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행정예고한 이후 대학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국정교과서 반대 대자보가 붙여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전공을 살려 내용을 채운 기발한 대자보들이 눈에 띈다. 국정교과서 사태를 검은색에 비유한 어느 미대생의 대자보가 인상적이다. 홍익대학교 15학번 양희도씨가 작성한 대자보다. 그를 인터뷰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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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15학번 양희도씨의 국정교과서 반대 대자보 ⓒ 대학희망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양희도이고 홍익대학교 15학번에 재학 중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며 산업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은 ‘오지라퍼’라 소개하고 싶다.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다면 대자보를 쓴 국정교과서 반대 말고도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가? 대자보는 처음 쓴 것인가?

 

LGBT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에도 관심이 있다. 소수자들의 인권은 (당연하게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 역시 다양성에 대한 핍박이라고 생각한다. 대자보는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의 첫 대자보인데,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음에도 특히 국정교과서 사태의 어떤 점이 이번 대자보를 쓰게 했나.

 

이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 문제의 본질은 다양성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이슈가 좌파와 우파 사이의 정치 대결 정도로 폄하되어 가는 과정을 보고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것 같았다. 문제의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해집단의 입맛에 따라 상황이 재단되고,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문제가 재생산되는 상황을 명분으로 대자보를 작성하게 되었다.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다양한 생각에 대한 존중은 내 근본적인 가치관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대자보를 통해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자보 내용에 대한 보충설명을 부탁한다. 본인이 대자보에 언급한 ‘역사의 균형’이란 무엇인지, 현상을 색으로 비유한 이유 등이 궁금하다.

 

보편타당하고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문을 이루는 다양한 담론들 역시 상대적일 것이다. 역사학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다채로운 관점들이 계속해서 소개될 것이고 이들 중 무엇 하나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주관들은 서로 무게중심을 맞추면서 균형을 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대자보에 적었듯 객관은 오직 균형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균형으로서의 객관은, 다양한 관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과정이다.

 

비단 역사학에만 해당 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예술도 역시 그렇다고 배웠고 배우고 있다. 사안을 색으로 비유한 이유는 이러한 내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다.

 

 

대자보의 형태가 보통의 대자보 형태(흰 종이에 손으로 쓴 글이 적힌)와 다르다. 홀로그램 같다. 어떻게 만들었나? 제작과정의 기술적인 면을 설명 부탁한다.

 

OHP 필름 3장에 각각 녹청색, 자주색, 노란색으로 본문을 인쇄한 뒤 3장을 겹쳐서 게시했다. 3장을 겹쳐 놓은 것이 티가 나도록 미세하게 엇나가도록 설치했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더라. 사이즈도 평균적인 대자보 크기의 8분의 1 수준인 a4사이즈로 제작했다. 굳이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진심이 전달될 거라고 믿었다.

 

 

본인이 작성한 대자보가 왜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은가?

 

500자 남짓의 내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들릴 수 있었던 것은 흰 전지에 손 글을 쓰는 기존의 방식보다 더 효과적인 접근방식에 대해서 고민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 대자보가 기폭제가 되어 주었는지 혹은 새로운 것들이 등장할 상황의 시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각양각색의 대자보들이 등장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대자보 이후 등장한 대자보 중 가장 특이하고 새롭다 생각한 대자보가 있나?

서울대 서양사학과 정한솔 학우님이 게시하신 대자보가 기억에 남는다. 국정화 정책을 나치 교육강령에 빗대어 비판하는 글인데, 짧은 글로 사안의 심각성을 잘 전달한 대자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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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15학번 정한솔씨의 대자보 ⓒ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서울대인 모임

 

  

사회에서 대자보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

사회에서도 더 이상 대자보를 전지 위에 써 내려간 글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작은 목소리를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주는 모든 종류의 메신저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아닐까 싶다. 이번 국정화교과서 반대 대자보는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의 자양분 위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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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당시 고려대 주현우씨의 대자보 ⓒ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커뮤니티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나?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의 대자보와 이번 대자보를 비교하자면?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당시 대자보를 통한 당시의 움직임은 매우 혁신적인 사회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자보를 붙인 주현우 씨의 의도가 단순히 사회적 문제를 분석하고 알리는 데에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온전한 사회적 주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다만 15년도의 대자보는 13년도의 뿌리를 바탕 삼아 한 발짝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주현우 씨가 기존의 전달자적 관점에서 참여자적 관점으로 사회 운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주었다면, 그 패러다임 아래에서 15년도의 우리는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하면 더 크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것 같다. 사회적 움직임이 크게 힘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대자보를 쓰는 것에서 나아가 단체를 만들거나 시위를 나가는 등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술을 공부하고 있으니 예술을 이용한 시위를 한다든가.

 

디자인을 하고 싶다. 정치를 업에 가까운 것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동을 취해야 할 때는 주저 하지 않을 것이다.

 

 

대자보, 계속 쓸 것인가? (국정교과서에 대한 것이든 다른 사회문제에 대해서든)

 

목을 쓸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소리 내고 싶다.

 

 

글. 김연희(injournaly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