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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기본값을 ‘일못’으로 만들자는 이유있는 항변

우리 사회의 기본값은 ‘일 잘하는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내세우며 업무 부적응자에 대한 공정한 해고를 장려하고, 기업은 임금피크제에 성과주의를 도입해 일 못하면 돈을 조금 주겠다고 말한다. 일 못하면 임금에서 차별당하고, 쉽게 퇴출당해도 정당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현실은 ‘일을 못하는 능력’을 경멸적 대상으로 만들고, 나아가 일을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 모멸감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에 직면한다. “정말 모두가 일을 잘하는 걸까?”

 

“일을 못해 뒤로 미끄러져 보니, 나처럼 미끄러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페이스북 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을 만든 여정훈 씨의 말이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은 만들어진 지 1년이 조금 지났지만 회원수는 6.000명이 넘는다. 회원들은 자신이 일을 못한 일화를 공유하고, 댓글에는 격려가 이어진다. 지난 4일,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 책으로 나왔다. 회원들은 일을 못한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결국 ‘내가 일을 못하는 일리 있는 이유’를 찾아낸다. 아래는 필진으로 참여한 여정훈, 김종수, 이서영 씨와 나눈, 1프로가 아닌 99프로, 어쩌면 우리들의 ‘일못’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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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 (왼쪽부터) 이서영, 김종수, 여정훈

 

일을 못해요.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책의 첫 장은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이다. 스스로 일을 못한다는 선언은 왠지 어색하다. ‘그래’에서 느껴지는 인정과 당당함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일못’이 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긴장하며 사는 이에게는 다리에 힘이 탁, 풀릴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인정한다.

 

종수: 저는 일을 구할 때부터 일못이에요. 쉬고 있으면 불안하니까, 남들은 현명하게 삶을 살아내는 것 같으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마음만 앞선 거죠. 긴 고민 없이 새로운 곳에 취직하고, 그러다 보니 금방 그만두고. 조금씩 자주 바꿨는데 그런 것도 일못의 일부 같아요.

서영: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 사무직에 가니까 충격적일 정도로 장애가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임금이 30만 원 나가야 하는데 3만 원이 나가는 거예요. 0 하나를 안 붙여서요.

정훈: 다른 회원 중에 0하나 더 붙인 사례도 있어요. 기획서에 0 하나 더 붙여서 억 단위로 실수를 한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두세 개 일이 동시에 진행이 안돼요.

 

일을 못한다는 사실은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비단 상사에게 혼나거나, 내 성과에 상처가 날까 하는 두려움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정훈 씨는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 때문에, 서영 씨는 “나의 최선, 나의 지향점이 세계와 불화”해서, 종수씨는 “임금이라는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우려를 자괴감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러한 무거운 현실은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그룹에서 잠시 잊힌다. 그들이 일을 못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자랑처럼, 때로는 놀이처럼 소비된다.

 

서영: 오늘 회사에서 이걸 못했어요! 이러면 댓글로 사람들이 “우리가 일을 못하는 게 생수면 이 분은 에비앙”이라고 말해줘요. 제가 자조하면 사람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해주니까 신나는 거죠. 재미있는 커뮤니티 활동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정훈: 소속감이 주는 즐거움이 있죠. 예전에 며칠 동안 편의점에서 파는 오모리 컵라면 인증 붐이 있었어요. 타임라인이 200장이 넘는 오모리 사진으로 뒤덮였는데, ‘우리가 이렇게 각박하면서도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한다’는 일종의 놀이죠.

 

하지만 온라인에 기반을 둔 그룹을 벗어나면 ‘일못’의 금기는 여전히 견고하다. 그저 “재미있어 보여서” 가입한 종수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일 못한다고 표방해서 어떻게 일 할 거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정훈 씨는 “일못밍아웃”을 해야 한다며 웃는다. 한 명이 일을 못하겠다고 목소리를 내면 그 사람이 낙오자가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을 못한다고 밝히면 사회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란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변수’로 작용하는 회사 시스템에서는 자체적으로 일을 못하는 사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훈: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건물을 디자인하면 장애인에게 불편해지잖아요.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면 되는데, 모든 사람이 일을 완벽하게 해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못하는 사람 자체가 불필요한 비용으로 느껴지는 거죠.

서영: 제 친구는 방송국에서 일했는데 방송 스텝들한테 가야 할 임금을 책정하지 않고 기한을 넘겼대요. 그래서 그 임금이 하나도 지급이 안 된 거죠. 다시 기한을 올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래요. 그래서 사과만 하면서 돌아다녔죠. 근데 이걸 시스템적으로 다시 기한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면 되잖아요.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이요. 누구나 실수는 하고,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항상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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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 여정훈 씨.

그는 “어제 홍대 앞에 갔더니 경제, 경영, 자기계발 코너에 (책이) 있길래 어디에 속한 걸까 궁금했다”고 말한다.

옆에 종수씨가 대답한다. “경영자를 위한 건가? 이런 사람 뽑지 말라는 거지.” 서영씨 “슬프다”며 웃는다.

 

나를 일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들에 대하여

 

‘열심히’라는 과정이 아니라 ‘잘’이라는 결과적 능력을 요구하는 현실의 벽은 ‘모태 일못’을 낳는다. 정훈씨는 “태어나길 일을 못 한다”며 고백하고, 서영씨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일을 잘할 수는 없다”며 자조한다. 그들은 스스로 ‘일못’임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일못’을 만드는 사회적 법칙을 읽어낸다. 권력과 평등의 문제, 우연의 발생, 일터의 암묵적 규율 등 그 결은 다양하다. 공통점은 개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다는 것이다.

 

정훈: 일을 잘한다는 건 권력을 가진 거예요.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절대 일못이 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세대에 따라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감각이 아주 다를 수 있어요. 똑같은 디자인을 두고 어떤 사람은 아주 좋은 것으로, 어떤 사람은 이게 뭐냐는 반응을 보이죠. 근데 직장 안에서 컨펌을 하는 사람에게 내 감각이 전혀 통용되지 않으면 저는 일못이 되는 거예요.

종수: 제가 회사를 자주 옮겼잖아요. 그런데 제가 일을 못 해서 그만두게 된 것도 있지만, 제 책임을 벗어난 부분도 분명 있어요. 블로그 관리자로 들어갔는데 나중에는 기사 작성을 요구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느 순간 기자가 되어있는 거예요. 사실 글 쓰는 거에 관심이 없으니까 너무 힘들고, 아무리 쥐어짜도 안 나오죠.

정훈: 만약 글을 잘 쓰는 사람이어도 업무적으로 발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건 시스템이 일못을 만드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과중한 걸 요구받았는데 그걸 수행하기 벅찰 때도 내가 일못이 돼버리는 거죠. 서열화 체제 안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게 사회가 사람을 만드는 일종의 훈육 방법이라 생각해요.

서영: 직장이 요구하는 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경우가 많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거죠. 그게 진짜 화나는 거예요. 심지어 일 못하는 상사가 나를 혼내기도 해요. 그런데 상사가 일을 못하면 이야기할 수 없잖아요. 불평등하죠.

 

일못을 규정하는 데 ‘우연’이라는 법칙이 개입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일잘과 일못은 ‘복불복’이다.

 

정훈: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달라요. 자신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는지가 우연으로 결정되는 거죠. 우연히 타고난 자질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때로는 일치하고, 많은 경우 괴리가 생겨요.

서영: 대체로 자기가 잘하는 일이랑 정말 상관없는 데에 가잖아요. 내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기도 어렵고요. 공채 아무 데나 넣어서 하필이면 정말 못하는데 들어갈 수도 있거든요. 잘하는 쪽으로 취업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시켜줄지도 모르는 거예요.

종수: 상사가 뭘 마음에 들어 하냐에 따라, 내가 걸려든 시스템이 뭘 좋아하느냐에 따를 수 있는 거죠.

 

때로는 ‘일터’라는 공간이 가지는 암묵적 룰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일못이 되기도 한다. 업무적인 영역은 아니지만 ‘직장 생활’ 자체가 일못의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서영: 남들이 웃고 넘기는 걸 성희롱이라고 발끈하면서 화내니까, 분위기 좀 맞추라고, 일 못하는 사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본인은 칭찬이라고 생각하면서 “미스코리아인 줄 알았어. 다리가 정말 예쁘네”, “우리 사무실의 꽃이지” 라고 했을 때, 저는 분명히 불쾌함을 느껴요. 꽃도 하고 싶지 않고요. 거기서 반박을 하면 제 마음은 편해지죠. 근데 상사가 보기에는 부하직원의 유난 때문에 업무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뒷말이 나오니 마음에 안 들 수 있는 거예요.

 제목 없음

 책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사회 탓하면 안 되나요?”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목소리는 가끔 ‘사회 탓’ 한다는 비판에 부딪힌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사회 탓을 하면 안 되냐고 반문한다.

 

서영: 사회 탓하는 사람들은 못나고 뭘 못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일을 못해요, 못났죠. 어쩔 수 없는 건데, 그럼 우린 어떡하나요? 죽을 순 없잖아요.

정훈: 제가 신학을 공부하는 것도 일 못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어요. 기독교인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종교는 사회에서 뒤처지거나 밀려난 사람들의 종교예요. 결국 일을 못하는 이들도 세상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사회 탓하세요. 사회를 탓해야 사회가 바뀝니다’라고 인사하는 그들은, 오늘도 일 못하는 사람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글. 아호(9208kjh@hanmail.net)

사진. 참새(gooook@naver.com)

아호

진지의 틀을 깨다

1 Comment
  1. the Seven Deadly Sins

    2018년 5월 28일 21:43

    패배자, 피해의식, 열등감, 무능, 무력, 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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