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1Kill : 명절에 아내 눈치 보느라 힘들다는 남편들에게
 
 
 
명절은 수많은 가정에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가 폭발하는 날이다. 집에 있을 때는 설거지라도 하던 남성들이 친가에 가니 손 하나 까딱 안 한다는 불만은 낯설지 않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아내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말도(주부들의 20%는 명절만 되면 소화불량에 걸린다), 명절 직후에 이혼율이 증가한다는 이야기(명절 직후의 이혼 건수는 직전 달에 비해 평균 11.5%가 높다)도 이젠 익숙하다.
 
문제를 인식했지만,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랜 시간을 끌어온 탓일까. 오롯이 여성에게만 부여된 명절 노동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문제’쯤으로 여겨지나 보다. [머니투데이]가 담아낸 ‘명절날 눈치 보는 남편’들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서울신문

 
 
“유부남들이 가장 많이 꼽은 명절 싸움의 원인은 여성에게만 노동이 몰리는 명절 문화다. 제사와 손님 접대에 필요한 음식 장만을 여성들이 전담하다 보니 남성들은 대부분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TV를 보는 게 대다수인데, 이것이 아내에게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마지막 문장을 정정하고 들어간다. 그건 아내에게’는’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냥 X나 심각하게 불합리한 일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남편들은 명절 싸움의 원인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일이라 너무 괴롭다”고 입을 모은다. 아니 왜 해결책이 없다는 건가? 해결책은 있다. 부엌으로 가라. 가서 죽치고 앉아 같이 전 부치고 고기 삶고 국을 끓여라.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다. 사실 남편 조상을 위한 밥상인데, 아내가 도와주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남편이 일을 도와주면 되레 아내가 시댁 식구에게 눈총을 받을 텐데”라는 걱정이 같잖다. 불합리함을 개선하는 것은 눈치 볼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이다. 아내가 받을 눈총을 막는 것도, 명절에 남자 일하게 한다고 눈치나 주는 시댁에 한 여성을 시집오게 한 당신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기사에 나온 대로 “전통적인 역할 모델에 충실했을 뿐인데 왜 아내는 남편 탓만 하느냐”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전통에 충실하게 부모 죽으면 3년 동안 상복 입고 슬퍼하며 고기는 입에도 대지 말았으면. 필요에 따라 가져다 쓰는 ‘전통적인 역할’에 무슨 의미나 권위가 있나. 게다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전통이라면 갖다버리는 게 옳다.  
 
아내 눈치 본다고 징징대지 말고 불합리함을 개선할 용기가 없는 스스로를 탓하길 바란다. 문제는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니라 당신들의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그저 남성으로 태어난 덕에 명절에 손에 물 묻히지 않아도 밥 먹을 수 있고, 남이 차려준 상 앞에서 절만 몇 번 하면 되는 그 ‘편함’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거다.
 
 
 
2kill : 나는 처댁이 싫어요
 
 
 
많은 부부들이 명절이나 기타 행사 때마다 시댁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일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에 번갈아가며 시댁과 처댁에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아직까지 그런 ‘공평한’ 이야기는 보편적이지 않은 에피소드다.
 
그동안 며느리가 명절(혹은 제사)마다 시댁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거나, 처댁에는 뒤늦게 가거나 아예 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결혼 후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권력 구조상 약자의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는 오래된 인식에 더해, 가사노동 역시 여성의 몫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명절에 노동력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남의 가족 차례상을 위한 노동력이다. 공평한 명절을 위해서 며느리들은 아직도 시어머니, 또 남편과 대립해야 한다. 그것은 가족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헤럴드경제

 
 
이 기사에서 주장하는 ‘요즘엔 오히려 처월드 시대’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남편들이 무조건 시댁보다 처댁에 먼저 가는 문화가 자리 잡고, 명절음식을 모조리 사위들이 담당하면서, 여성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장면이 흔해져야 한다. 또 장모와의 갈등을 참지 못하는 남편에게 부인은 ‘참아라, 견뎌라’라고만 말하는 분위기가 당연해져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그 상황은 남편들에게 불평등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을 며느리로 바꾸면, 여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부당한 일들을 견뎌야 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명절이면 며느리들의 ‘시월드’ 스트레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명절 가사노동은 확연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불편한 마음은 여전해 보인다.” 누가 불편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발화의 주체인 남성이 명절 가사노동에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죄책감만 가질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나눠서 하는 실천이 더 필요하다. 처월드에 갇힌 남성들이 속내를 토로할 곳이 없다? 부부싸움으로 이어진다? 왜 그동안 여성들의 시월드 스트레스 토로는 이기적인 일로 치부되었는가? 시월드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처월드’라는 단어를 사용해 가사노동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을 곧바로 폭로할 수 있는 이 권력구도는 왜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페이스북 대표이미지. ⓒ SBS, ‘자기야-백년손님’
 
글. 달래(sunmin5320@naver.com).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