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민족주의적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과 급진적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것 사이에는 먼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 그러한 급진적이라는 표현과 낭만적이라는 표현 사이의 거리감 역시 마찬가지로 크다. 이러한 괴리를 한 작품에 담은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의 화가, 이쾌대 화백이다.

 

전시회는 제1전시실, 제2전시실에서 열렸으며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환경과 미술세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전시회에 처음 들어섰을 때,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이쾌대 화백이 주로 그린 아내 그림이 관객을 맞이하고 있기에 더욱 그를 향한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던 환경 속에 자란 이쾌대 화백의 초기 작품에는 아내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사랑은 미술 실력뿐만 아니라 필력도 키웠다. 연애편지로 쌓은 내공(?)은 훗날 몇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쓰인다.

 

이후 그는 전통 복식을 표현하면서 색채의 조화를 고민했고, 주로 어두운 분위기와 강렬한 붓 터치를 이용해 뚜렷한 인상을 준다. 1938년 일본에서 상을 받은 작품 [운명]은 죽음과 슬픔을 드러내어 조선의 억압된 상황을 반영했다. 그가 민족미술에 대해 고민한 것은 그즈음부터다. 이러한 고민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할 때는 전쟁화만 그리게 했고, 그 이전에도 조선 화가들에게는 향토적인 그림을 그리지 말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복 위에 중절모를 쓸 만큼 모던한 멋쟁이였고, 동시에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다. 그의 멋과 능력은 진지한 고민을 만나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을 끌어냈다.

 

46051-02이쾌대, 상황, 193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이러한 고민이 발전하여 후에는 서양화에 전통 회화의 비법과 색채를 도입한 새로운 회화를 선보이게 된다. 과감한 색 면 처리, 밝은색의 사용, 필선의 강조 등이 그러한 특징이다. 또한, 한국의 복식이 가진 매력을 강조하였으며 말 그대로 서양과 동양의 공존을 보여줬다. 동양화 특유의 느낌이 드는 작품도 더러 있다. 경성 모던보이의 모던함과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실제로 그는 서양의 재료(물감)를 한국의 붓을 통해 이용하였고, 주제나 화풍은 한국의 것이었다. 이는 메인 포스터에도 쓰인 그의 자화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자화상과 당시 사진을 전시회에서 접하면 이쾌대 화백이 가진 멋을 좀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혹자는 미켈란젤로에 비유할 만큼 이쾌대 화백은 한국 미술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또 그만큼 입지전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는 수많은 외국의 작품을 받아들이고 또 흡수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앞서 말했던 아이러니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세계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듯한 [군상] 시리즈는 들라크루아를 연상시키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으며 공간적 배경 역시 한반도라는 인상을 준다.

 

그는 실제로 세계적 거장의 작품을 보며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영미권 미술은 물론 다른 지역의 미술 화보를 수집할 만큼 폭넓은 범위를 수용하였다. 그러면서 민족미술을 고민한 결과가 [군상] 시리즈다. [군상] 시리즈는 역사화, 기록화가 아닌 한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라고 하며, 작품 하나에 일제, 해방, 분단을 모두 담아내기도 했다. 이 작품들을 직접 보면 압도되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서양화의 멋, 특히 역동적인 멋과 동시에 한국적 피사체 자체가 주는 느낌이 결합하여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군상] 시리즈만큼은 정말 직접 보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작품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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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전시회에서 직접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이번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실제 작품이 모두 그려진 기간은 1929년부터 1953년까지의 작품을 담았으니 아주 짧다. 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이 몇 가지 카테고리로 묶일 만큼 뚜렷하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크게 나아가는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시대가 준 아픔도 있었겠지만 개인의 노력도 그만큼 컸다. 전시회에 가면 스케치, 스크랩북, 엽서 모음 외에도 그가 수집하고 모았던 물품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연구하고 공부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그가 살았던, 그림을 그렸던 시기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시기까지이다. 말 그대로 예술계가 어둡고 얼어붙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는 진흙 속에 핀 꽃처럼 그 안에서도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작품을 펼쳤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민족, 전통을 생각하는 동시에 발전을 꾀했고, 그 결과 서두에서 말한 아이러니함이 우아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민족주의적이면서도 급진적이고 동시에 낭만적인 그의 작품 전시회는 11월 1일까지이며, 입장료는 무료이나 덕수궁 입장료(천원)는 별도다. 긴 설명보다, 직접 가서 보기를 권한다.

 

 

메인이미지/이쾌대, 군상2, 1948년 추정,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글. 블럭(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