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다. 현대의 명절은 의식적이고 전통적인 기능보다는,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 타임라인에서 눈에 띈 건, “아-_- 설날이다(시무룩)”, “큰집 가기 싫다”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포털 댓글에서도, 현실의 지인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누가, 무엇이, 우리를 ‘큰 집 가기 싫게’ 만들었을까?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장(?)이 열린다. 사실 주고받는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 덕담의 장에서 주로 말하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까. 걱정 어린 조언과 꼰대질은 종잇장 한 장 차이다. “그건 조언을 가장한 꼰대질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가 너네만 했을 때’를 살아본 적 없는 어리고, 어리고, 어린 존재이거늘. 동등한 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네네’. 나의 말이 길어지는 순간, 내가 들어야 할 꼰대질은 더 길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명절 때 듣기 싫은 잔소리, 걱정을 가장한 그 ‘꼰대질’에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써먹을지 말지는 여러분 마음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속이 좀 시원해졌으면.

  

# 요즘 세상에 먹고사는 게 너무 팍팍 허네

“그래, 이번에 대학 들어갔다며? 취직 준비는 하고 있니?” 오랜만에 뵙는 작은아버지가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에게 취업 걱정을 쏟아내신다. “문과라니… 인문학 해서 뭐 먹고 살래? 내가 말이야, 요새 들은 게 있는데 (…) 그러니까 경영학과 복전을 꼭 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꾹꾹 눌러 담고 그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하니, “공무원 준비도 좀 같이 해보는 게 어때?” 내 나이 스물에 인생계획 다 짰다.

SOLUTION 제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세상이 워낙 팍팍하죠. 먹고 사는 게 보통 힘들게 아니잖아요. 저도 걱정이네요. “작은아버지 이번에 퇴직하신다면서요? 아직 정년 채운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 노후자금은 챙기셨어요? 펀드는요? 제가 들은 게 있는데, 요즘에는 편의점, 치킨집 이런 거 해서는 절대 편안한 노후 못 보낸대요. 에휴.”

 

# 어머, 휴우-학을 했다고!?

도대체, 왜 때문에 하는 건지 어른들은 1도 이해 못 하는 그 휴학. 이번 학기에 내가 했다. 덕분에 이번 명절은 유난히 반갑지 않다. “그래서, 휴학하고 뭐 할 거니?” 아직 별생각이 없는데, 그냥 쉬고 싶은 건데 무슨 답을 해도 그들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을 테다. 게다가 복전하고 있는 것까지 마치려면 9학기도 빠듯하다. 나중에는 졸업 언제 하느냐고 닦달하시겠지. (시무룩)

SOLUTION 우리도 당당해지자. 휴학 한 게 뭐 죄인가? 학교 좀 더 다니는 게, 졸업 좀 늦게 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휴休학學은 말 그대로 배움을 쉬는 거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 간다고 공부하고, 이제는 취업한다고 4년을 쏟아 붓고 있어요. 저도 좀 쉬고 싶더라고요. 삼촌, 고마워요. 삼촌이 지난번에 만났을 때 요즘 애들은 낭만이 없다고 하셨죠? 그 얘기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낭만 좀 찾으려고 휴학했어요.”

 

# 설날 성형견적은 친척 집에서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살이 좀 찐 것 같다? 여자건, 남자건 요새는 날씬해야 하잖니.” 불규칙한 식사 시간이 버릇 되어 조금 불은 살을 용케도 집어내신다. 이내 견적 내기로 이어진다. 눈이 답답하니 쌍꺼풀이나 뒤트임 좀 해라. 알바해서 코 필러나 좀 맞는 건 어떠니. 요즘 여대생들 다 성형 조금씩은 한다더라. 그런데 키는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사촌 동생을 불러내더니, “언니랑 키 좀 재봐라. 아이고, 언니가 더 작네. 하하.” 성장판이 닫힌 지 5년째인데, 같은 키로 키 재기는 얼마나 더 해야 끝이 날까.

SOLUTION “(순진무구한 표정은 필수)어머, 이거 너무 깊다. 이모, 40부터는 주름관리가 경쟁력이래요. 요새는 너도나도 한 방씩 맞아서 보톡스 얼마 하지도 않아요. 이모도 필요해 보이는데, 사촌 동생 시켜서 한 번 알아보세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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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큰 애가 무슨 인형이니? 애 줘라!

사촌 동생이 내 피규어에 관심을 보이더니 온종일 가지고 논다. 피규어를 들고 거실로 달려나가던 동생이 넘어졌다. 내 피규어의 왼팔도 함께 부서졌다. 초등학교 4학년이나 되는 애가 넘어졌다고 운다. 숙모가 넘어진 아이를 달래며, “울음 뚝! 인형 줄게. 얘, 이거 부서진 김에 우리가 가져갈게.” 그 와중에 사촌 동생이 하는 말, “이거 말고 안 부서진 거 갖고 싶어.” “그래, 그것도 가져가자. 얘, 괜찮지? 다 큰 애가 무슨 인형이니? 얼마하지도 않는데, 그냥 동생 줘라.”

SOLUTION 1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숙모의 백금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어머, 숙모 이거 너무 이쁘다. 이거 얼마하지도 않는데 저 주면 안돼요? 돈 없는 학생이 어디서 구하겠어요.”

SOLUTION 2 “네, 50만 원 주고 구한 건데 얼마 하지도 않죠. 근데 이거 한.정.판이거든요. 딱 개수 맞춰놓고 제작해서 파는 거요. 인터넷에서 중고로 거래되는 거 보면 가격이…(스마트폰 중고카페 창을 띄워 보여준다) 이 정도는 삼촌이 용돈으로 주시겠죠?”

 

# OO이는 벌써 취직해서 엄마 아빠한테 용돈 준다더라!

“누구네 딸이 공무원 시험에 붙었네.”, “누구네 아들이 이번에 삼성에 들어갔네.” 이미 오래전에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만큼 우리는 ‘남의 집 얘기’를 가장한 ‘비교’에 익숙하다. 게다가 명절이 되면, 그 비교 대상의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진다. 삼촌 친구 아들, 큰아빠 사돈의 딸, 이모 지인의 사위…. “누가 뭐 했다더라”하는 이야기는 “걔는 그랬는데, 너는 뭐하고 있니?”라고 들린다. 훈훈한 그네들의 일화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질 뿐.

SOLUTION 이에는 이, 비교엔 비교? “어머, 그 집은 그랬대요?”로 답하며 내가 아는 ‘남의 집 얘기’를 풀어놓자.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대학 동기네 할아버지가 유명한 소설가더라고요. 아는 출판사를 소개해줘서 벌써 취업했대요.”, “선배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돈도 잘 안 나오고 힘든가 봐요. 다행히 집은 좀 살아서 등록금 걱정은 안 한다더라고요.” 치졸하지만 어쩌겠는가. 비교당하는 입장을 겪어본다면, 그 참담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나이 차기 전에 어서 결혼해야지?”

“스물일곱? 아홉 수 전에 결혼해야지.”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할머니의 질문이 날아 들어온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선이라도 보라고 성화다. “에미는 선 자리도 안 알아봐 주고 뭐하니?” 차라리 남자친구가 있다고 할 걸 그랬나 생각하는 순간, 할머니가 남자친구 있는 스물한 살 사촌 동생에게 눈을 돌린다. “너 몸조심해라. 여자는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 해.”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SOLUTION “대통령도 못 한 결혼을 어떻게 제가 쉽게 하겠어요.”

 

 

글. 달래(sunmin5320@naver.com). 이설(yaliyala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