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밑도 끝도 없이’ 청년희망펀드가 생겨났다. 9월 15일 그분께서 아이디어를 던지시자 하루 뒤 국무총리는 설립 계획을 결정했다. 21일 청와대에서 1호 기부 약정이 성사되었고 같은 날부터 은행은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이게 경과의 전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것이 단번에 별 절차 없이 탄생한 것이다. 청년희망펀드는 그래서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 채 탄생했다. 그런 것치고는 규모가 크다.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 총 다섯 개 은행에서 청년희망펀드를 신청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시금 2천만 원과 매월 월급의 20%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후 강제 아닌 강제로 주요 직위 공무원과 국회의원 등이 연이어 기부하기도 했다. 은행을 포함한 일부에서는 강제 기부 논란이 일어났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놓은 정책은 후속대책이 존재하지 않아서 더욱 황당하다. 과연 메르스 사태 때 4개의 대책본부를 만든 정부답게 뭘 자꾸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일단 기부 신청부터 받고 본다는 식의 진행은 그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걷는 셈이다. 소위 말해 “삥 뜯는” 기분이다. 이렇게 삥 뜯은 돈으로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면 청년의 입장에서도 별로 반갑거나 달갑지 못하다. 문제는 이렇게 생긴 일자리가 얼마나 될 것이며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있다. 관공서든 기업이든 TO를 돈으로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드는데, 그 돈을 한시적 월급으로 쓰겠다는 것인지 혹은 또 하나의 기구를 만들어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청년 일자리는 돈을 모아서 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부담의 몫을 왜 정책 기구나 기업이 아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 청년을 위해 기부하라고 하면 대체 누가 하겠는가? 이는 청년을 ‘신세 지는 사람’ 취급하려고 하는 고도의 전략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책이 없고 어이도 없다.

 

이러한 제안과 펀드가 노사정 대타협 이후 며칠 뒤 나왔다는 점도 굉장히 황당하다. ‘노사정 대타협을 계기로’ 제안한 청년희망펀드는 노사정 대타협의 결과와 전혀 맞지 않는다. 노동시간 연장은 물론 기간제법 및 파견법 개정안 등 노동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선심을 쓰는 것은 병 주고 약 주기 식의 방법밖에 되지 않는다. 사용자 측에게 좋은 방향으로 바뀐 노동법 변화를 사용자 근처에도 못 가본 청년이 좋아할 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가 만들어져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문제가 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그거라도 뛰어들겠다는 사람들은 고생하고 결국 악순환의 고리는 자연스럽게 뫼비우스의 띠를 그린다.

 

99529_91126_5059ⓒ 힐링캠프, SBS

 

청년희망펀드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것이 중장기적 계획이나 구체적 방안 없이 갑자기 생겨났다는 점이 문제다. 대통령이 하자고 하면 그냥 하는 것이 한국인가? 과연 대통령이 장병에게 선물을 ‘하사하는’ 나라답다. 행정자치의 순서가 엉망이 된 정도만큼 누군가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청년희망펀드에 기부를 신청할 것이고, 이것이 위계질서와 엮이면 꽤 많은 사람이 반강제적으로 돈을 모으게 될 것이다. 이는 정부가 구조적 차원에서의 문제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두 번째 문제는 이것이 ‘펀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희망펀드는 금융상품의 한 종류인 펀드가 아닌 원금과 수익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기부다. 국민국가 차원에서 청년이 미래의 자산이고 거기에 투자한다 생각할 수는 있어도 청년 당사자의 입장에서 받는 건 또 다른 차원에서의 빚이다. 앞서 말했지만, ‘기부’라는 이름의 성금 모으기는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법적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채 특정 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정책이 아닌 그냥 관 차원에서의 사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업을 관이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아직 있지도 않은 재단은 민간 주도형으로 갈 예정이며, 청년지원사업 아이디어 공모마저도 국민에게 손을 벌리는 방식이다. 청년 문제를 국민이 참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발상은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제삼자 시점’과 부합한다. 지금의 대통령에게 대부분 문제점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청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제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돈은 필요하겠지만, 돈은 누구나 다 필요하다. 정부는 손에 쥐고 있는 건 놓기 싫고, 또 문제는 해결하는 척은 해야겠으니 이런 식의 전무후무한 해프닝을 벌인 것이라 본다. 대다수 권력층이 구조적 문제를 이런 식으로 외면하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방침이나 정책은 대부분 입막음, 혹은 일시적인 틀어막기 식의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청년은 거지가 아니고 바보도 아니다. 동시에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하길 바라는 국민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청년’이라는 이름을 아무 데나 붙여 이것을 세대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도 지나치게 폭력적인 방식이다. 임금피크제 등의 노동법 개정 추진에도 핑계의 이름은 청년이었다. 이미 학자금대출이라는 이름의 고리대금업을 하는 국가가 이번엔 국민에게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을 보면 세대갈등을 이용하는 일 하나만큼은 적극적인가 싶다. 결정적으로, 이번 청년희망펀드의 수혜를 볼 사람도 전체 중 일부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식의 운영이라면 단기간 내에 다시 일자리 없는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왜 청년을 위해줘도 그들은 불만이냐고 볼멘소리할 생각 말고 지금의 현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절대다수의 처지에서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 블럭(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