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 때, 한국사는 국사와 근현대사로 나뉘어 있었다. 근현대사는 다른 과목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교과서를 펴냈지만, 국사는 전국이 국정교과서를 사용했다. 내가 수능을 칠 때, 모든 과목에서 EBS 교재의 반영률을 높인다며 난리였지만 국사는 역시 조금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국사만큼은 내신도, 수능도 교과서가 주였다. 사회탐구영역 과목을 선택할 시기가 왔을 때, 국사를 고른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새 교과서를 사는 일이었다. 입학하면서 받았던 교과서는 이미 너무 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국사공부를 하면서 한 사설 인터넷강의를 들었다. 선생님은 국사교과서에 중요한 내용 몇 가지가 빠져있다고 말했다. ‘역사는 승자들이 기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조금 이상한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다. 그 말들을 시작으로 강의 도중 선생님은 종종 샛길로 빠졌고 그때 해준 이야기들은 당연히 시험에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의 내게 시험에 잘 대비하지 못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수강을 금방 그만두었다. 그리고 굳이 인터넷강의가 아니더라도 국사는 교과서로 충분했다.

 

새로 산 교과서가 너덜너덜해질 때쯤 수능이 끝났고, 그 뒤로 국사교과서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뉴스를 통해 대강 전해 들은 것이 전부다. 그리고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최근에서야 나는 내가 배웠던 국사교과서가 국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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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국정 국사교과서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국사교과서가 ‘국정’임을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출판사명이 있어야 할 자리에 ‘00사’가 적혀있는 다른 과목과 달리 국사교과서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적혀있었지만 의문을 품어보지는 않았다. 어떤 한국지리 교과서가 표지에서 동해를 ‘Sea of Japan’으로 표기해 논란이 될 때, 왜 우리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는 그 논란에 해당되지 않는지를 생각해본 친구는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인터넷강의에서 선생님이 하는 말을 ‘이상한 이야기’로 생각했다. 국사교과서는 하나뿐이었고 그 한권으로도 수능 대비는 충분했으므로 나에게 역사는 유일무이했고 다른 시각의 가능성은 차단되었다.

 

지금의 국정화 논란은 독재미화나 건국절처럼 이념갈등으로 인한 몇 가지 쟁점에 집중된 모습이다. 민주화의 역사가 권력을 잡은 사람에 의해 그 시비가 왜곡된다면 분명 경계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해지는 일부 비판들은 불완전하다.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고, 아버지의 잘못을 미화하기 위해 교과서를 국정화하려 한다는 주장들 말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진실일 수 있겠으나, 이것만을 들먹이며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니들은 좌파고 종북이라서 그렇다’는 소모적인 반박만을 불러올 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권이 바뀌면 입장만 바뀐 채 똑같이 전개될 입씨름이다.

 

논란을 두고 끝없이 쏟아진 주장과 비판과 반박을 보며 이제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인터넷강의 선생님이 떠올랐다. 샛길로 빠진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선 논쟁이 될 만한 것들도 많았겠지만 국정 국사교과서만을 봤던 내가 놓친 중요한 이야기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는 학생들이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국정교과서 2권을 너덜해지도록 보느라 다른 시각을 보지 못했던 나는, 그래서 다른 시각의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글. 아레오 (areoj@daum.net)

사진. 릴리슈슈 (kan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