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청년세대, 넘어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개념이 하나 있다. 필요해서든, 어쩔 수 없어서든, 결국은 안고 가야 할 삶의 대전제. 바로 경쟁이다. 경쟁 속에 우리는 살고, 경쟁 또한 우리 안에 숨 쉰다. 둘의 밀접한 관계 위에 사건사고가 많기도 하다.

 

현실을 반영하는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그 복잡한 ‘사건사고’들이 그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요즈음엔 그것이 특히나 노골적이고, 대중적인 모양새다. <미생>의 장그래가 체제 한 복판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고, <송곳>의 이수인은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고함을 지른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들이 또 있다. 웹툰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의 청년들이다. ‘대’풍운 전자 입사 면접을 위해 모인 청년들. 취업이라는 직관적 경쟁의 무대에서 그들은 주저하거나 고민할 틈도 없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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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민 / 본격 면접만화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패자가 양산”되는 참혹한 시스템에서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다. 한 컷을 놓치지 않고 계속되는 개그적인 연출,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서사는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모토를 뽑아낸다. 아파도 달려보자는, 그 진부하고도 어쩔 수 없는 경쟁의 모토를.

 

 

우리 모두가, “남 재치는 방법만 배워온 녀석들”

 

취업부터 퇴직까지, 끝없는 경쟁의 노동시장을 작품은 시체로 쌓아올린 탑에 비유한다. 탑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배경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나간다.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러나 작품은 신파에 젖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혹은 어쩔 수 없어서라도 적응해가는 이들의 욕망을 그려 낸다. 면접자들은 기득권이 원하는 이미지를 연기하고, 천연덕스럽게 스펙을 자랑한다. 천운을 인정하면서도 솔직하게 기뻐하고, 또 질투한다.

 

면접관들도 마찬가지다. 사명과 소신을 말하는 열혈 사원에게 과장이 하는 말은 “우와, 너 인마 몇 년 찬데 그런 소리를”이고, 새로 온 상사 때문에 하청을 박살냈다고 울며 고백하는 부하 직원에게 전 상사가 하는 말은 “나도 젊을 적엔 다 하던 짓 이구만, 왜?”이다.

 

하여 인사부장 최판규가 말하는 “남 재치는 방법만 배워온 녀석들”은 사실 면접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온 우리 사회 전체를 말은 꿰뚫는다. 청년들의 무한경쟁 면접소동은 결국 면접자들, 그들을 심사하는 면접관들, 그 위에서 세력다툼에 매진하는 임원들 모두의 레이스인 것이다.

 

 

레일에서 벗어나거나, 레일로 달려들거나

 

그 경주의 한복판에 청년들이 있다. 돈, 시간, 성격, 성별, 재능 등 수많은 요소들을 약점이나 강점으로 등에 메고 그들은 벗어나거나 달려든다. 그러나 작가는 벗어나라고 강요하지도 달려들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고 보여줄 뿐이다. 지나칠 정도의 개그와 함께 연출되는 그 모습들은 저항보다 눈물 나는 적응에 가깝다.

 

때문에 포기했던 꿈을 떠올려 레일에서 벗어나는 최필재도, 좋은 환경에서 우수한 인재로 성장한 박재천도, 불굴의 정신과 기이한 능력을 갖춘 황태룡도 만화의 정답은 아니다. 그들은 면접 상대에 따라 강자였다가 약자가 되고, 수혜자였다가 피해자가 된다. 또 그 성공과 실패를 지켜보며 주인공 김건호는 부러워하거나, 용기를 얻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것이 ‘재치는 방법만 배워오던’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일 테다. 레일에서 벗어나거나, 레일로 달려들거나, 반대편에 손가락질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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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민 / 배워온 게 그것일 뿐, 꼭 오르고 싶어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내 절박함은 언제나 그들의 무기가 되었다”

 

면접장의 숱한 부조리와 불합리에도 웃음을 잃지 않던 만화는 그러나 재미있게도 악역 한지원의 절규에서 감정을 드러낸다. 부정한 방식으로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그는 자신의 거짓이 폭로되자 말한다. “여기선 합격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해도 돼! 저 녀석들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을 뿐이야!”

 

그 비참한 문장들 앞에 일그러지는 김건호의 표정은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청년 세대 모두와 닮아있다. 응징 받아야 할 상대의 잘못 앞에서도 김건호는 떳떳하지 못했다. 한지원이 그렇게 해야 했던 것처럼, 사실은 모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똑같았어.”

 

그의 고백은 절박함을 무기로 경쟁에 달려들던 모든 이들에게 사고의 전환으로 다가온다. 절박함은 언제나, 내가 아닌 그들의 무기였다. 그러나 그 어려운 길을 함께 달려가는 입장으로서 김건호는 다시 말해야 했다. “너는 쉬운 길을 택했을 뿐이야.” 해방은 아니더라도 그나마의 극복을 위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궁여지책이다. 한지원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온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면서도,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놓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절박함을 팔아 살아가는 삶일지라도, 그래도 우리 비겁해지진 말자고.

 

 

“하찮게 사라질 먼지 같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시종일관 우유부단하게 끌려 다니던 김건호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오히려 숨어있던 투쟁심을 끌어올린다. “지금, 저의 목소리는 평가되고 있는 겁니까?” 그의 말은 비단 부정한 면접과정만을 향해 있지 않다.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회, 우리를 비겁하게 만드는 사회, 해서 박재천의 자부심을, 정향실의 도전을, 황태룡의 능력과 한지원의 선함을 짓밟았던 사회 전체를 향해 있기에 김건호의 목소리는 더욱 전율적이다.

 

그 쩌렁쩌렁한 외침으로부터 5년, 만화는 각지에서 나름의 성공을 일구고 있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꽤 낭만적인 결말을 맺는다. 사실 진부한 희망이다. 낙관적인 모양새에 불편해 할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희망찬 결말부가 작품이 제시하는 정답은 아니다.

 

면접장 속 치열한 움직임에서 경쟁이라는 삶의 전제를 지우기는 힘들다. 패자가 양산되는 자본의 탑 꼭대기까지, 나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을까도 여전히 미지수다. 사실 이 이야기에 애초 정답은 없다. ‘짱돌을 들어라’ ‘자기계발에 매진하라’ 정답인 체하는 몇 가지 문장들도 여기 절박한 이들에겐 무책임한 소리일 뿐이다.

 

하여 만화 속 청년들이 선택한 길은 그저 들릴 때까지 말하는 길이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가며 말이다. 말하고 또 말하는 그들의 레이스는 정답 대신 사회와 세대의 일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것은 “목적 없는 레이스”라고. 꿈을 가지라고, 혹은 사회를 바꿔보라고. 그러나 아니다. 힘겹게 탑을 오르는 그들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사회가 허용하는 한 컷 분량 목적을 그들은 언제나 말하고 있지 않았나. “하찮게 사라질 먼지 같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사라지지 않고자 달리는 그들의 레이스는 절대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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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민 / 그들의 레이스도 절대 하찮지 않다

 

메인이미지 : ⓒ 이현민 / 네이버웹툰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글/사진편집. 인디피그(dbsrjstl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