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엔 끝이 없다고 하지만 이젠 다 옛말인 것 같다. 배움엔 정해진 끝이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은 ‘초-중-고-대’를 정해진 루트로 살고 있다. 학부 학력 이상의 공부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취업이 안 돼서?”와 같은 조소와 연민이 필연처럼 따라온다. 박사 학력 1만 시대가 열렸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여전히 ‘대’ 이상의 ‘대학원’은 생경한 영역이다. 생경해서 온갖 상상과 추측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고함20은 대학원 진학 준비생 R씨를 만났다. “취업이 안 돼서?”라는 질문에 대해 R씨는 뭐라고 답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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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대학원 졸업자 수  ⓒ한국교육개발원

 

참새(이하 : 참) : 자기소개 부탁한다.

R : 저는 수도권 A대학에서 재학 중이고 사회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이는 25살이고 학번으로는 10학번이죠. 처음부터 사회학에 관심이 있어 사회학과로 진학한 건 아니고요. 수능점수에 맞춰서 들어왔습니다.(웃음)

 

참 : 점수 맞춰 들어온 학과에 어떤 게 마음에 들어 대학원까지 준비하고 있는 건가?

R: 제가 처음 사회학과에 들어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막연히 ‘수능 사회탐구영역의 사회문화와 비슷한 건가?’ 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죠. 소학회에 들어서 마르크스를 처음 접했을 때도 ‘되게 특이한 관점이다’라는 정도만 생각했죠. 그때만 해도 대학원을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군대를 전역하고 소학회 회장을 맡게 되면서 점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학회를 운영해야 하니까 책도 한 번 더 찾아보고, 사람들한테 듣고 배우기도 하는 그런 과정이 엄청 재밌었어요.

 

참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재밌었나?

R : 음. 사회학을 알기 전까지는 그냥 습관적으로 내 행동이나 말에 성찰 없이 살았어요. 그냥 지금까지 했으니까 지금도 해야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살고 있었는데, 사회학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분석하고 있었고, 왜 내가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알려주고 있었어요. 조심스럽게나마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수 있다’라고 얘기해주는 것까지 매력 있었죠.

 

참 : 어떤 대학원에 진학을 준비하고 있나?

R : 저는 일단 서울대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거 말고는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의 대학원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 : 두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유가 있나?

R : 학문적인 이유보다는 금전적인 이유로 두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죠. 다른 사립 대학교는 대학원 학비가 굉장히 비싸거든요. 서울대는 국립 대학교니까 그나마 저렴한 편이에요.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도 장학금 같은 혜택이 유리하기 때문에 다니고 있는 학교까지 포함해서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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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등록금 알림표. 서울대 대학원의 등록금은 ‘그나마’ 싼 편이다. ⓒ서울대학교

 

참 : 진학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R : 사회학과 같은 경우는 학문적인 소양이나 능력이 중요하고 생각해요. 연구계획서도 제출해야 하고 면접도 봐야 하니까요. 가끔 페이스북이나 다른 블로그를 보면 놀랄 정도로 잘 쓴 글들이 보여요. 그런 글들처럼 자기 관심사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소양이나 능력이 중요하죠.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건 돈인 것 같아요.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죠.

 

참 : 돈 얘기는 뒤에 나올 질문에 준비했다. 그때 얘기하자.(웃음) 우선, 학문인 소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소양을 쌓으려면 학부 수업만으로 충분한가?

R : 충분하지 않아요. 다른 학교와 학과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희 학교는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고 하는 것 같아요. 고전 사회학자부터 현대 사회학자까지 많은 것을 배우는데 배운 것들이 연결이 잘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졸업할 때쯤 돼도 내가 4년 동안 배운 학문이 무엇인지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참 : 그럼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대학 수업 외에서 따로 배워야 하는 건가?

R : 네. 저 같은 경우는 서울에서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어요. 또 시간될 때마다 대학원생 선배들과 같이 하는 공부에도 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참 : 세미나나 모임 같은 건 어떻게 알게 되는 건가?

R : 소학회를 운영할 때 대학원생 선배와 친해졌어요. 그 인연으로 같이 공부할 기회가 생겼어요. 서울에서 하는 세미나도 대학원생 선배를 통해 참석하게 됐어요. 대학원생 선배와 관련된 경로로 알음알음 접하고 있어요.

 

참 : 알음알음 아는 것 외에 참석하는 경우는 별로 없나?

R : 음.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인터넷 검색 같은 걸 잘 못 하는 편이긴 해요.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회학과 관련된 세미나를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엔 인문학 강좌는 많이 열려요. 그에 반해 사회학은 여전히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참 : 학교에서는 취업설명회 문자가 하루에도 3개씩 온다. 그에 비해 대학원 진학 관련 프로그램은 전무한 것 같다.

R : 맞아요. 대학원 진학 준비생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맥을 통해 준비하거나, 교수님에게 기댈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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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를 맞이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문자가 온다.

 

참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학교에서도 대학원생은 필요할 것 같은데?

R : 일단 평가에 별 도움이 안 되죠. 평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건 돈도 안 된다는 뜻이고. 요즘 대학교는 졸업생이 어느 기업에 취업했는지가 평가에 중요하니까요. 어느 대학원에 갔는지, 그리고 대학원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다니는 대학도 졸업하려면 영어점수가 필요해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의 지원 자격인 토익 730점 이상이죠. 모든 게 취준생 중심이에요.

 

참 : 준비하면서 어려운 것은 없나?

R : 있어요. 지금은 대학원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어떤 주제로 무엇을 연구하고 싶다는 게 아직 없어요. 그냥 이론을 더 공부하고 싶고 더 많이 알고 싶은 이유로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대학원에 가려면 어떤 주제로 무엇을 연구하고 싶다는 계획을 꼭 짜야 해요. 저처럼 관심사가 막연하거나 단지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원에 진학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참 : 단지 공부를 하고 싶은 거라면, 지금하고 있는 세미나로 충분하지 않나?

R : 세미나 같은 경우에는 특정한 전공의 강사분을 모셔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모시는 강사님은 대개 1명이죠. 수강생이 많이 없으니까 많이 모실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배울 수 있는 주제도 한정 돼요. 대학원 같은 경우는 교수님이 여러분 계시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를 학부보다 심도 있게 접할 수 있죠. 공부를 하다가 관심사를 찾는다면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도 대학원이 매력 있는 이유에요.

 

참 :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대학원을 진학하는데 학부 때의 학벌이 많이 중요한가?

R : 저도 준비생 처지라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것이 가산 요인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비서울권 학생이기도 하구요. 여러 루머는 나돌고 있지만. 정확히 이렇다 할 얘기는 못 들었어요.

 

그보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닌 대학원 준비생들이 다른 지역의 대학원 준비생들보다 유리한 건 가산점의 여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아무래도 서울에 대학이 집중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서 스터디나 세미나도 더 활발하게 열려요. 지금 저도 수도권에서 살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가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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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20 <지방 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중 

 

참 : 대학원 이후의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R : 대학원을 가면 일단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무조건 유학을 가고 싶어요.

 

참 : 무조건? 무조건인 이유가 있나?

R : 제가 하고 싶은 공부가 이론사회학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론을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이 유럽에 비해 많이 약한 것 같아요. 이론사회학이 전공인 교수님들의 수가 많이 부족한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엔 유학지로 프랑스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독일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관심 가는 이론가에 따라 가고 싶은 유학지가 바뀌어요.

 

참 : 돈이 엄청나게 들 것 같은데?

R : 맞아요. 엄청나게 들겠죠. 그런데, 아직까지는 ‘어떻게 벌어서 충당해야지’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너무 먼 일이잖아요(웃음). 일단은 가까운 일인 대학원 진학 준비에 힘을 쏟고 있죠.

 

물론 돈 문제가 중요하긴 하죠. 그래도 일부로 계획을 안 세우려고 해요. 계획을 세우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100번 생각해도 취업이 맞는 것 같거든요. 곧 은퇴할 부모님 생각도 안 할 수 없고… 계획을 짜다 보면 그런 것들이 계속 눈에 밟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하겠죠. 대학원에 가면 알바를 하든, 대출을 받든, 조교를 하든 “어떻게든 충당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참 : 대학원 진학을 한다고 하면 이런 말을 많이 들을 것 같다. “교수가 꿈이냐?”

R : 아, 정말, 엄청, 많이 들어요. 그런데 대학원 간다고 해서 다 교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저부터도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지 않아요. 제가 대학원을 가고 싶은 이유는 단지 공부가 더 하고 싶어서예요.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는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 CEO를 목표로 입사 준비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밖에 그 회사에서 돈을 벌든 뭘 하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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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3대장 중 Karl Marx. 이 사람도 교수가 목적은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참 : “교수할 거냐?” 말고 또 다른 반응은 없나?

R : 여러 가지가 있지만, “취업 안 돼서 가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노골적으로 “왜 가냐?” 라는 말도 들었고요. “왜 가냐”는 질문은 대답하기도 좀 그래요. “왜 가냐”는 질문 속에 부정적인 시선이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 거 왜 가냐?”는 말의 줄임이죠. 대학을 졸업하면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요. 그것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취업 안 돼서 가냐”는 말에는 취업 안 돼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말해요. 어차피 대학원에 진학하면 소소하게나마 경제활동을 해요. 나름 취업 아닌가요?(웃음) 공부를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이해받기 힘든 것 같아요. 공부에도 효용성을 많이 따지죠. 이 공부를 하면 교수가 될 수 있고, 저 공부를 하면 대기업에 입사하기 쉽고 그런 효용성. 공부 그 자체가 목표인 사람은 철없는 사람이 되죠.

 

참 : 대학원에 가면 뭘 가장 먼저 하고 싶나? 공부 빼고.

R : 공부가 가장 하고 싶은데, 공부 빼고 라니. 음… 그냥 공부 말고 여럿이서 하는 세미나가 하고 싶어요. 관심 가는 주제가 요즘 생겼거든요.

 

참 : 세미나는 공부 아닌가. 진성 공부벌레다. 대단하다. 꼭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하길 바란다.

 

메인이미지 : ⓒcommons.wikimedia.org

 

 

인터뷰.글/ 참새(goo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