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대중적이지 않다. 대중적이지 않은 데다가 ‘올드하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완창하는데 세 시간 남짓 걸린다는 춘향가를 초등학생이 완창해냈다는 이야기, TV에서 국악신동이 구성지게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판소리보단 그걸 해낸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 판소리는 차력쇼와 비슷한 하나의 ‘신기한’ 코드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 속에서도 판소리는 여전히 공연되고 있는 중이다. 극단 판소리만들기 ‘자’나 ‘바닥소리’에서는 판소리를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현실과 괴리된 장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소리꾼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억척가> 

 

지난 5일 18시, 서울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은희진 명창 타계 15주기 추모공연은 분위기를 가라앉히거나, 띄우기도 하면서 판소리가 얼마나 멋있는 예술인지 보여주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은희진 명창에 대한 소개와 제자 일동의 보렴, 채양순 교수의 살풀이춤 공연이 다소 진중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은희진 명창의 부인이며 판소리 보유자이기도 한 이순단 명창도 중간에 나와 이렇게 남편을 잊지 않고 찾아와주어 감사하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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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스웩을 보여주다

 

2부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청학동 훈장님으로 유명한 김봉곤 씨가 사회를 맡아 공연을 진행했다. 김봉곤 씨는 예전 기억을 회고하며 “나도 4년 소리하면 득음할 수 있다고 해서 똥물도 받아먹기도 했다”며 공연장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지는 판소리 공연은 은희진 명창 제자들이 맡았다.

 

첫 번째 공연은 제자 이자람 씨가 심청가의 젖동냥 대목을 맡아 소리했다. 소리꾼 이자람은 말 빠르기를 조절해 긴장을 만들고 극의 최고조에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엮어냈다. 한 소리꾼이 남자, 여자, 노인의 역할을 모두 해내는 연극적인 면과 음악적 기교를 이용해 가락을 뽑는 것이 흥미로웠다. 객석에서는 “얼씨구”, “잘한다”, “북 잘친다”하는 추임새가 계속 들렸다. 관객석은 절대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김봉곤 씨에 앞서 사회를 맡았던 군산대 최동현 교수는 “판소리는 여백의 미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소리는 모든 박자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만 박자를 채운다. 소리꾼, 고수뿐만 아니라 관객도 계속 빈 박자를 자신의 소리로 채웠다. 비록 마당놀이처럼 함께 어우러져 공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교감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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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인터미션 때 받은 떡과 두유

 

부끄러움 탓에 추임새를 한 번도 넣지 못하고 판소리 공연이 끝났다. 친숙하지 않은 한자어가 많이 들어있는 판소리는 소리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이 진입장벽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영어를 못한다고 브루노 마스의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판소리에도 음악 그 자체를 즐길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연극적이기까지.

 

웃음으로 눈물 닦다

 

2부 마지막으로 입체창(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이 예정되어 있었다. 심청가 중 뺑덕어멈 대목에서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까지의 공연이었다. 여기에 1부에서도 등장한 은희진 명창의 부인 이순단 명창이 등장한다고 예고해 기대가 되었다. 남편의 추모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등장할지 관심이 갔다.

 

입체창은 뺑덕어멈이 심봉사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돈이 많다는 심봉사에게 접근한 뺑덕어멈은 남자친구 황봉사와 함께 심봉사의 돈을 빼돌리려 한다. 앞이 안 보이는 심봉사를 뺑덕어멈이 거짓말하고 놀리기도 하고 관객 중 한 명에게 자기와 사귀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이 극의 웃음 포인트였다.

 

이순단 명창은 여기서 황봉사로 등장해 뺑덕어멈과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심봉사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는 우스꽝스럽고 음흉한 역을 맡았다. 극에서 뺑덕어멈과 황봉사는 광대였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등장했는데, 빨간 볼에 검은 점, 딸기코 분장을 하고 성별까지 바꿔 등장한 이순단 명창을 알아본 것은 극이 중반에 다다랐을 때였다. 감히 황봉사 역일 거란 추측을 하기 어려웠다.

 

2부 사회자 김봉곤 씨는 “하늘에 계신 은희진 선생님도 즐거운 공연이 되길 바라실 것”이라며 “추모공연이라도 딱딱한 분위기로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웃음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 해학이라면 판소리는 해학적이며 흥을 가진 예술이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15주기를 맞아 공연을 차린 제자들, 남편의 추모공연에서 심봉사를 놀리는 황봉사로 분한 아내… 애도를 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 웃음을 통한 애도는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축에 속할 것이다. 판소리라는 예술을 매개로 명창을 추모하는 방식이 마음에 닿는 공연이었다.

 

글. 농구선수(lovedarkte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