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내 사복경찰과 채증 등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만 보던 상황이 10월 29일, ‘제50회 전국여성대회’가 열린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 앞에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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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당 아래 세워진 ‘제50회 전국여성대회’ 안내판

 

학교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정문에는 전국여성대회 안내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방문자들과 평소보다 많은 양의 차들이 그 분위기를 더했다. 지방에서 온 듯한 대형 관광버스도 학교 교정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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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지정 좌석표

 

행사가 진행되는 대강당의 입구 앞에는 단체별로 지정된 좌석들을 표시한 판이 놓여 있었다. 전국에 있는 다양한 여성단체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하는 행사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여자대학생들을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대강당 앞 공터에는 단체별로 나누어진 등록대가 있었다. 이곳에서 신청을 한 사람들은 줄을 선 후, 이름을 확인하였다. 지금 들어갈 수 있는지 개인 등록자 전용 등록대에 가서 물어보자 사전등록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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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강당 입구에 생긴 금속탐지기

 

대강당 입구 안에는 공항에서만 보던 금속탐지기가 보였다. 몸과 가방을 수색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금속탐지기로 수색을 하는 시간이 길어져 입장을 위한 줄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여기저기에서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들렸고 전국여성대회에 온 것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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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방문 반대 긴급 기자회견 

 

오후 1시. 정문 근처 공터에서 박근혜 대통령 방문 반대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화여대 총학 등 학내 8개의 단체가 모여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반여성적 정책, 노동개혁 반대 등의 주장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한 명씩 중앙으로 나와 자신의 의견을 외쳤다.

 

학생들의 시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항의도 있었다. 강원도 전 여성협회 회장이라고 밝힌 황길자 씨(가명, 73)는 “보릿고개를 넘기며 만든 나라에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며 “김정일을 찬양하는 교과서는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긴급 기자회견 후, 박 대통령 방문 시간에 맞춰 대강당으로 가는 피켓 행진이 진행되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대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아래에는 사복경찰들이 투입되었다. 맨 앞줄에는 여성 경찰들이, 그 뒤에는 2중, 3중으로 남성 경찰들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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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생과 사복 경찰 간의 몸싸움 

 

경찰들과 학생들의 실랑이는 1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대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복경찰들로 인해 모두 봉쇄되었다. 학생들이 들고나온 피켓은 모두 부러지고 망가졌다. 계단 위에서는 캠코더를 이용한 경찰의 채증이 이루어졌다. 이를 두고 총학은 불법 채증이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동안 대강당 안에서는 전국여성대회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화여대 후문을 통해 들어와 이 행사에 참가하여 축사를 전했다.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박 대통령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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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후 쓰레기장으로 변한 교정. 학생들이 청소하고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티 ‘이화이언’

 

모든 행사가 끝난 후의 이화여대 대강당 앞은 행사에서 사용하고 남은 박스로 인해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행사를 주최 측에서 뒷정리하지 않고 갔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한 시간 정도 정리를 한 후에야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오늘 행사에서 “여성의 발전이 곧 우리 사회의 발전이 될 것”이라며 “여성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 양성하고 일하는 여성이 경력단절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범 정부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행사장 밖에서 일어난 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표적인 ‘여자’ 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이화여대에서 열린, ‘여성’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정작 ‘여자’ 대학생들은 배제되었다.

 

매주 한 번씩 채플을 듣기 위해 오르던 대강당 계단은 사복을 입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막혔다. 또한, 학생들의 시위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채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의 공간이 경찰의 권력으로 인해 통제되는 순간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2015년 10월 29일. 시대가 역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글 / 사진. 이켠켠 (gikite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