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줄 알았다. 부끄럽게도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한 부모 밑에서 자란 줄 알았다. 이것이 ‘당연하지 않다’라는 걸 처음 깨달은 건 고등학교 때야 가능했다. 아빠가 초졸이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을 듣는 나는 판타지 영화를 접할 때의 감정과 비슷한 현실감을 느꼈다. 완전히 깨닫기까지는 좀 더 긴 시간이 걸렸다.

 

60년대 출생인 부모세대의 대학진학률은 평균 19.68%(1980년~1989년). 이에 부부 모두 대졸인 경우는 더 낮을 거다. 부모학력만으로 따져봤을 때, ‘나’는 대한민국에서 양적으로는 소수였지만, 부모의 학력과 관계있는 요인들을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유리한 위치에서 인생을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상상력의 힘은 무한하다지만 계층 이해에 있어서만큼은 그다지 힘이 없다. [반지의 제왕] 급의 세계관을 상상하는 사람도 다른 계층의 삶을 ‘잘’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다.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감각과 영역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계층을 보기 전에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조차도 일상적이지 않다. 애써서 기획해서 가능한, 다른 사람이든 어떤 참고자료든 다른 요소가 개입해야지 성공 가능한 사건이다.

 

요즘 유행하는 듯한 헬조선 담론의 ‘흙수저 빙고’도 그러한 사건을 제공하는 요소다. 그렇지만 동그라미 치는 씁쓸한 재미만 있지 질 좋은 계층 시험지는 아니다. 빙고 항목을 면면히 뜯어 보면 과연 이 항목에 해당한다고 해서 흙수저라 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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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드는 대표적인 항목이 “부모님이 자식 교육에 집착이 심함”이다

 

흙수저-금수저뿐만 아니라 청년세대를 경제적 어려움으로 묶어내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상관없다. 다만 그 전에 자기가 어떤 계층에 속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계층의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좋겠다.

 

우선, 전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확률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두 개의 프로젝트가 흙수저 빙고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질 좋은 계층 시험지라고 생각한다. 시각문화집단 ‘옵티컬레이스(박재현, 김형재)’의 작품 [확률가족] 전시가 올해 초 아르코에서 있었다. 부르마블의 말처럼 선택지를 따라 통통 걷다 보면 자기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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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가족] 전시 당시 사진 / ⓒ아르코미술관

 

이 전시의 이름을 빌려, 전시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연재되던 ‘아파트키드의 생애’라는 [나-들]의 연재가 책으로 묶였다. 책 [확률가족]은 활자와 행간의 사고 시간을 통해 동명의 전시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책은 여러 저자가 쓴 에세이로 구성돼 있다. 저자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부모로 둔 30대들로, 자기 가정의 주거사를 글로 풀어낸다. 남의 집 부동산사가 어째서 계층 시험지가 되는지는 그들이 증언하는 이야기의 주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80년대의 한국은 중산층-핵가족 모델을 지향했다. 한국의 성장기와 자신의 성장기가 일치하는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 부부들은 화이트칼라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주부인 부인이 돈과 아이들을 굴리는 형태를 취했다. 저금리 시대에 재테크는 계와 부동산이었고 추상적인 재테크는 자녀교육이었다.

 

특히 부동산은 가정경제와 중산층 진입, 유지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아파트는 월급쟁이가 노릴 수 없는 수준의 목돈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었고, 그렇게 입성한 아파트에서 핵가족들은 ‘중산층’의 삶을 배웠다.

 

“아파트는 중산층-되기라는 학교에 달린 기숙사였다”

 

각 저자들의 에세이에는 부동산사를 중심으로 그 집안의 학벌, 직업, 부동산 이야기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곧 한 가족의 계층사가 된다. 통계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옵티컬 레이스의 분석에 따르면, 계층은 교육, 직업, 자산(주택)을 통해 정해진다. 대졸이고, 정규직이고, 1가구 N주택일수록 계층은 올라간다. 여러 편의 에세이를 읽으며 우리집은 어떤 집과 가까운지를 비교하고, 시각화된 통계를 보며 우리집은 한국에서 어떤 위치에 속해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번갈아가며 반복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해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너도 흙수저 나도 흙수저

 

앞선 ‘헬조선’ 이야기를 이어 하자면, 헬조선은 새로운 감각에 대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월세살이는 월세 내느라 힘들고 월세장사는 월세 받느라 힘들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 중 하나는 ‘고생했음’이었고, 스스로 흙수저라고 상정하는 이야기는 흔했다(대표적인 게 “네 나이 때는~”으로 시작하는 자수성가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흙수저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지옥을 모른다”라며 꼰대질을 하던, ‘헬조선의 민심을 혁명으로’라며 레미제라블을 불러대던, ‘일단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점검하는 과정을 의무적으로 가졌으면 한다. “금수저는 빈곤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계층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전 계층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거다. 그 시작은 내 위치를 아는 것이고.

 

“어이쿠 저렇게 힘든 사람도 있다니, 나는 행복하구나” 따위의 타자화하는 건 문제겠지만, 자신의 힘듦을 객관화하지 못한 채 힘듦을 이겨낸 자신을 자랑하고 실제로 힘든 사람의 힘듦을 징징댐으로 치환하는 작전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자신의 계층과 다른 계층의 존재를 전제해야 청년의 경제적 어려움과 청년빈곤 문제에 대해 모두 하나의 ‘청년’이라는 동질적인 집단의 문제로 퉁치지 않을 수 있으며, 다각적이고 디테일한 분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조선의 흙수저여, 먼저 주제를 알자!

 

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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