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성은 사전적으로 ‘성(城) 안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상당한 노력 끝에 선망하던 세계로 진출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즉 ‘성’은 선망하는 세계 받아들여진다. 적을 막기 위해 높이 쌓아 만든 성벽이 성을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한 이미지로 만들었기 때문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입성’은 주로 서울을 향한다. 인터넷에 ‘입성’이라는 단어를 치면, 연관검색어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지역명은 ‘서울’이다. ‘서울 입성’, 그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적 맥락에서 해석된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서열화 체제에서 서울에 학교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권력이 된다. 지역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는 구조에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적으로 서울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래는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이들이 경험한 ‘서울 입성’의 다양한 갈래들이다.

 

표지

 

 

공고한 대학 서열 체제, 지방 학생이 서울로 고개 돌리는 이유

 

고등학교에서 우리는 ‘태정태세문단세 …’ 뿐만 아니라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국숭세단…’을 외운다. 학생들의 머릿속에 ‘대학 서열화’가 자리 잡는 순간이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자리 잡을 것인가는 인생의 중요한 변수로 여겨진다. 그 위치로 사회에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결정될 것임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시작해 ‘단’으로 끝나는 대학의 정원은 너무 적다. 이제 목표는 ‘IN 서울’로 확장된다. 하지만 성적순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시스템에서 누군가는, 아니 많은 수의 학생들은, ‘서울’에서 벗어난 대학으로 진학한다.

 

“지방대 나와서 뭐하겠냐고. 지방대생이라 그러면 삼류라고.” -창원, 김수희-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서울로 갔겠지’라는 논리가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비(非) 서울’ 행을 택한 학생들은 외부의 부정적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0명이 있으면 10개의 서로 다른 모습이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모두의 정체성은 ‘지잡대’라는 단어로 단순화된다. ‘지방’과 ‘잡스러운’이 합해져 만들어진 단어는 지방 학생들을 소외시킨다. ‘지방’은 ‘변방’을, ‘잡스러운’은 ‘잡되고 상스러운’을 의미한다. 그들은 중심이 되지 못하고 변방에서 잡스러운 존재로 규정되어 버린다.

 

사회가 그들은 ‘지잡’으로 구분 짓는 상황에서,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자신의 대학을 긍정하기 어렵다. 결국 우리 사회의 결을 이루는 대학 서열화는 학생들의 고개를 서울로 돌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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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일보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실제 모델인 이제석씨.

그의 지방대 재학 시절 일화는 ‘루저’로 소비된다.

SBS 뉴스는 그를 두고 ‘루저에서 광고천재로!’ 성공한 인물이라 평가한다.

왜 지방 대학은 사회의 패배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교육의 격차, 정보의 불평등… 탈출구는 서울에

 

지방에서 학생들은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하기도 한다. ‘고등 교육을 베푸는 교육기관’을 의미하는 대학이 제대로 된 교육적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점이다. 이는 대학에 다니면서 기대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열악함을 의미한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학생들의 목마름은 계속된다.

 

“대학원을 다녔지만 이곳에서 학술 강연이나 세미나, 콘퍼런스가 잘 열리지 않는다.

같은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부족하다.

듣고 싶은 강의는 서울에서 많이 열리지만 쉽게 갈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관심 가는 주제의 공부가 생겨도 혼자 하는 편이다.

-전주, 김윤정-

 

특히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경험하는 정보의 격차는 기회의 박탈로 여겨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대학이 취업 디딤돌 역할을 해주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유치하는 기업의 취업 특강이나 설명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원하는 분야에 먼저 취업한 선배를 찾기도 힘들고,

나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이끌어줄 사람들이 없다.

정보를 얻는 데 한계를 느낀다.“

-인제, 남 씨(가명)-

 

결핍에서 벗어날 출구는 한 가지, 다시 서울로 가는 것이다. 남 씨는 “고3으로 돌아가 학교를 바꾸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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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학(서울, 경기, 인천 제외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수는 전체 대학생의 절반을 넘어간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의 격차와 정보의 불평등을 경험한다. ⓒ대학교육협회

 

지방 대학을 향하는 날카로운 구조조정의 칼날

 

지방대라는 이유로 모두가 서울행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지방대와 IN 서울 대학의 차이는 단지 물리적 위치일 뿐”이라고 말하고, “지방대학생으로서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없다”고 항변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것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다.

 

첫발을 디딘 학교가 영동(충청도)이었던 정아영 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이전 학교를 ‘설렘’과 ‘즐거움’이라는 단어로 연상했다.

 

“고3 수능 직후 여러 학교에 합격했지만 제일 낮은 곳에 갔다.

중국어와 무역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과의 커리큘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은 자유로웠다.

각 지에서 온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이 즐거웠고,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 설렘이 가득했다.”

 

과대표를 하고, 학술제와 행사를 기획하며, 선후배·동기들과 사이가 돈독해질 즘, 예고에 없던 위협이 감지되었다. ‘구조조정’ 이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추진되는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지방대 죽이기로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학생 충원율이 낮은 지방 사립대학 중심으로 칼날이 향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니고 있던 학과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학교 안에서 구조조정의 여파로 하나하나 과가 없어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 과의 차례가 온 것이다.

과가 무너지는 걸 알고 사람들이 떠났다.

내 위 학번들은 한 명도 남지 않고 학교에서 사라졌고,

남자 동기들은 군대에, 여자 동기들은 대부분 편입하거나 유학을 가기도 했다.

떠나가는 이들을 보니 나도 가야만 하는 건가 싶었다.

그때 교수가 가지 말라고 붙잡았는데,

막상 편입하고 인사하러 내려가니 ‘잘했다’고 말하더라.”

 

그가 다니던 과는 빠르게 분해되었다. 선배를 비롯한 동기들은 모두 학교를 떠났고, 신입생을 받지 않은 과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역시 수도권의 한 대학으로 몸을 옮겼다. ‘대학 서열화 체제’ 안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수능 점수 배치표 상으로 한 단계 높은 대학에 편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만족도는 전 학교에서 더 높아 보인다.

 

“등 떠밀리듯 떠난 학교다. 아직도 이전 학교에 정이 간다.

지금 학교에 대한 소속감은 제로라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전 학교처럼 과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재미있게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는 동기라는 개념보다 이 학교에 돈 내고 학점 따로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는 게 지루해지고, F 학점을 받지 않을 정도로만 출석을 했다.”

 

그에게 ‘구조조정’이란, 삶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강제하는 정부의 ‘뒤통수치기’다. 배우던 학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학교를 찾아 떠나는 과정은 스스로의 과업으로 남겨졌다. 두 번째 학교에서 경험하는 방황 또한 오롯이 혼자 극복해야 할 숙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항상 ‘참담함’이라는 감정을 수반한다. 동시에 체념하기도 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환경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학생 충원율, 취업률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지표를 평가의 잣대로 삼고 있다.

이런 서열 체제 안에서 꼬리부터 자르는 상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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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는 대학 구조조정의 희생양이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2015학년도 입학정원 증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감축한 정원 가운데 83.6%인 1만 4천695명은 비수도권 대학에서 줄였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정원 축소는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이 합리적인지, 조정의 결과가 올바른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려다 또 다른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 같다”는 정아영 씨의 말처럼, 대학 서열에 따른 구조조정이 수도권 대학 집중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결국 구조조정이 대학 서열화를 공고하게 만드는 악순환이다.  그 무한한 굴레 안에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한계는 그들의 발걸음을 서울로 이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직면한다. 왜 우리는 지방을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글. 아호(9208kj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