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는 잠실, 연극은 대학로, 인디음악은 홍대입구. 하다못해 페이스북에 뜨는 데이트 추천 코스까지 모두 ‘서울’인 시대다. 31가지의 아이스크림을 맛 볼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면, 지방은 두세 가지 맛만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서울로 쏠리는 ‘서울 수렴의 법칙’은 ‘문화’에도 적용된다.

 

“공연예술이 전공인데 순천에는 공연이 없어서 서울이나 가까운 광주로 가요.” Rain (23,순천)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여긴 청년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이학영,24,광주)
“돈 써도 아깝지 않은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정승현 (26,대구)

 

우리가 만난 지방청년들은 ‘서울과의 문화격차’을 절실히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 불편함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술 분야의 지역별 활동 지수’에서 서울을 100으로 놓고 볼 경우 부산 17.7, 대구 10.6 순이다, 충북은 고작 2.6에 그쳤다.(2015 문예연감)

 

그런데 모든 지방청년이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 것은 아니었다. 문화격차란 ‘불편함’에 주저하지 않고 새로움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는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청년들을 만나봤다.

 

 

# 예술가는 떠나고 주민들은 문화소외…움직이는 미술관 ‘무빙아트웍스’가 나선다

 

“서울에는 주요 갤러리가 200개가 넘는데, 대구엔 35개가 있죠. 미술하고 싶은 젊은 친구들은 다 서울 올라가려고 하고.”

 

미대를 졸업 후 화가를 꿈꿨던 대구 무빙아트웍스 박우영 대표. 그가 졸업한 대구 소재 대학 근처는 서울과 달리 그의 그림을 전시할 공간이 많지 않았다. 미술은 비싸고 어렵다는 편견 때문인지, 그나마 있는 갤러리도 일반 시민들도 잘 오지 않았다. 박 대표는 반대로 “사람들이 안 오면 우리가 그림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는 역발상으로 캔버스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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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아트웍스는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길거리 전시해서 지역민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길거리 전시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무빙아트웍스

 

거리 한복판이 그림과 버스킹 공연으로 가득차면서 남녀노소 발걸음을 멈춘다. 모두 하나 되어 눈과 귀로 그림을 즐기는 문화 축제. 무빙아트웍스 덕에 대구 지역 신진 아티스트들에겐 전시 공간이 생겼고, 지역주민들은 바로 집 앞에서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박 대표는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전국노래자랑’처럼 모든 지역민에게 찾아가 예술 축제를 전해주고 싶다”면서 때때로 문화소외지역까지 찾아간다. 지방은 소도시와 대도시 간에도 문화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가 안동의 한 재래시장에 찾아갔을 당시, 한 할머니가 찾아왔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따듯해진다. “그림도 재밌게 보고, 바디 페인팅도 처음 해봤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박 대표는 “아직 재정적으로 힘들지만 저런 분들이 있기에 무빙아트웍스를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 술집을 벗어나 청주에 만드는 제2의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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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 중문 문화 활성화’를 위해 매달 인근 공원에서 ‘공연+플리마켓+전시’ 복합문화행사를 선보이는 문화기획동아리. ⓒ문화기획동아리 ‘충동’

 

지방의 문화 공간 부재는 사실 미술이라는 특정 예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인구가 많은 지역 대학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방엔 청년이 많아도 제대로 된 문화공간 하나 찾기 힘들다. 청주 지역에서 꽤 발달한 충북대 근처도 마찬가지다. ‘놀거리’란 술을 마시거나, 영화관에 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다.

 

그런데 최근 충북대 대학로 앞이 떠들썩해졌다. 바로 ‘공연+전시회+플리마켓’의 복합문화행사를 여는 충북대 문화기획동아리 ‘충동’ 때문.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함께 즐기는 행사로 자리 잡기엔 반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요즘도 SNS로 “언제 공연을 또 하느냐” “너무 재밌다”는 학생들의 응원이 줄을 잇는다.

 

“충북대 중문 상가에 술집은 125개나 되는 데 문화시설은 단 3개에요. 큰 지역 축제를 종종 하지만, 막상 청년들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축제는 없죠. 술 먹고 노는 문화 말고 생산적인 문화도 필요하잖아요?” (‘충동’ 대표 최천)

 

# 지역색이 묻어나는 마을 축제를 만들자! 천안 덕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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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DUCK)의 소란스러움(LOUD)을 표현하며 지역에 이슈를 만들어 나가자!”는 뜻으로 2012년부터 30여 회 이상의 지역 축제,콘텐츠를 만드는 청년문화기획 단체. ⓒ천안 대학생문화기획단체 덕클라우드

 

12개의 대학이 한데 모여있어 ‘대학특구’라고 불릴 정도인 천안지역. 야우리라는 상업지구가 발달하고 때때로 학생들이 모여 밴드공연이나 버스킹 공연을 한다. 그 유명한 ‘벚꽃엔딩’도 바로 장범준이 천안에서 대학을 다닌 시절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이나마 멀어질수록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경험하기 힘들다. 차라리 가까운 ‘서울’로 가는 경우도 많다.

 

“서울에선 청년이 경험하는 문화의 폭 자체가 틀려요. 우리는 천안지역에서 ‘소란스러움’을 끌어내고 싶어요. 천안 지역만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요.” (조성진 덕클라우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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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역 지하상가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축제. ⓒ덕클라우드

 

쇠락한 천안역 주변이 최근 다시 청년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3년 전 한국기술교대 학생들이 모여 시작한 청년문화단체 ‘덕클라우드’가 천안 청년들이 놀 수 있도록 ‘지역색을 입힌 문화콘텐츠’를 만들면서 부터다. 학생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천안 지하상가에서 DJ음악에 맞춰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기발한 아이디어처럼 천안역 주변 재생에 힘쓰기 때문이다.

 

‘마구잡이식 축제가 아니라 지역에 특성화된 콘텐츠’에 집중한다. 처음 덕클라우드를 만들었던 김성묵 대표는 현재 ‘자이엔트’라는 축제기획사를 만들어 번창 중이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 비해 기회가 많은 지방에서 특색 있는 문화사업이 먹혀든 것이다. 덕클라우드는 그 기회를 잡은 케이스다.

 

“서울 가는 게 무조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긴 그만큼 정글처럼 경쟁도 치열해요. 반대로 지역에서는 작은 움직임은 큰 움직임이 될 수 있어요.” (덕클라우드 조성진)

 

# 서울이 아니어도 돼! 내 동네에서 행복해지는 비법, 천안 호두와트 마법학교

 

덕클라우드에 이어 천안 지역엔 지나칠 수 없는 ‘동네 마법학교’가 있다. 서울에 가지 않고도 소박하게 지역에 모여 행복하게 놀고 싶은 청년들이다.

 

“지하철도 뚫리고 거리마다 프랜차이즈도 즐비한데, 왜 우리 지역은 놀거리가 없을까? 여기서 재미나게 살 수 없을까?” ‘호두와트 마법학교’는 서울 안가고 천안 지역에서 우리끼리 베짱이처럼 놀 수 없을까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호두와트 구성원들은 서로 자신의 꿈을 공유하고 지역에서 놀거리를 찾고 조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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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청년들이 관계를 맺고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주어진 자원으로  다양하고 재미난 실험을 해보는 마법학교. ⓒ호두와트 마법학교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동네 안에서 더 재미나게 노는 법을 연구하고 실험한다. 호두와트의 주찬씨와 한빛씨는 서울에 살다가 천안에 내려왔을 때 서울이 그리웠지만 곧 천안 지역살이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천안은 너무 조용해서 초반엔 당황스러웠는데 나중에는 편안함을 느꼈어요. 서울은 이미 너무 많은 프렌차이즈로 뒤덮여 있는데, 여기는 곳곳에 아이디어와 추억이 묻어나는 곳들이 많더라고요.”

 

맨땅에 헤딩하는 지역청년들의 도전

 

지금까지 만나본 이들의 도전은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 이들의 시도는 어딜 가나 ‘처음’이었기 때문. 문화 지원 사업이 많은 환경 덕에 문화예술 커뮤니티가 뿌리내리기 수월한 서울과 달리 지방에선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조언을 구할 곳도 보고. 배울 곳도 없다.

 

충동의 최천 대표는 서울에 있는 문화 행사에 참가해 보고 배워오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상경한다. 서울에서 배워와 청주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준비하는 문화공간 만들기 사업도 서울의 ‘최게바라 기획사’라는 문화기획사를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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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년허브

 

서울은 이미 문화 인프라가 쏠려있다. 청년들이 문화생활을 하기에도, 만들기에도 수월하다. 문화 기획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청년 육성 기관 ‘서울시 청년허브’가 구심점 역할을 한다.

 

매달 청년조직을 선발해 금전적 지원을 해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파티 등을 열어 지속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어 준다. 회의하기 위해 카페를 전전하는 청년들을 위해 ‘청년청’이라는 청년활동자립을 위한 공간도 내어준다. 지방에도 서울청년허브처럼 ‘광주청년센터 the숲’이 올 여름 개관하긴 했으나, 여전히 지방엔 청년활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플랫폼이 부족하다.

 

이제 막 싹 틔는 지역 청년문화가 건강하게 꽃피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체계적인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특히, 금전적인 지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덕클라우드 조성진 대표는 “지원금이 부족할 땐 자비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다.

 

그나마 있는 지원정책마저 부실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단체는 “각종 기관별 공모 사업에 지원해봤지만, 번번이 ‘인맥’이 없으면 지원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며 “‘끈’없는 신생 단체는 지자체로 사업에서 공정한 경쟁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호두와트 마법학교’는 돈만 던져 주는 지원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후관리 하는 체계적 지원이 필요다고 역설했다.

 

“돈을 줬으니 빨리 결과를 내놓으라고 채근한다면, 결국엔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이 생긴다. 어른들도 실패하는데 우리도 충분히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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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전시를 즐기고 있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무빙아트웍스

 

함께 모여서 즐기는 곳, 어디에든 문화는 있다

 

지방에 문화서비스 시설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청년문화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즐기면 어디서든 문화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그들의 노력이 ‘서울이 아니라서’ 빛을 보지 않는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크게 보이는 것, 성과를 내는 것만 만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 자체가 기성세대가 쳐놓은 울타리에요. 우리는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어요. 청년이 있으면 문화는 어디에나 있어요.” (호두와트 마법학교 주찬)

 

 

글. 라켈(glory0812@nate.com)

기획. 라켈(glory0812@nate.com), 달래, 아나오란, 아호, 콘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