면서 결제했는데, 숙박비가 나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그래도 서류 합격이 어디냐 싶어 마음을 다잡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전날 올라가서 모텔에서 자야 할 것 같으니 돈을 보태달라고 말이다. 부모님은 10만 원을 주셨다. 이번에는 내심 기대하시는 눈치다.

 

금요일 날 건국대 근처 모텔에는 빈방이 없었다. 가서 깨끗하게 씻고 모의고사를 풀려 했는데 시간이 없다. 결국 사우나로 향했다. 한편으론 돈이 굳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충 씻고 나와 텔레비전을 보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무릎에 모의고사 문제집을 기대고 시간을 제가며 문제를 풀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 만취한 학생의 해롱거리는 걸음걸이, 옆에는 라면과 맥반석 달걀 냄새가 나를 괴롭혔다. 억지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연습하는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시험장에서 누군가 다리를 떨어도, 담배와 모닝커피가 합쳐진 야리꾸리한 입 냄새를 풍겨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찜질방은 극한의 모의고사 연습장이었다.

 

인적성 시험 당일, 찜질방의 아침은 한산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부산했다. 목이 결린다. 두뇌 회전에 목침이 좋다던데 역시 푹신한 베개만 못하다. 늦을까 다시 고사장 가는 길을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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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찜질방 안에서 인적성 고사장 가는 길을 검색한다.

 

<면접 실패기> #인제_남씨(가명)_23세

“이제 하다못해 자취한다는 이유로 걸러지는 거야!?”

 

예상하지 못한 면접 질문에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업무와 관련한 질문을 하기도 전에 집 주소를 문제 삼으니 살짝 불쾌하기도 했다. “집 주소가 강원도 인제인데 출퇴근과 거주 문제는 어떻게 할 거죠?” 혼재된 감정 속에서 내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합격한다면 근처에 집을 구해 자취할 예정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계산을 하고 나온 말이었다. 나름 잘 대답했다고 안도하고 있던 찰나였다. “월급이 적아서…” 라는 면접관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후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귀하 같은 인재와 함께할 수 없어 아쉽다’는 문구는 지겨울 정도로 봐온 탓에 침착하게 면접 당시를 복기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주소지’밖에 걸리는 문제가 없다. 우울한 마음에 학교 앞 작은 술집으로 친구들을 불렀다. 하지만 나를 위로해주러 온 친구들은 이내 나의 무지를 지적했다. 지원서에는 입사할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건 당연하다는 거다. 자기들은 이미 서울에 아는 사람 집 주소를 빌리고, 친구랑 동거한다든지, 친척 집에 얹혀있다든지 이유까지 만들어놨다고 한다.

 

“아 XX, 그럼 집은 인제고 직장은 강남인데 자취하지, 어쩌라는 거야?” 우리는 왜 회사에서 지방 주소지를 싫어할까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여러 생각들이 모여 이유를 정리하니 두 가지 결론이 나왔다. 첫째, 중소기업은 보통 일괄 입사가 아니라 즉시 입사를 원하니까,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은 집 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둘째, 월급이 적다는 말로 추론했을 때, 급여가 적은데 자취할 경우 힘들어서 금방 그만둘 확률이 높기 때문에. 진실이 무엇이든 어느새 술자리는 각자의 힘듦을 성토하는 장이 되었다. 겨우겨우 서울로 면접 보러 가면 지방에서 왔다고 무시해, 이제 하다못해 자취한다는 이유로 걸러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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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취준생 한세진(정유미)이 춤을 추라는 어이없는 면접관의 요구에 주뼛거리며 일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네이버 영화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제주_김씨(가명)_23세

“면접은 결코 내게 ‘경험 삼아’ 해볼 만큼 쉽지 않다”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까지 배웠지만, 여기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제주도는 다른 도시에 비해 산업기반이 약하다. 포항처럼 제철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라도처럼 곡식이 잘 자라는 평야도 없다. 그러나 제주도는 특별한 자연을 이용하여 육지 사람을 관광하게 하여야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무암이 지층인 제주도는 관광자원이 전부다. 호텔이나 면세점 같은 관광업에 종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 준비뿐이다. 서울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나마 서울에 가야 일자리가 있다.

 

자취비로 남는 게 없대도 일은 시작하고 볼 일이다. 일단 어디든 가야겠다는 생각에, 막상 가보면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중소-중견-대기업까지 무작정 서류를 넣고 있다. 100군데는 넘게 제출한 것 같다. 10% 정도의 확률로 면접까지 가지만 번번이 떨어진다. 한 친구는 내게 힘을 주고 싶었는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라며 술잔을 건넨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지만 애써 웃음으로 답한다.

 

면접은 결코 내게 ‘경험 삼아’ 해볼 만큼 쉽지 않다. 왕복 차비만 10만 원, 거기에 숙박비와 한두 끼 식사비를 더하면 20만 원은 우습다. 면접을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저축하는 상황이다. 돈뿐만 아니다. 면접이 잡히면 적어도 이틀은 시간을 날려버린다. 면접 당일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갈 수 없으니, 전 날 가 있어야 한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서울에 도착하면 면접을 보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져버린다. 이 짓을 8개월째 하고 있다. 희망과 절망의 가운데서 놀아나는 기분이다. 이제 내게 ‘운이 좋다’는 의미는 ‘면접일이 한 날로 몰려있다’로 정의된다.

 

*지금까지 지방 청년들의 고군분투 취업 준비 일기였습니다. 직업군을 결정하고, 스펙을 쌓아, 취업시장에 뛰어들 때까지. 그들은 기회의 장 ‘서울’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다음 [지방 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에서는 ‘타향살이’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대학을 가든, 취업을 하든, 터전을 벗어나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본 기사는 [Daum 뉴스펀딩]에서 함께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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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호(9208kjh@hanmail.net)

기획. 아호, 달래, 라켈, 아나오란, 콘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