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는 ‘즉각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휙휙 지나가는 트렌드들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기보다는, 아직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현상의 단면을 조악하더라도 빠르게 훑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트렌드20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연재 ‘인스턴트’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숨어있던 현상들을 짚어내어 스케치하고자 한다. 취미, 컨텐츠, 소비 현상들을 엮어내, 생활 방식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지난주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시즌 4가 막을 내렸고 오늘(9월11일)은 동일한 방송사 Mnet에서 여성힙합 서바이벌 언프리티 랩스타(이하 언랩)2가 방송된다. 지난주 출연자들의 명단과 티져영상이 공개된 후 웹상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넘치고 있다. 하나의 힙합 프로그램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힙합 프로그램을 시작되는 기간에서 문득 떠오른 단어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기간을 일컫는 ‘간전기’였다. 

 

전쟁은 파괴를, 폐허를, 공허함을 양산하고 공황 상태에서 기존의 질서는 무너진다. 한편으로 그 반사이익을 누리는 존재는 간과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간전기’ 때 화려한 소비문화를 일구게 된 미국이 그랬다. 허무와 활기의 공존. 목표를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와 소비와 쾌락의 재즈 에이지(jazz age)의 공존. 힙합과 힙합프로그램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간극이다.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 형식과 힙합이라는 문화의 조응이 만든 것은 힙합도, 오디션도 아니었다. ‘쇼미더머니’라는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 show와 money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layout 2015-9-11

 ⓒ CJ E&M

 

#show

 

show의 형식의 오디션은 ‘리얼리티’를 중요시한다. 어쩌면 이것은 힙합과 꽤 잘 어울리는 단어일 수 있겠다. 힙합은 ‘아티스트’가 본인의 이야기인 가사를 직접 쓰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음악이니까. 그런데 오디션이 원하는, 또는 사용하는 리얼리티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연출자의 존재와 손길을 지우고, 수용자의 현실과 닿게 하는 ‘장치’로서의 리얼리티가 되겠다.

  

이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가 래퍼 ‘피타입’과 ‘서출구’의 탈락일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무게만 잡다 자빠진 내 꼴. 갖다 줘도 내가 못 처먹은 거야, 그냥 찌그러져 내 노래나 낼걸.’

지난달 6일 발매된 피타입의 ‘버드맨’은 쇼미더머니4에 출연했던 소회를 푸는 곡이다. 피타입은 ‘쇼미더머니’가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힙합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러한 행보를 보였던 그가 쇼미더머니 시즌 4에 참가했다. ‘시스템에 들어가 시스템에게 침 뱉기’는 1차 예선을 통과했던 그의 가사 중 일부이자, 그의 방송 출연 목적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가 남긴 결과는 2차 예선 탈락. 그는 지난 2회에서 가사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다. 편집을 통해 보인 그의 마지막 모습은 fail이라는 붉은 글자 앞에 선 채 불기둥 아래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처음 등장할 때에 프로그램에 던진 비판적 메시지는 몇 번이나 반복하여 끼워 넣더니, 탈락할 때에는 불기둥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편집자의 편집방향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출구도 그랬다. 쇼미더머니 4회에는 스눕독이 특별 프로듀서로 등장했다. 참가자들은 스눕독의 비트에 맞춰 무대 위 놓인 마이크를 들고 랩을 해야 했다. 프리스타일, 갑작스럽게 주어진 비트 위에 여러 래퍼가 랩을 이어가는 싸이퍼 미션이었다. 제한 시간으로 10분이 주어졌고 그 안에 랩을 하지 못한 지원자는 자동으로 탈락했다. 래퍼들 간의 몸싸움이 이어졌고, 마이크를 잡기 위해 앞뒤로 우르르 래퍼들이 몰려나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싸이퍼로 유명한 ADV 크루의 배틀랩 전국구 래퍼 ‘서출구’는 제한시간이 끝나가는 상황에도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10분이 다 지나갈 때 즈음에 그게 기회가 찾아왔지만, 고등학생 래퍼에게 마이크를 양보했고, 탈락했다. 프로그램은 그를 ‘양보남’ 정도로 그렸다. 얼마 후 서출구는 SNS를 통해 본인이 프로그램에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를 너무나도 단편적으로 만든 제작진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시스템에 들어가, 시스템에 침 뱉기’를 시전하기 바랐던 참가자 둘은 ‘양보남’과 실력 없는 ‘꼰대’로 소비되었다. 물론 피타입이 탈락하면 안 될 이유 따위는 없다. 프로그램은 리얼리티가 있는 힙합 서바이벌이니까. 더불어 서출구의 인터뷰를 모두 방송에 내어 보내줄 이유 또한 없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방송 프로그램은 ‘기획’되고 재구성된 리얼리티, 즉 개입된 ‘창작물’이다. 이곳에 내재한 모순은 필요에 따라 편집하는 또 다른 ‘주체’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그 주체는 심지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파급력은 힙합문화의 영역보다도 넓다. 피타입이 힙합이라는 문화영역을 위해 ‘do the right rap’이라는 기획을 진행했든 말든, 서출구가 길거리 힙합을 위해 ‘ADV크루’로서 전국을 돌았든 말든, ‘실력 없는 꼰대’와 ‘양보남’의 낙인을 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디어는 호명하고, 그 순간 문화영역은 호명되고 이름 붙여지니까.

 

#show is the money

 

리얼리티로 대표되는 show의 성질은 money와 결합하여 힙합을 단순화한다. 그 가장 흔한 양식은 ‘갈등’이다. 단순하다. 빈번한 직설적인 표현을 ‘갈등’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는 특히 오늘 시즌 2가 방영되는 언프리티랩스타’의 시즌1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했다. (관련 기사: 언프리티 랩스타, ‘여성’, ‘힙합’없는 여성 힙합 서바이벌) 몇 번씩 등장하는 여자 래퍼들 간의 ‘여자들끼리 싸움이 난다’ ‘여자는 안된다’와 같은 대사. 그리고 이를 관조하는 듯 보이는 남자 심사위원(심지어는 모든 편에 남자심사위원이 등장했다)과 남자 진행자.

 

직설적 표현이 빈번한 음악, 심지어 아티스트가 직접 가사를 쓰니 그 갈등도 더 실제처럼 뵈기 쉽다.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 갈등은 존재하게, 존재하는 갈등은 더 자극적으로’라는 목표를 갖고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앞서 서출구와 피타입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우리에게 선택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또는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오디션이라는 show가 리얼리티에 의지하는 것은 편집자의 손을 가리고, 이를 개개인의 서사로 채우는 듯 보이게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람. 그 ‘주체’를 마주했다. 더불어 그 주체가 힙합에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자로서의 일상의 범위 안에서 문화를 감각하는 것이 힘들 때, 정말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실재하는 문화를 보고 있는 것이며, 존재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가벼운 마음으로 m.net 제작진에게 전가할 수도 없다. 잘 팔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잘 팔리는 것은 잘 파는 사람과 구조가 정하는. 그래서 잘 파는 사람 혹은 구조의 손길대로 모든 것이 편집되며 앞으로나란히 되는. 그 프로그램 속 음원들은 곧 대중에 의해 음원차트 1위라는 부재의 ‘영광’에 오르게 되는. 너무나도 익숙한 ‘신자유주의의 포섭’을 새삼 힙합프로그램을 통해 마주친 것일까.

 

피타입의 탈락, 서출구의 문제 제기, 블랙넛과 송민호의 여성혐오논란, 탈락자 번복 숱한 문제를 일으킨 쇼미더머니4는 베이식의 우승과 송민호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베이식과 송민호가 불렀던 곡은 음원차트 상위에 머물고 있으며, 웹상에서는 오늘 방송될 여성 힙합 서바이벌 언프리티랩스타2에 대해서는 기대가 넘친다. 문화영역은 폐허가 되었는데, 창을 통해 지켜보는 쪽은 어째 더 활기를 띤다. 미국의 승리만을 보여줬던 폭스채널처럼, m.net은 폐허와 허무가 된 문화영역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승리만을 보여준다. 사라진 문화영역의 주인은 없는데 그의 집에서는 매일 파티가 열린다. 그러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폐허를, 공허를 마주해야 한다. 간전기 문학의 대표격인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처럼 한창인 파티를 뒤로하고 홀로 발코니에 서서 공허를 마주해야 한다.

 

 

글. 압생트(9FIF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