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 다음 문장은 남성혐오인가?

    ① “김치녀 대신 개념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② “어때? 보기만 하다가 찍히니까? 몰카 재밌네.”

    ③ “당신은 남자친구의 성욕에 응해줄 의무가 없습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④ “자궁경부암은 남성으로부터 옮겨지는 성병입니다.”

 

최근 대학교를 중심으로 곳곳에 성평등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이 붙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포스트잇 운동’이다. 성차별적인 언어, 직장에서의 유리 천장, 성범죄와 몰카, 데이트 폭력 등 포스트잇의 내용은 다양한 여성문제의 범주를 넘나든다. 메시지의 중심에는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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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잇프로젝트#’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 포스트잇이 아니꼽게 느껴지는 것 같다. 헤럴드경제는 여성혐오 반대 사이트의 혐 포스트잇 운동’(2015.11.11) 에서 이러한 포스트잇 운동이 남성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가 ‘남성혐오’적인 메시지의 예시로 제시한 것은 위에 소개한 네 문장이다.

 

여성혐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이는 헤럴드경제 이지웅 기자와 그에 동조하여 포스트잇 운동을 비난하는 이들을 위해, 저 문장들이 시사하는 바를 간략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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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잇프로젝트#’

 

①  “김치녀 대신 개념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여성을 김치녀와 개념녀로 분류하는 것은 남성이 정한 기준 속에서 여성을 대상화한다. “나는 일부 무개념한 김치녀만 욕하는 건데?”, “네가 개념녀라면 상관없잖아?”라는 말은 틀렸다. 김치녀와 개념녀는 여성의 주체성을 삭제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개념녀는 ‘순결한 처녀’, ‘희생하는 어머니’, ‘순종하는 아내’와 같이 가부장제 사회가 정한 이상적인 여성상일 뿐이다. 이러한 여성상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것은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건 남성에 의한 대상화를 과감히 거부하는 작업이다.

  

②  “어때? 보기만 하다가 찍히니까? 몰카 재밌네.”

최근 ‘소라넷 폐지 청원’이 확산되면서 몰카 범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음란물 공유 사이트 소라넷에선 일반인의 신체부위를 촬영한 몰카, 애인이나 부인의 나체 몰카, 심지어 여성들이 용변을 보는 몰카 등도 공공연하게 공유된다. 소라넷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음란물 사이트에서 ‘일반인 몰카 야동’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몰카 범죄의 피해자는 늘 여성이며, 많은 여성들이 ‘몰카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몰카를 찍는 것은 범죄고, 남이 찍은 몰카를 무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범죄에 대한 동조다. “보기만 하다가 찍히니까 어떠냐”는 말은 그러한 동조에 대한 비판이다. 동시에 여성만이 몰카 피해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남성도 몰카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가정하게 함으로써 공동의 관심을 촉구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③  “당신은 남자친구의 성욕에 응해줄 의무가 없습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이 미안할 일인가? 연인 간, 부부 간이라고 섹스를 원하는 상대방의 요구를 억지로 들어줄 필요는 없다. 관계를 거부하는 애인을 미안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갖게 하는 것은 데이트 폭력이다. 섹스 거부를 남성혐오라고 여기는 이들은 여자친구를 ‘내가 꼴릴 때면 언제든지 섹스할 수 있는 욕구 해결사’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④  “자궁경부암은 남성으로부터 옮겨지는 성병입니다.”

국내 자궁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관계를 통한 감염과 유전 감염은 8:2의 비율로 나타났다. 바이러스를 가진 남성과의 성관계로 인해 자궁경부암에 걸리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남궁성은 산부인과 전문의는 “사실 전염 경로의 매개체가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도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남성혐오적인 메시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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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잇프로젝트#’

 

기사가 구분하고 있는 ‘남녀평등 포스트잇’‘남녀 간에 갈등을 부추기는 포스트잇’의 기준은 무엇인가? 김치녀와 개념녀의 이분법에서 탈피하라는 말이, 몰카 문제를 지적하는 말이, 남자친구와의 섹스를 거부해도 된다는 말이, 자궁경부암은 여성만이 책임져야 하는 질환이 아니라는 말이 왜 ‘남녀 간 갈등을 부추기는 메시지’에 속하는가? 아마도 기자는 제가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은 ‘남녀평등적’으로, 뭔가 기분 나쁘고 수긍하고 싶지 않은 내용은 ‘남성혐오적’으로 나눈 게 아닐까 싶다.

 

아무도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메갈리아의 포스트잇을 남성혐오, 혹은 남녀 갈등 조장이라고 여기는 것은 ‘여혐’‘여혐혐’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한다. 여성혐오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객체화, 타자화하는 것이다. 남성이 주체가 되어 여성을 타자화(성욕 해결사로, 몰카의 대상으로, 김치녀 혹은 개념녀로)하는 것은 모두 여성혐오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메시지들은 모두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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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잇프로젝트#’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닌데 왜 저런 포스트잇을 보아야 하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에노 치즈코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지적했듯이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베 밖에 있더라도, 여성이라도, 진보적인 성향이라도 말이다. 우리 모두가 성별이원제의 젠더 질서 속에서 성장했으며, 남성 중심적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정말 여성혐오자가 아니라면, 포스트잇의 문구가 나오고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게 된 사회적 맥락(여혐이 만연한 풍조)을 인식하고 여혐에 대한 혐오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여혐과 여혐혐 사이에서 “나는 여성혐오 안 하는데? 나는 건드리지 말아줘”라며 한 발 빼는 건 쉽지만, 그렇게 빠진 한 발은 결과적으로 여혐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남성혐오를 말하는 당신이 간과하고 있는 것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는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과 맞닿아 있다. 이때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개개인의 생물학적 남성에 대한 비판으로만 이해한 이들이 ‘남성혐오’를 들먹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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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포스트잇프로젝트#’

 

또한, 그들은 남성혐오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혐오 감정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멸시차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한 일베 유저가 “아무한테나 벌리는 XX”라는 글을 썼기 때문에 여성혐오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여성에게 성적인 ‘순결’을 강요하고, 이를 벗어나려는 여성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보기 때문에 여성혐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성혐오도 사회적인 멸시와 차별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남성 중심적인 지금의 사회에서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동등한 무게로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다. 약자의 강자 혐오와 강자의 약자 혐오가 어떻게 동일시될 수 있겠는가?

 

여혐에 대한 비판에 남성혐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정작 문제가 되는 여성혐오를 외면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여혐혐과 남혐을 동일시해놓고, 여혐과 여혐혐 모두 사회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사회를 ‘현상유지’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시해야 하는 건 오직 여성혐오다. 여혐혐은 기존의 사회 체제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당연히 갈등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 갈등은 남성과 여성의 갈등 아닌 여혐과 여혐혐의 갈등이다. 당신이 메갈리아의 포스트잇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 불편함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포스트잇의 내용이 갈등을 조장한다고 느껴졌다면, 왜 그런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 고민과 성찰로부터 ‘여혐 만연 사회’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섣불리 남성혐오를 말하지 마라. 당신이 말하는 ‘남혐’은 더 깊숙이, 더 넓게, 더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에 침투해 있는 여성혐오를 흐리게 할 뿐이다.

 

글. 달래(sunmin53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