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 합니다. 공부합시다!

 

청년 세대를 둘러싼 세대 전쟁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청년 세대를 어떻게 보는지가 하나의 기획 아이템이 되었고, 세대론은 언론은 물론 교육이나 문화 전반에까지 주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1, 2년 전에는 자기계발서가 ‘아프지만 아름다운 청춘’을 귀에 때려 박더니, 요즈음엔 연애도 결혼도 포기했다며 아이고 쯧쯧 혀를 차기 바쁘다. 5포, 6포, 7포까지 등차수열을 거듭한 ‘삼포세대’는 급기야 ‘n포세대’로 열린 결말을 맞았고 와중에 <미생>의 장그래가 이 시대의 청년대표로 등극했다 .

 

언론들이 쏟아내는 갖가지 세대론이야 이미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각양각색의 아이템들이 소비되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새삼 씁쓰름하다. 경쟁적인 담론들이 마치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강박처럼 다가와서일까. 박희경, 유수미의 논문 <한국 언론과 세대론 전쟁(실크세대에서 삼포세대까지)>에 따르면 이 수많은 세대론들은 모두 기성언론들의 정치성에서 비롯한다. 논문을 토대로 되돌아보자. 정치를 타고 흘러 세대는 어디에 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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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말년 시리즈 / 갈팡질팡 청년 세대론, 그야말로 개판이다.

 

청년 세대론, 담론 전쟁의 전방에 서다

 

삼포세대를 대표로 하는 비관주의적 청년세대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7년 <88만원 세대>부터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88만원’은 노동사회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야기는 간단했고, “앞으로 청년세대가 받게 될 월 평균임금은 88만원에 불과할 것” 결론도 간단했다. “20대여, 토익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이후 ‘20대 개새끼론’을 위시해 20대에 쏟아진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에서 알 수 있듯, ‘88만원’짜리 청년 세대에 대한 정치적 기대는 실상 기성 진보진영의 정치적 요구에 가까웠다.

 

곧이어 조선일보의 ‘실크세대’, ‘G(global)세대’가 이 도발적인 진보 세대론의 대항마처럼 등장했다. 특히 변희재의 실크세대론은 <88만원 세대>를 직접 언급하며 정반대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개인의 노력이라는 자유시장적 미덕을 이전 세대와 구분되는 청년들만의 이점으로 평가했고, 그 구분을 통해 문제의 초점을 세대 간 갈등양상으로 옮겨 놓았다. 청년문제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이른바 화산처럼 불거지는 세대갈등 양상은 보수진영의 단골전술이기도 하다.

 

G세대론도 다르지 않았다. 스포츠 스타를 예로 들며 청년 성공신화를 숭배하고, ‘단군 이래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거창한 수식까지 붙여가며 세대적 혜택을 강조했다. 이 좋은 시대에 도태는 나약한 너의 문제다. 정말이지 요즘 애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 이 보수진영 특유 마법의 논리는 G세대론을 거쳐 삼포세대 위를 방황하다가 결국 ‘달관세대’라는 단군 이래 최악의 문제해결법으로 수렴하고 말았다.

 

아직껏 유행이 식을 줄 모르는 삼포세대론은 이전부터 보수적 세대론에 비판적 견해를 내보이던 경향신문의 야심 찬 기획이었다. ‘취약한 복지 시스템과 노동 시장의 양극화 속에서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한 세대론 속엔 <88만원 세대>의 인식과 비슷한 진보 사상이 한껏 반영되었다. “짱돌을 들라”며 배짱을 부리진 못했지만 말이다. 하여 3이 N까지 무한증식을 해나가는 동안 이 포기의 세대론은 진보칼럼의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 잡았다.

 

논문의 저자 박희경, 유수미는 이러한 세대론들이 모두 보수와 진보 언론들의 논리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사회학적 성찰인가, 정치적 전술인가?”라며 물음을 던진다. 말대로다. 사회복지를 요구하는 진보진영은 ‘삼포세대’를 전술의 전방에 세워 그 위력을 최대한 확장시켜왔다. 덕분에 신문 지면은 물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까지 ‘삼포’의 위엄이 철철 넘친다. 반대로 시장 체제의 안정을 꾀하는 보수진영은 ‘실크세대’니 ‘G세대’니 하는 대안을 던져대다가, 삼포의 흐름에 몸을 맡기곤 달관세대에까지 이르렀다. 청년세대를 둘러싼 일명 ‘담론전쟁’의 현황이다.

 

 

세대론 줄타기 속 세대는 어디에

 

청년세대에 대한 호명의 문제는 이제 언론의 정치적 포지셔닝에 있어서 필수적인 관문인 듯하다. 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어떻게 부를 것인가가 곧 당면한 사회 문제에의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TV 드라마 <미생>의 주제가 도전과 좌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유고, 헬조선 카드뉴스들이 그 기이한 유행어가 좋다 나쁘다 알력을 벌이는 이유다.

 

보기에 그 최근의 흐름은 대체로 삼포가 쥐고 있다. 미안하다는 기성세대의 동정, 어차피를 들먹이는 청년들의 자조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득한 비관론 속에서 그들에겐 “희망은 죽창뿐”이 절로 나온다. 논문은 진보진영이 이룩한 이 대세, 즉 ‘88만원’을 비롯해 ‘삼포’까지의 비관적 청년 전망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진보는 현재 우리 사회의 과제를 강조하기 위해 위기론과 희망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지만 그 모습은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물론 줄타기가 진보만의 몫은 아니다. 포기니 도전이니 책임이니 나약함이니 하는 것들을 소품으로 들고,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세대론 줄타기에 한창이다. 그런데 이상도 하다. TV 프로그램을 북소리 삼고 신문과 뉴스의 명인들이 나와 벌이는 이 청년 한마당 속에 진짜 청년은 어디에 있을까. 줄 타는 세대론 사이 세대는 주체가 아니라 소비자로 존재한다. 나는 삼포세대래, 나는 달관세대래. 소란 속에서 희미해지는 그 모습이 화산으로 치면 사화산이지 싶다.

 

글. 인디피그(dbsrjstl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