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2014년 12월 24일부로 병장 000은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 합니다! 필승!”
그렇게 부대를 빠져나오면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국방부와의 인연도 이대로 끝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역을 해도 끝나지 않는 국방부와의 질긴 인연, 그 1년 차 후기다.

 

어 저기 근데 저보고 왜 포를 쏘라는 거죠

나는 보급병이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군수학교로 가서 3주간 보급병 교육을 받았고, 자대로 가서는 군수과에 배치되어 일을 했다. 평시에도 전시 대비를 위한 보급 업무를 했고, 훈련 때면 전시에 해야 하는 보급병 임무를 추가적으로 숙달했다. 그런 군생활을 했던 내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전역 후 1~2개월 뒤의 일이다.

 

“귀하의 전쟁시 입영 부대는 00이며 보직은 00분대 0번…”

 

다름 아닌 전쟁이 날 경우 가야 하는 부대, 그리고 내 보직이었다. “뭐, 전쟁 안 나니까!”라면서 가볍게 편지를 읽던 나는 굉장히 뜬금없는 소식을 마주했다. 전쟁이 나면 나는 포병이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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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왜죠?

 

당연히 포 쏘는 법은 1도 모른다. 나라를 지키는 데 포를 쏘라면 쏴야지 싶지만…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의 규칙ㅡ이를테면 랜덤이라던지 랜덤이라던지 랜덤이라던지ㅡ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그 규칙을 설명해주면 좋았겠지만 동봉된, 전쟁시 가야 할 부대의 중대장님이 한땀 한땀 타자로 적어주신(사실은 행정병이겠지만) 편지에는 그 설명 대신 후배 전우들이 선배 전우를 잠시 출타한 전우로 기억하고 있다는 좋고도 아름다운 말들이 적혀 있었다.

 

예비군을_피하고_싶어서_아무리_바꿔봐도_병무청은_내_위에_있고…

 

날아오는 편지는 뜬금없이 포를 쏘라는 편지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예비군 통지서다. 이건 문자로도 온다. 대학생으로 복학한 나는 학생 예비군에 편성이 되었는데, 바야흐로 예비군 시즌이 되면 과별로 나뉘어서 이미 정해진 날짜가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제출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명목과 ‘어떻게든 미루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져 첫 번째 예비군을 과감하게 재꼈다. 뭐, 2학기에 하면 되겠지!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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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예비군 하기 싫다.

그리고 2학기에도 어김없이 예비군 초청ㅡ납치ㅡ문자는 날아왔다. 이번엔 정말로 갈 수 없는 날이었고, 학생 예비군 연대를 찾았다. 거기엔 복무 당시 지나가면 병사들의 몸을 바로 나무처럼 곧고 바르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대령이 계셨고, 친히 내 예비군 날짜와 장소를 조정해주었다. 예비군 1년차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단순한 어른을 대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뭐랄까. 대령의 계급을 단 사람에게 이렇게 친절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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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아직 내게 이 정도 패기는 부족했다..

 

여튼, 한 번도 정보를 알려준 적 없는데 20살의 나를 찾아왔던 병무청은 이번에도 내가 무단으로 불참해서 1차 보충을 해야 한다는 정보까지 낱낱이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병무청에게 굴복한 채 훈련 당일날 예비군 훈련장을 찾았다.

 

[누가누가 가장 세고 귀찮아하며 오래 한 티가 나는 예비군인가] 대회가 열렸습니다

 

병무청에선 9시에서 1분만 늦으면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다 보니 일찍 도착한 예비군 훈련장은 이미 많은 예비군들이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몇 년 전 겪었던, 남고의 새 학기 모습처럼, ‘누가누가 가장 강해보이나’ 대결이 열리는 듯했다. 모두들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을 하러 왔으며, 나는_시방_위험한_짐승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자세들이었다. 물론 뉴비 예비군 1년차였던 나는 9시가 되기 전에 들어가서 위병조장에게 확인하다가 쫓겨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예비군 초짜임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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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년

다른 예비군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흔한 반도의 예비군 천태만상

총 8시간짜리 학생 예비군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율형 훈련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현역 조교가 통솔하는 예전 방식과 달리 예비군끼리 조별로 나뉘어 자율적으로 훈련 순서를 정해 참가하고 평가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자율적인 건 좋았지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군기 빠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방탄을 산속에 떨어뜨려서 20분간 주우러 간다든지… 인원체크가 안되어서 경고를 받는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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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해외 예비군)어딜가나 예비군들이란 거기서 거기인 듯하다.

 

이게 6000원일 리 없어

밥은 선택이다. 입소할 때 도시락을 사오기, p.x에서 사먹기 둘 중 하나를 선택 가능했다. 그간 예비군을 갔던 사람들이 예전에 ‘도시락만큼은 안 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도시락은 안 돼!’라고 아우성쳤던 소리가 들려왔지만 얼마나 이상한지 체험이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신청했다. 그리고 곧장 후회했다. 6000원을 가져간 도시락은 단언컨대 400원짜리 쥬시쿨이 제일 맛있었다. 고기 반찬도 여러 개였고 반찬 가짓수도 적은 편은 아니었으나 말 그대로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학교의 기숙사 밥은 맛없기로 유명한데, 단언컨대 그것보다 맛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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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거랑 비슷하게 나온다. 저기 쥬시쿨이 제일 맛있다.

 

6시간 사이 야윈 날 달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다행히도 조기 퇴소라는, 훈련 성과를 잘 달성한 조가 2시간 먼저 퇴소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돌아갈 때는 12,000원을 받는데, 나처럼 도시락-400원짜리 쥬시쿨-을 신청한 사람은 6,000원이 까여서 6,000원만 받게 된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가면서, 국방부의 뜻대로 6,000원은 선불형 교통카드로 충전했다. 이렇게 예비군 1년차에게 맡겨진 국방부의 과업은 끝이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