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헌은 사랑방 너머에 있는, 여성들이 모여 놀 수 있었던 공간을 의미한다. 동시에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져 꽤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 그사이에는 10년이 넘는 엄청난 공백기가 있었다. 인원 모집이 잘 안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세미나와 소책자 발간만 겨우 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정정헌은 다시 문을 열고 교지를 발간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을 지나며 재개한 정정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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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기(?) 동안 만들었던 유인물

 

정정헌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요?
2010년을 지나면서부터 여성혐오 이슈가 사회적으로 많아졌어요. 여성주의라는 것을 찾기 힘든 풍토가 되면서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 중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죠. 지금 시점에서 여성주의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계속 만들어져야겠다고 생각해 여기서 교지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2012년부터 14년까지 총 네 권의 교지를 냈어요. 2012년에 한 권 내고, 13년에 두 권, 14년에 한 권을 만들었습니다. 교지를 내면서 꼭 학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여성주의가 왜 필요한지, 이게 뭘 하는 건지, 여성의 삶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지를 만드는 단위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활동 전부는 아니고 그걸로 사업을 만들어서 같이 읽자고 하는 걸 기획하고 있어요. 또 올해 5월 학교에서 주점을 했는데 그때는 여성 혐오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읽으면 좋을 책과 영화를 추천해주는 사업을 했어요. 그런 것들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같은 것도 다시 시작한 이래 꾸준히 해왔나요?
올해부터 다시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작년까지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2, 3명이 전부 해왔거든요. 근데 올해는 새 맞이를 좀 크게 했어요. 오픈 세미나를 열어서 모집한 덕에 지금 구성원은 총 9명 정도 되어요.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이 되어서 시작할 수 있었죠. 읽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니까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올해 3월에 오픈 세미나로 진행했던 게 “슈퍼맨이 돌아왔다” 관련해서 “삼둥이 짤은 모으는데 아이 키우기는 꺼려지는 나, 비정상인가요?”와 같은 문제 제기나 ‘보육교사 폭행 사건’ 이슈에 관한 이야기처럼 우리가 접하고 해결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문제들을 다른 게 아니라 여성주의라는 틀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분석해내고 해결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여성만을 위한 학문도 아니고,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이야기이고 분석을 하는 틀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는 편인가요?
이전에 냈던 교지 자료나 준비자료는 파일로 다 있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 있더라고요.

 

45924-02“삼둥이 짤은 모으는데 아이 키우기는 꺼려지는 나, 비정상인가요?”

 

교지는 1년에 한 권, 두 권 이렇게 정해진 건 없나 보네요.
예전에는 1년에 두 권이었어요. 작년에는 2학기 때 원래 광고대행사와 함께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져서 하반기에 못 낸 것이 있죠. 사실 학교에서 지원을 못 받고 있어요. 매년 요청을 하기는 하는데 어쨌든 계속 인원이 적고 그래서 아직 못 받고 있고, 단위들이 너무 많다 보니 학교에서 지원을 안 해주려고 해서 어렵긴 하더라고요. 그런 사정도 있고, 올해는 사람이 많이 들어왔는데 여성주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많이 있더라고요. 교지를 많이 내기보다는 같이 세미나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게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올해는 한 번만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학교 쪽으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고 있지 못하는군요.
공간 하나 받은 것 외에는 지원받은 게 없어요. 예전에는 언론사 계열에 속해 있어서 성대신문이나 방송국처럼 지원을 받았는데, 10년 동안 활동을 안 하다 보니 지원을 못 받더라고요. 성격상 동아리가 아니니까 동아리 쪽으로 지원을 받을 수도 없고 해서, 지금은 그런 상태입니다.

 

교지의 내용도 간단히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맨 처음 다시 시작하면서 냈던 교지는 여성이 어떻게 사는지 대학 들어왔을 때부터 입학, 연애, 취업, 임신 이런 식으로 이슈를 나눠 다뤘던 적도 있었고, 아니면 아예 여성주의에 초점을 맞춰서 오만과 편견을 깨고 역사, 말하고자 하는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등을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의 여성 정책을 다뤘던 적도 있어요. 최근에는 미디어에 드러나는 여성상을 분석해서 실었어요. 올해는 여성혐오 관련 이슈를 정리해서 다루고, 양성평등이 정말 이루어졌는지 여성의 삶을 돌아보는 방식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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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한 켠에 모아놓은 책과 자료들

 

교지 배포는 잘 되는 편인가요?
얼마 정도 나가는지는 모르기는 하는데, 교지가 잘 운영이 되고 수요가 많은 경우에는 파급력이 있겠지만, 이 학교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지나 성대신문도 잘 안 읽고 구독률이 낮다고 들었어요. 학우들 관심의 정도가 기본적으로 낮고,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그나마 배포를 많이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엄청나게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 지나가시면서 좋다고 얘기하시는 거 보면 뿌듯하고 그렇죠.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뿌리려고 해요. 보통은 배부대 설치해서 집어가게 했거든요. 그런 거 말고 교지가 나오면 들고 강의실 들어가서 발언도 하고, 읽어달라고 이야기도 해서 좀 더 많이 배포해 볼 계획입니다. 항상 비치되어 있거나 그러지는 못해요. 사실 그럴 공간이 없어요. 가끔 구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오기는 하더라고요. 그러면 저희 방에 있는 걸 가져다 드리죠. 수원에 있는 율전캠퍼스와는 연계가 있거나 그런 곳이 없어서 거기에는 배포되지 않아요.

학내에 연대하고 있거나 연결된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과대 여학생위원회가 있어요. 거기와는 사업을 자주 하지는 못해도 재작년에 여성혐오를 주제로 대담회를 연 적 있고 같이 대응해야 하는 사안이 있으면 같이 하는 정도? 연락 정도는 주고받고 있어요. (성균관대에는 총여학생회나 총학생회 산하 여성국 같은 건 없나요?) 그걸 올해 설치한다고 말이 있었는데, 실제로 유효한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고 만들겠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성평등상담소도 있기는 한데, 학생들이 운영하는 건 아니다 보니 그쪽과는 교류가 없어요.

학내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은 어떤지 궁금해요.
그냥 뭐… 사회 전반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웃음) 건강한 단위들이 아직 많이 있기도 하니까 그중에는 여성주의를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아도 커리큘럼 안에 넣고 한 번씩 (관련 텍스트를) 찾아 읽으면서 공부하는 곳이 있더라고요. 사회대 학회라든지, 중앙동아리 중에서도 공동체 윤리 같은 거 보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곳이 남아있기는 한 것 같아요.

 

 

45924-04안쪽에는 과거 정정헌 교지들이 있다

 

지금 정정헌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사실 남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니까요. 살기가 되게 답답한 세상이잖아요. 이런저런 문제도 많고, 특히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되게 힘든데 그게 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고, 함께 고민했을 때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게 여기 있는 개인들에게도 큰 기쁨인 것 같아요. 너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아서 우울함에 빠지는 게 아니라, 그래도 어쨌든 이걸 공부하면서 뭐라도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동력을 얻는 것 같아요.

모든 대학에 있는 건 아니지만, 대학 사회 내에 여성주의 단위가 있잖아요. 이러한 단위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웃음) 여성의 경험 자체가 되게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과방, 학회 이런 곳에 여성이 오래 남아있지 못하거나, 취업에서 장벽을 느낀다거나 그런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는데 사실 그러한 것들이 (여성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는 걸 여성들이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게 개인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든 어쩌든 이게 공통의 문제라는 걸 인식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여성주의 단위가 계속해서 여성의 경험을 공통의 것으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 한 편으로는 미디어에서 ‘페미니즘 과잉이다’라고 분석하는데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어디든 페미니즘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야 하는데, 대학이 가장 유리한 공간이기는 한 것 같아요. 취직해서 먹고 살기 바쁠 때는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 것 같고, 생계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는 공간이고 사람 모이기 좋은 곳이잖아요. 요새는 잘 안 모이기는 하지만. (웃음) 그나마 남아있는 공간으로서 여성주의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주의도 계속 변해야 하는데, 대학에 있는 여성주의 단위는 그러한 변화나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은 그래서 정정헌의 여성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3월부터 했는데,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근데 중요한 건 완성된 여성주의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필요한 여성주의는 어떤 형태를 가지고 어떤 이슈를 말해야 하는지 새로 발굴해 내는 거고 그런 작업을 하기에는 대학 내 여성주의 공간들이 가능한 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으로 아까 편집회의를 살짝 엿들었는데, 앞으로 나올 교지 내용이 흥미롭더라고요.
2학기에는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교지 나눠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려고 해요. 부스 세워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교지도 배부하면서 우리가 교지가 쓴 내용에 대해, 아니면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에 대해, 아니면 20대 여성의 삶에 대해 주제를 잡아서 사람을 만나려고 해요. 20대 대학생들의 모임이니까 그 밖의 여성의 삶에 대해 알기 어렵더라고요. 방학 중에 시간이 있을 때 교지에 실을 겸 3, 40대 여성들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걸 다시 학교로 전달하고 그런 식으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글/사진. 블럭(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