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 한 해의 막바지입니다. 19살은 20살이 되고, 20살은 21살이 됩니다. 사회는 19에서 20이 되는 이들에게 ‘20살은 00다’라며 규정되고, 획일화된 20살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마치 20살 모두는 그런 ‘청춘’의 푸르름과 아름다움의 시간을 거칠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 20살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각자의 삶만큼 다른 이야기가, 아름다운 시간만큼 슬프고 고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하미들은 각자의 20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술회하면서 ‘20살은 이렇다’라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20살은 이러했다’고 담담히 털어놓고자 합니다. 20살로 변하는 이들이, 20살을 추억하는 이들이 20살을 개인의 것으로 그려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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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거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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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본다.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나의 스무 살은 격렬하고 혼란스러웠다. 포장 벗겨진 나에게 더 이상 핑크빛 미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건 단순히 수능 점수와 대학 간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듣던 ‘수능만 잘 보면 돼’라는 말처럼 단 한 순간의 기준으로 내 인생이 평가당하는 기분은 처음 겪어 보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때의 패배감과 무력함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무겁고 엄중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해서 수능을 보는 N수생들은 늘 평가를 기다리는 ‘미래가 기대되는 우량주’이고 싶어 하는 현실도피 같은 마음, 그런 게 아닐까.

 

‘너는 뭘 하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은 늘 수험생 시절의 나를 대단한 사람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 나는 그깟 대학 하나로 평가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학교 간판 하나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사람에겐 견디기 힘든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멸시와 조롱의 눈길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더불어 ‘미안하다’는 엄마의 탄식 섞인 위로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상 밖에서의 첫 경험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어서 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해.

 

이 혼란스러움은 나를 늘 도망치게 만들었다. 현실을 피해 잠을 자듯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그래야만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자위할 수 있으니깐.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늘 특별해야 한다. 나는 늘 달라야 한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을 피해 도망치고 숨었지만, 결국에는 사람들 속으로 찾아오곤 했다.

 

죽고자 섰던 한강다리 앞에서 돌아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건 그 피해의식을 극복했다는 것도 합리화했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게 정확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죽기 싫어 돌아왔으니, 이제 분수에 맞게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야지. 그때부터 나는 꾸역꾸역 하루를 버틴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힘들면 까짓것 죽어버리면 되지. 무책임하고 패배주의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 남아있지 않은가. 여전히 가끔 울컥 올라오는 불쾌한 피해의식은 나를 패배자처럼 만들긴 하지만.

 

이리저리 뒹굴던 내 삶의 태도는 2014년 4월 16일부터 바뀌었다. 295명을 바닷속에 묻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그 아이들의 몫까지 내가 ‘덤’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남은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이 받는 그 모욕의 짐들을 함께 짊어지겠습니다. 그 마음가짐은 용케도 아직까지 유효하다. 꼰대질을 경계하며 스무 살 언저리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는 게 힘들다면 부끄러워 말고 버텼으면. 살다 보면 혹시 아나. 나처럼 살아가야만 할 이유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당신 인생의 건투를 빈다.

 

글. 이주형(mangha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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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영화 ‘파수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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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이 되는 일은,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싱거웠다.

기대했던 것처럼 새 삶이 펼쳐지지도 않았고, 어떠한 능력이 생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새 해 일출을 보겠다고 내려오던, 20살이 되던 1월 1일의 날은 내가 의미부여하기 나름이었을 뿐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날은 아니었다. 아, 금방 그 말은 조금 틀렸을 수 있겠다. 그 날은 내가 첫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날이었으니까. 그 덕에 난 내 20살 1월 1일에 조금 더 많은 의미부여를 할 수 있었다. 무언가 희망차 보였으니까.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으니까.

 

20살이 되는 일은 그처럼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실, 설렘보다는 꽤 피곤하고 어려운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내 동갑인 전국의 수십만 명들은, 각자의 길을 가야 했다. 재수를 할 수도 있었고, 대학을 갈 수도 있었고, 취직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재수를 포기했고,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 세상은 내가 10대를 지내는 동안 ‘대학 가면 하거라’라는 말로 모든 것을 참게 만들어 주었던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20살은 방황의 시간이 되었다. 1월 1일에 호기롭게 시작했던 연애는 길게 가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나는 이별의 슬픔을 21살 군대 가기 전까지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대학 수업은 어쩌다 한 두 개를 빼놓고는 내가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대학 생활이라는 것도 아싸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발버둥치고 있는 괴상한 모양새로 보여 넌덜머리가 났다.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자유롭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했고, 돈을 벌려고 하면 자유롭지 못했다. 20살은 그렇게 내가 기대했던 것에 배신 당하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방황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20살이라는 것은 전국에 있는 20살의 삶만큼이나 다르고, 몇 문단으로 줄이기에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는 시간이다. 물론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 돌아가진 않겠다. 군대도 가야 하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뭐 하나 제대로 한 것 하나 없는 시간임에도, 20살은 무언가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이다. 그때의 그 얼치기스러운 방황과 어린 마음들이 귀엽기도 하고, 지금 내게 인상깊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말처럼 ‘존재만으로 아름다운 20살’이라서는 아니다. 내가 겪은 20살은 모든 것이 서툴렀고, 몰랐다. 세상은 관대한 척하면서도 무서운 날을 나에게도 갈고 있었고, 무방비 상태에서 그런 것들과 마주하는 것은 쉽지도, 재밌지도 않았다.

 

20살에 배운 것은 멀어지는 인연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을 배웠고, 선생님 외의 수많은 사람들을 윗사람으로 둬야 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내가 가진 돈이나 학벌, 능력, 자격증, 영어 점수 따위로 인식되지 나라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어른들이 떠들어대던 ‘낭만’은 미래의 일과 현재의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걸 배웠고, 20살이 되자마자 준비-땅이라도 한 듯 각기 길로 뛰어 달려나가는 걸 보며 당황했다. 20살 대부분의 그 달림이 마라톤이 아니라 다시 되돌아올 100m 달리기라는 건 나중에 깨달았다.

 

20살이 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20살의 실체는 그런 것이었다. 난 그 실체에 배신감을 느껴 수업을 빠지기도 하고, 듣고 싶은 강연과 행사에 참석하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사진전에 가기도 했다. 그 방황들은 지금의 나에겐 종종 ‘그때 왜 그렇게 놀았지’ 싶을 정도로 많은 짐을 안겨 주었지만, 그 풋풋함과 어린 치기는 여전히 그립고 나를 흐뭇하게 한다. 그렇게 그때의 나에게 감사하게 된다. 20살이 그저 그런 20살이 되지 않게, 무너지는 20살로만 남지 않게 해서 다행이라고.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