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풀지 못한 질문 하나쯤은 있다. 아무리 궁리해도 그 질문을 풀 방법은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끝끝내 놓질 못하는 ‘마음속 빚’과 같은 ‘질문’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 부딪힌 이들에게 조언하기도 한다. ‘인생은 정답을 구하는 과정이라네.’ 그런데 이 조언은 꽤나 무책임하다. 정답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인생에서 정답이 있으니까 찾아보라니.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의 칼럼 중 한 대목으로 조언을 바꿔보자. ‘인생은 정답을 구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바꾸는 과정이다.’

여기, 풀지 못한 마음의 숙제를 가진 청년이 있다. 마음속 질문을 끊임없이 생각했고, 질문을 바꾸고 있는 과정에 서있었다. ‘대학언론협동조합’ 정상석씨의 풀지 못한 숙제와 그의 질문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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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정상석씨를 카메라에 담았다.

 

잊지 못할 치욕의 그 날

그는 전북대학교 신문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그의 인생 전체를 휘감을 질문을 만나게 된다. 여느 신문사 기자들과 다름없이 취재 아이템을 찾던 그는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에 눈이 뜨였다. ‘전주 남부시장의 가구거리를 주차장으로 바뀌게 생겼다’는 호소의 글이었다. 그는 곧장 전주 남부시장 가구거리로 향했다. 그곳은 엉망진창이었다. ‘삶’은 모두 철거당하고 있었다. 30년 동안 가게를 지켜온 할머니는 가게를 헐지 못하게 하려고 가녀린 두 팔로 막아서고 있었고 낙서 하나 없던 가게 벽면에는 ‘도와달라’는 빨간 글귀가 담겨 있었다. 생존과 죽음 사이, 상인들의 간절함이 극도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취재에 나섰다. 기자라고 밝히니, 주민들은 경계부터 했다. 어리둥절했다. 

상석씨는 전주 남부시장 가구거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 처참한 절규를 왜곡한 기사, 제대로 된 사실조차 담지 않은 기사, 아예 다루지 않은 신문사 등 기사 안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없었다. 저널리즘은 없었다. 기사가 그렇게 나가게 된 까닭을 살펴보니, 발행과정에서 타의에 의해 기사가 수정된 곳도 있었다. 그는 조용히 그 신문사를 탓했다. 편집권이 없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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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신문사 기자로 활동 당시, 그가 취재했던 전주 남부시장 가구거리 철거 사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 상석씨에게도 일어났다. 편집국장으로 있었던 그는 총동아리연합회가 주최한 행사 취재를 맡았다. 평소라면, 짧은 보도로 실릴 기사였다. 그 날은 조금 달랐다. 총장은 본래 정해진 5분의 연설보다 50분을 초과했다. 55분 동안 그가 한 말은 ‘취업을 잘하라’, ‘대학평가에서 학교가 살아남아야 한다,’ 등과 같은 말이었다. 학생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남아 총장의 발언을 노트북에 옮겨 담았다. 총장에 대한 비판보도를 준비하며 이를 갈았다.

기사송고를 앞두고 주간 교수가 들이닥쳤다. 그의 손에는 총장 비판 기사가 들려 있었다. 빨간 펜은 쭉쭉 그어졌다. “이 부분에서 **부서는 그런 말을 하던데, 취재 안 했지?” 서둘러 추가 취재 후 기사를 완성하여 주간 교수에서 보여주길 여러 차례,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말았다. 주간교수의 의중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발행하려면 기사 방향을 바꿔라’는 뜻이었다. 총장 비판 금지, 이것이 교수의 요구였다. 발행권과 예산권을 쥔 교수가 기사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이번 방학에 3학년 기자들 해외취재 안 가고 싶은가봐?”, “내가 결재 사인 안 하면 못하는 게 많을 텐데.” 입사 동기들의 원망스러운 눈초리가 마음에 그려졌다. 결국, 전북대학교 신문사는 주간 교수의 뜻대로 기사를 바꿔 송고했다. 처참했다. 전주 남부시장 가구거리 취재당시, 저널리즘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그런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을 안타까워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기자에게, 언론에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인 줄 모르고 말이다. 그 해, 겨울 상석씨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총장은 전북대신문사 앞으로 우수 부서 상을 안겨줬다. 상패에 마치 이렇게 쓰여 있는 것 같았다. ‘내 말을 잘 들어 기사를 썼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치욕, 그 자체였다.

그는 전국 학보사 모임을 하며 자신의 학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학보사에는 주간 교수가 존재한다. 주간 교수는 학보의 기획안 및 기사를 검토하는데 이 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주간 교수가 적당히 마무리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발행허가권과 예산집행허가권이 부여된다. 주간 교수의 허락 없이는 기사 발행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으며 예산집행허가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자들의 활동에 압박을 줄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대학신문이 사실상 편집권의 위협에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는 마음에 이 질문을 담기 시작했다.

정상석을 흔들었던 질문들

그렇게 마음에 담게 된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편집권 침해 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는 온통 이 질문에 매달렸다. 홀로 대응하기보다는 다수가 함께 연대하여 대응하는 것이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그와 같은 질문에 매달리고 있는 이들을 모았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곧 이들은 대학 언론사들이 편집권 침해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 매뉴얼을 공유할 수 있는 강연도 열었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질문이 다가왔다. ‘편집권 침해 매뉴얼을 만든다고 해서, 효율적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었다. 편집권 침해 상황이 각양각색인데 매뉴얼만 따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매뉴얼이 편집권 침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상석씨는 그 해 겨울,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바뀐 질문은 그의 활동 전체를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외대 학보 강유나 편집국장이 학교에 의해 해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 전 편집국장은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학내에 독립 언론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독립 언론 외대 알리 창간을 도왔다. 외대 알리를 창간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전에 있었던 틀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굳이 학보일 필요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그가 지금껏 편집권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언론 시스템을 개인이 바꿀 수 없다면, 그 밖에서 알 권리를 보장하면 됐다. 그는 곧 대학언론협동조합 이름으로 독립 언론 창간을 도울 수 있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외대’ 와’ 알리’를 합친 외대 알리의 이름은 ‘알 권리’에서 시작됐다. 흑인 자유와 해방을 위해 싸웠던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 이탈리아어로 날개의 복수형, 동맹을 뜻하는 Alliance의 줄임말, 높게 뛰어오르는 스케이트보드 기술 등 다양한 뜻을 지녔다. 한 번 바뀐 질문은 계속해서 또 다른 질문으로 돌아왔다. ‘대학신문처럼 절제하고 통제하는 식의 글을 쓰는 것이 과연 그 기자에게 완전한 편집의 자유를 주는 것일까?’, ‘현재 대학생들이 달라지고 있는데 신문만 그 자리라면 읽을까?’ 계속해서 질문은 바뀌었다. 그에 맞춰 독립 언론의 틀은 완성되었다. 기자의 개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문체를 사용하는 것에 자유를 뒀다. 대학생의 학내보도 알 권리와 더불어, 학생들의 놀 권리 역시 충족할 수 있도록 문화면 기사를 늘렸다. 그렇게 외대 알리는 창간되어 지금까지 외대학생들에게 알 권리와 놀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외대 알리가 창간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비용이었다. 발행비용만큼은 있어야 했다. 이 역할을 대학언론협동조합이 맡았다. 알리에 광고를 게재하되, 광고비용으로 들어온 돈은 발행비로 독립 언론사에 전달됐다. 광고를 끌어오는 영업을 대학언론협동조합이 맡게 된 것이다. 그는 대학에 독립 언론 창간을 원하는 이가 5명 이상이 됐을 때, 대학언론협동조합이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외대 알리를 만들며 거친 시행착오 끝에 얻게 된 교훈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올해 9월, 성공회대 알리가 창간된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중 “올해 안으로 총 7개 대학에 N대 알리를 만들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질문을 바뀌는 과정을 통해 마음에 남은 문제를 풀어가는 중이다. 질문을 바꾸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에 대한 성찰과 통찰’. 아마,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지고 바뀌었던 것은 그가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고 통찰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그에게 던져질 대학언론에 관한 무수한 질문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 피오나(lan486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