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학년도 수능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수능날은 그 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속담까지 만들어질 정도의 국가적 행사다. 다행히,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은 춥지 않을 전망이라고 한다. 지난 수능들은 수능 한파가 닥쳤던가? 수능날 하루의 날씨는 커녕, 그 해 입시가 어땠는지조차 매년 바뀌는 탓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매년 11월 어느 목요일을 국가적 주인공으로 보냈던 고함이들의 경험을 총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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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2007년 11월 15일) 

#저주받은 89년생 #9등급제 #죽음의 트라이앵글

 

수험생 시절은 가물가물하지만, 공교육을 살리겠다며 정부가 발표한 입시제도는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내신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능은 부담 가중을 줄이기 위해 9등급제로 바뀌었다. 성적표에 1~9의 숫자만 표시되는 수능 등급제는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담이지만 난 수능의 표준점수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수우미양가’보다 세분된 내신 평가법은 큰 부담이 됐다. 커트라인 사이에서 등급으로만 잔인하게 학생들의 희비를 가르게 될 수능은 변별력이 낮아졌다. 이로 인해 대학별 고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난무했다. 핑계 없는 무덤이야 없겠지만, 내신·수능·대학별 고사, 이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모두 준비해야 하는 예비 08학번들은 ‘저주받은 89년생’이라 자신을 스스로 칭했다.

 

비록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입시생들은 수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수능 날이 다가왔다. 수능 당일, 수능 한파라는 말은 무색했다. 고사장 앞에 도착했더니 ‘배틀’이라는 생소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많은 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나를 위한 응원이 아닌 그들의 함성을 만끽하며 들어섰다. 한동안 나는 08학번과 09학번 사이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풍뎅이

 

 

2009학년도 (2008년 11월 13일) 

#무한수시 #표준점수 #수능최저등급 #89년생이 무서웠던 90년생

 

돈만 있다면 전국 모든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을 수 있었던 2008년이었다. ‘10개 중 1개는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원서를 접수하고 속세와 떨어져 한가로이 교정을 거닐고 있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합격 발표 시간에 맞춰 교무실에 찾아가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한량처럼 교정을 거닐던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교무실을 찾아갔다.

 

나는 최저등급제한이 없었던 학교를 위주로 지원했었다. 최대한 수능을 안보고 소위 괜찮은 대학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수시 1차 합격 3개 중 2개 학교에 ‘수능최저등급’ 조건이 있었다. 수능 보기 싫은 마음은 누구나 같았다. 수능등급컷이 없는 학교에 수시 지원이 대거 몰리면서 어중간한 내신 성적으로만 수시에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당시에는 커다란 변수가 있었다. 지난해 등급제의 폭탄을 맞은 선배님들이 표준점수제가 생긴 09학번의 길을 선택하고 이를 갈고 있었다. 당시에 재수생 괴담이 흉흉하게 나돌았다. “등급제 때문에 한 문제로 1등급에서 떨어진 작년 수험생이 대거 몰릴 것이다!” 왠지 재수생들이 나를 제물로 삼아 대학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지만, 괜히 그들이 싫었다. @참새

 

 

2011학년도 (2010년 11월 11일) 
#입학사정관 전면화 #미적분을 모르는 마지막 문과 #EBS듄 연계70%

 

내게 신앙이었던 ‘수능’을 위해 알고있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했다. 내년에는 미적분이 수능에 포함된다는 사실에, ‘제발 올해 가게 해 주세요.’ 가슴팍에 십자성호를 그었다가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보고, 아… 저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조상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해 교육부는 수능에 EBS 수능 교재를 70% 연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덕분에 우리 주변의 공교육과 사교육도 변화했다. 학교 수업에서는 교과서와 EBS 교재를 병행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EBS 교재와 사교육에서 이를 분석한 교재로 자습했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본격 도입되었는데,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이것이 어떤 입시제도인지 어떻게 준비해야 했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수많은 입시 제도들 중에서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것은 ‘반에서 1,2등 하기’와 ‘논술’로 제한되었다.

 

수능날 그저 기억나는 것은, 1교시 언어 영역을 치는데 손을 너무도 심하게 떨어 OMR마킹을 할 수 없었다는 것과 점심시간에 소시지 계란부침을 먹었다는 것이다. 끝난 뒤 해방감이 어땠는지 마저 기억이 흐릿한 건, 어쩌면 수능을 지우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수능’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때의 신실함이, 모든 신경과 생각이 모두 ‘수능’으로만 맞춰졌던 게 아쉬워서일지도 모른다. @압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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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2011년 11월 9일)
#미적분.기벡의 습격 #물수능 #탐구 3과목

 

지금은 수학이 되어버린 수리영역을 유독 못했다. 1학년 때는 언수외 등급 151을 심심치 않게 찍었다. 그런 나에게 미적분과 통계 기본을 추가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은 충격 자체였다. 이과 친구들 역시 기하와 벡터 앞에서 좌절했다. 역대 수능 문제를 모아놓은 자이스토리-미적분과 통계 기본 편을 샀더니 이과 수학에서 출제된 문제들이 가득했다.

 

생전 처음 보는 해괴한 3차 함수 그래프 앞에서 탐구를 3개만 봐도 된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 더 줄어든다는 소식에 후배들이 부럽기만 했다. 수리영역 범위가 추가되었으므로 재수생이 적을 거라던 선생님들의 예상 역시 빗나갔다. 재수생은 15만 명이 넘었다.

 

지난 해에 이어 교육부에선 높은 EBS 반영률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수험장으로 가는 길에 수능특강 영어듣기를 들었는데 그 지문이 그대로 듣기에 나왔다. 이전보다 수험생들이 반영률을 체감할 수 있도록, 반영 경향 자체가 쉬운 문제 위주로 단순화되었다. 모든 영역에서. 외국어는 만점자만 2.67%였다. 64만 명중 무려 17000여 명이 외국어 100점을 받은 것이다. 만점자가 ‘물’처럼 흔한 물수능이었다. @아레오

 

 

2013학년도 (2012년 11월 8일) 

#수시 6회 제한  #탐구 3과목

  

지원 제한 없던 수시 모집 원서 접수는 6회만 할 수 있도록 제한되었다. 또한 수시지원 시 미등록 충원 기간에 합격한 수험생들은 정시지원이 불가능해지면서 그 해의 수시는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야 했다. 탐구 영역은 지난 2012년도 수능과 마찬가지로 3개의 과목을 응시하고 이 중 정시에는 자신이 잘 본 2과목을 선택하여 반영했다. 2014년도에 사회 탐구 영역이 통합하게 된다는 소식은 문과생들에게 있어 한번에 잘 가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전 영역 EBS 교재에서 출제된다는 교육청은 언급에 난이도의 하향은 예상했었지만 그 해의 언어영역은 물수능, 그 자체였다. 언어영역의 멘붕은 이어진 수리영역부터 외국어영역까지 이어졌다. 4교시 탐구영역이 끝난 시간, 대부분의 수험생이 수험장을 나서는 그 시간에도 제2외국어 수험장은 시험을 포기한 몇몇의 빈자리를 제외하고 수험생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제2외국어 대세는 역시나 아랍어였다. 아랍어는 응시자 적고 시험 난이도가 낮아 어느 정도 찍기만 해도 1등급을 맞을 수 있다는 인터넷 속 후기의 여파였다.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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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

 

2014학년도 (2013년 11월 7일) 

#마루타 95년생 #수능 완전 개편 AB형 #탐구2과목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던 때였다. 대체로 수능 시험 자체가 필요한가, 안 필요한가로 입시 전형을 가름할 수 있었다. 정시, 논술, 입학사정관제, 그리고 영어 특기자 등.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건 여러 개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입학사정관제를 포함한 입시 제도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즈음이라는 말로 위안삼았다. 이렇게 안도하고 있던 수험생들에게, 평가원은 실험을 시작한다.

일부 고등학교 입시 또한 입학사정관제로 바뀌었던 95년생은 대학 입시마저 마루타 세대가 되었다. 나만의 보물단지 온라인 포트폴리오 ‘에듀팟’ 시스템은 나만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수능은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이 국어, 수학, 영어 영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바뀐 영역들은 모두 A/B형으로 나누어져, 카오스 입시의 정점을 찍었다. “어느 것을 골라 칠까요? 알아 맞춰 봅시다~” 모수가 적어진 탓에 중상위권의 등급 싸움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대신에 탐구 영역 과목 수를 두 개로 줄여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 탐구 영역의 개정으로 국사와 근현대사가 통합되며 한국사라는 거대한 분량의 한 과목이 되고, 세분화로 인해 ‘생활과 윤리’ 등 새로운 과목이 생겨났다. 아직도 뭘 편하게 해줬다는 건지 모르겠다.

 

날씨마저 이례적이게도, 수능 한파라는 말이 무색하게 최고 기온이 21℃까지(남부 지방 기준) 올랐다. 2014학년도 입시와 수능은 수험생에게도 새로웠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게도 새로웠던 나날이었다. 이듬해부터, 영어는 A/B형으로 나뉘지 않았다. 7차 교육과정 세대가 아니었지만 8차 교육과정에도 속하지 못한, 사라진 어느 교육과정의 ‘마루타 95년생’이었다. @이설

* ‘n차 교육과정’이라는 용어는 7차 교육과정 이후 년도별 교육과정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편의상 7차 교육과정 이후의 개정 교육과정을 8차 교육과정으로 표기한다.

 

 

2015학년도 (2014년 11월 13일) 

#수시 감축 #헬수능 #신채호와 슈퍼문

수시전형이 네 가지로 축소됐다. 영어 특기자, 입학사정관제를 위해 영어와 대외활동에 매달리던 그동안의 수고는 물거품이 됐다. 수능 최저 등급이 높던 논술 전형마저 기준 완화로 변경되었다. 사회적으로도 고3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일이 그들을 덮쳤다. 사실 고3이 되기 전부터 96년생들은 자신들의 불운을 알고 있었다. 2월의 소치올림픽, 6월의 브라질월드컵, 9월의 인천아시안게임. 다행히 월드컵은 광속 탈락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96년생의 고3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 것은 예정에 없던 그해 4월 16일이다. 4월달은 잔인했다. 국가적인 비극을, 같은 또래 고3들은 감당하기 벅찼다. 독서실 책상에 앉아 슬픔을 꾸욱 담아두고 버티기도 하고, 직접 거리로 달려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고3은 각자의 방법으로 꾸역꾸역 1년을 보냈다.

 

수능날,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날씨만큼 역대 최악의 난이도로 비극의 끝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헬 게이트 수능이었다. 꾸준히 쉬웠던 국어는 극악의 난이도를 보여주며 수험생들에게 불쇼를 선사했다. 1교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험장은 신채호와 슈퍼문을 욕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 ‘아와 비아의 투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복도에서 만난 친구는 허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의고사를 잊은 평가원에게 미래란 없다.” 

 

헬게이트는 수학에서도 열렸다. 이번엔 물쇼였다. 수학은 매우 쉬운 난이도로 출제됐다. 특히 B형(이과)은 1등급 컷을 100점으로 만들며 물수능의 끝을 보여주었다. 모의고사 1등급 컷이 100점이었던 영어는 결국 역대 수능 최다 만점자를 냈다. 영어까지 마쳤을 때, 탐구에 대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평가원의 배신으로 망가진 정신만 남은 채 수능장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추운 날씨가 더 춥게 느껴지는 고3의 끝이었다. @통감자

 

 수능 날 저녁밥 먹을 때 ⓒ KBS 드라마 ‘추노’  

 

우리는 참 힘들었다. 그래서 입시나 수능 얘기만 나오면, “야, 너넨 그래도 나아! 우리 땐 말야…”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모든 수험생들이 ‘우리 때’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거의 매년 입시 제도가 바뀌어와서 해마다 수능 세대가 재편성 당했다. 2017학년도 수험생들은 계열과 상관없이 한국사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 2018학년도 수능에서는 영어 절대 평가가 도입된다. 또, 그 3년 뒤에는 문이과가 통합된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교육백년지대계’는 백 년 전에나 통할 법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수능 한파’라는 속설과 달리, 예년(최저 -3.2℃)만 제외하면 2006년(최저 -0.4℃) 이후 정말로 추웠던 수능 날은 없었다. 그 날이 유난히 추웠길 바라는 건, 그 날을 위해 나는 많이 힘들었다는 모종의 위로가 아닐까. 유일한 입시 경험을 가진 지난 수험생들과, 또다른 유일한 경험을 할  2016학년도 수험생들 모두에게 그 날은 내  인생 가장 추운 날이다. 

 

 

글. 이설(yaliyalaj@gmail.com), 풍뎅이, 참새, 압생트, 아레오, 백일몽, 통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