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특정 분야에 깊게 파고들고, 돈과 넘치는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행위. 과거엔 게임, 만화, 아이돌에 한정되어 쓰이는 말이었다면 근래엔 점차 의미가 확대되었다. 특정 취미에 열중하는 것, 단순히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 특정 분야를 전문가 수준으로 아는 것이라는 의미를 포괄한다.

 

당신은 `덕질`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만일 위에서 밝힌 정의에 동의한다면, ‘덕질’하면 즐거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것부터 전문가 수준의 취미생활까지, 일상에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덕질’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이들이 있다. 바로 지방 청년들이다. 현실적 여건 때문에 마음껏 덕질하지 못했던 지방 청년들은 ‘덕질’하면 가장 먼저 고난을 떠올린다. 덕질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누구에게 뒤쳐지지 않지만, 하면 할수록 현실의 벽을 체감한다는 지방의 청년들. 그들은 말한다.

 

“덕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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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20

 

#임성화 #28세 #지방러
#인디씬 #경상북도_대구 #홍대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지방러. 어린 시절부터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아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찾아다녔다. 공연 관람 이외에도 2차 창작물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 일하고 있는 캘리그라피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인디힙합뮤지션과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에 자주 가고 있다. 대구에서 홍대까지의 거리는 약 800KM, 한번 갈 때마다 왕복 8시간, 10만 원 정도를 투자한다. 상경 경험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현재는 대구와 서울 중 어디에 정착할지 고민 중이다.

 

#김윤정 #26세 #지방수니
#K팝 #전라북도_전주 #올림픽공원

1세대 아이돌 god를 좋아하는 지방수니. 초등학생 때부터 GOD 덕질을 시작해, 활동한 지는 약 15년째다. 덕질 덕에 적성을 발견, 아이돌 팬덤을 주제로 한 문화연구 분과 논문으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약 15년, 오랜 시간 동안 덕질을 해왔지만, 작년 처음으로 서울 공연을 관람했다. 학창시절엔 부모님의 만류로, 대학생 때는 god가 활동을 안 해 공연을 못 보다가 작년 god 완전체 컴백 소식에 바로 공연 예매, 7월 12일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관람했다.

 

#SWAN(가명) #20대 #오타쿠
#부녀자 #소비러 #강원도_강릉 #보라매청소년수련관

2.5D계 부녀자 소비러 오타쿠. 원래 일본 V계 밴드와 일본 아이돌 AKB48을 좋아하는 오타쿠에 가까웠으나, 현재는 2.5D라고 부르는 영화나 드라마를 파고 있다. 부녀자의 길에 들어온 건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체화해 100% 소비러가 되었다. “존잘님 책 내주세요”가 입버릇이 되었으며, 만화 관련 행사가 서울에서밖에 열리지 않는 현실에 울부짖고 있다.

 

#부녀자 – 남성의 동성애를 그린 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하거나 여성향인 여성 오타쿠를 전반적으로 부르는 말.
#소비러 –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의 2차 창작물을 생성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사람. 여성 오타쿠의 경우, 생산러와 소비러로 나눠서 2차창작에 활발하게 활동한다.
#존잘님 – 존잘은 “존나 잘 그린다” 혹은 “존나 잘 쓴다”의 준말로, 글·그림·음악 등의 창작 솜씨가 매우 뛰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덕질을 허락하지 않는 땅>

 

지방러들은 괴롭다. 그들은 덕질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슬픔 역시 깊어진다고 말한다. 덕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못 느꼈을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인프라의 부재다. 문화시설은 부족하고, 있더라도 낙후되어 있어 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한다. 지방러들은 무엇보다 지역에선 문화생활을 향유할 ‘거리’가 부족하다고 한다.

 

※ 지방러 – 흔히 지방에서 덕질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주로 지방러들 스스로 자조할 때 쓰인다.

 

“지역에서는 공연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공연이 있는 서울로 가죠.
대중 가수들의 공연에서부터 뮤지컬, 연극, 전시까지 다 서울에 있어요”
(김윤정. 지방수니 GOD수니, 전주)

“온리전 같은 행사는 지방에서 열린 경우는 본 적이 없어요.
가고 싶었던 행사들도 모두 서울에서 열렸죠”
(SWAN, 부녀자, 강릉)

 

그들이 경험하는 덕질의 슬픔은 통계자료로도 증명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5 문예연감’엔 지난해 문학, 시각예술, 국악, 양악, 연극, 무용 등 6개 문화예술 분야 주요 통계를 정리한 지역별 예술활동지수(Art Index)가 나온다. 서울을 100으로 잡고 나머지 지역의 상대적 문화 인프라 수준을 나타냈을 때 경기 24.9, 부산 17.7, 대구 10.6, 경남 10.1, 전북 8.8, 강원 5.0, 충북 2.6 등을 보여 서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수도권인 인천,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도의 활동지수의 합은 서울의 지수보다 낮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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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지역별, 분야별 예술활동지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난 3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 한 ‘2014년 공연예술실태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전체 공연장 수 1,127개 중 676개 약 60%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공연 건수 역시 전체 45,198개 중 23,588개(약 52%)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게다가 인기공연 같은 경우 모두 수도권, 정확히는 서울에서 열린다. 물적 인프라와 더불어 문화콘텐츠 면에서도 문화예술에서의 서울 집중이 나타난 것이다.

 

뉴스펀딩 7화 3▲ 권역별 공연장 비중, 콘서트 권역별 공연 분포 (2012년 기준)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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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역별 공연장 비중, 콘서트 권역별 공연 분포 (2012년 기준)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런 인프라 차이로 인한 격차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지역의 청년들은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예술 인프라가 있는 ‘서울’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더욱이 K팝은 올림픽 공원, 밴드 공연은 홍대, 연극은 대학로, 뮤지컬은 강남 등과 같이 문화예술의 장르별 상징성을 갖는 장소 역시 서울에 있기에 지역의 청년들은 알아서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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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팝의 성지 올림픽공원

K팝뿐만 아니라 기성 대중가수의 공연이나 페스티벌 등 인기순위 1위부터 10위까지의 공연이 모두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2013년 기준) ⓒ고함20

 

<쉽지 않은 상경>

 

하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그들은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또한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먼 길을 나서기 위한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이동하는 데만 왕복 8시간 그리고 길바닥에 버리는 듯 한 돈을 생각하면 아깝죠.  그 돈, 시간이면 다른 공연, 전시를 볼 수 있을 텐데”
(임성화, 인디팬, 대구)

“왕복 차비만 5만원에 숙박비까지, 기본적으로 20만원은 생각해요.  제일 큰 부담은 역시 비용이에요”
(SWAN, 부녀자, 강릉)

 

이렇게 덕질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는 지방의 환경은 문화예술의 진입장벽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지방과 서울 간 문화생활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이어진다. 서울에서 사람들이 간단히, 그리고 당연한 듯 누렸던 문화생활이 지방러에겐 어떤 조건이 붙어 그 조건 하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단순히 ‘마실’ 가듯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은 지방 청년에겐 ‘여행’이 됩니다”

(임성화, 인디팬, 대구)

“공연이 서울이면 시간과 돈이 다 맞아야 갈 수 있어요. 그래서 몇 번 못 가게 되죠”

(김윤정. 지방수니, 전주)

“제 통장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휴일을 포기했어요”

(SWAN, 부녀자, 강릉)

 

<주변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지방러>

 

문턱이 높다 보니 지방 청년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는 떨어져만 간다. 이것은 문화생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 속에 덕질을 갈망하는 지방러들의 고립감은 커져만 간다.

 

“주변 사람들은 저를 전혀 공감하지 못해요. 

되려, “왜 길바닥에 돈을 버리느냐?”, “노래 듣고 하면 되지 굳이 찾아가느냐”, “또 가냐”고 해서 어떤 말을 못 하겠어요“

(임성화, 인디팬, 대구)

“주변에 제 관심 주제에 대해 얘기할 사람이 없어요.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좀 없던 편인 것 같아요”

(김윤정. 지방수니, 전주)

 

<서울에서만 환영받는 지방러>

 

무엇보다도 지방의 덕후들을 힘들게 하는 건 문화 생산의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다. 서울에서만 덕질을 할 수 있으니, 이들은 어쩌면 서울에서만 환영받는 존재가 된다. 지방에서는 문화 향유의 주체가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문화 자본은 지방보다는 서울이나 해외 같은 큰 시장을 찾는다. 또 지방에 찾아갈 겨를이 없거나,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창작 및 생산 주체들이 있다. 이런 갖가지 이유들 속에서 소외된 지방러들은 더더욱 생각 저편으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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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상에서 ‘지방팬의 서러움’이라는 제목으로 리트윗되고 있는 글

현실의 여건 때문에 공연을 자주 가지 못하는 지방수니들이지만, 덕질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트위터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지방러들의 심리적 박탈감이나 재정적 어려움은 더더욱 가시화되지 않는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방에 거주하는 것 자체를 탓하고 체념하는 것뿐이다.

 

“다 서울에서 하니까요. 서울에서 시작을 하고 끝을 내니까 그게 제일 섭섭하고 서운해요.”

(김윤정. 지방수니, 전주)

“사실 부대행사 같은 건, 지방사는 사람들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죠”

(SWAN, 부녀자, 강릉)

“그냥 제가 돈을 많이 벌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게 개선이 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임성화, 인디팬, 대구)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니, 자조할 수밖에…>

 

오늘도 SNS엔 “지방러/지방수니는 웁니다”라는 자조 섞인 글들이 올라온다. 어디 가나 환영받지 못했던 지방의 청년들이 그나마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은 SNS뿐이다. 그동안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불만들을 얘기하며, 그들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지방의 청년들을 만난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글. 아나오란(wodbstm@naver.com)

[지방 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기획. 달래, 라켈, 아나오란, 아호, 콘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