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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의사표현이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는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 필터를 씌워 그들을 위로하는 데 동참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다. 미연방법원 동성결혼 법제화 당시 LGBT 무지개 필터를 통해 축하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어 프랑스 국기 필터를 씌운 사람은 많이 늘어났다. 좋은 현상이다.

46886-01ⓒ 영문 위키피디아

 

하지만 프랑스 국기 필터는 LGBT 무지개 필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우선 프랑스 국기 필터가 생긴 건 프랑스 파리 일대에서 대형 테러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파리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여섯 개의 국가에서 거의 동시에 큰일이 일어났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도 큰 테러가 일어났고, 이라크 바그다드 역시 폭탄 테러로 26명이 사망했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가 덮쳤고, 멕시코는 허리케인 패트리샤가 덮쳤다. 한국은 국가폭력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이스북 유저의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세이프티 체크(Safety Check) 기능은 몇 국가에는 없었고, 주커버그는 앞으로 해당하는 국가의 범위를 늘릴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페이스북 유저가 자신의 안전 여부를 지인들에게 확인시킬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인 세이프티 체크(Safety Check)는 이 6개국 중에 오직 프랑스 파리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사용 가능했다.

이렇게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난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로뿐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국기 필터를 사용했다. 그러나 몇 사람은 프랑스 국기 필터만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베이루트나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폭력은, 한국에서 일어난 폭력은 눈감고 프랑스만 위로하기 바쁘다는 조롱 투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세계만이 위로의 대상이냐는 이야기도 보인다.

 

46886-021세계 중심의 감정 재편에 불만이 있다면, 비꼬는 것보다 직접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프랑스 국기 필터를 달았다는 것은 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는 의사 표시이지 1세계 백인만을 걱정하겠다는 주장은 아니다. 나는 한국을 걱정하고,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을 모두 걱정한다. 무엇보다 가장 피부 가까이에 있는 사건에서 가장 큰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장 어제 본 내 친구가 다쳤는데 저 멀리 일어난 일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은 드문 경우이지 않을까. 동시에 파리나 베이루트나 바그다드 모두 걱정이 된다. 테러를 포함해 그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반대하며,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 곳에 어서 평화가 돌아오길 바란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폭력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다. 나는, 아니 사람들은 그간 폭력에 침묵을 지키지 않았다. 그간 당신들이 그러한 목소리는 듣지 않았거나, 제3세계라 불리는 지역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냉소와 불만을 차치하더라도 프랑스 시민들에게 위로를 보내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렇지만 프랑스 국기 필터를 쓴 사람이 국가폭력을 옹호하고, 아니 폭력을 옹호하는 경우도 보인다. 아시다시피 프랑스 국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 박애 모두 무시한 채 중동 국가 및 국민을 모두 욕하거나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를 테러범과 동일 선상에 놓는 자들이 프랑스 국기 필터를 쓰고 있는 모습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국기 필터를 쓴 여부와 상관없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 폭력을 당한 이들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몰상식한 일이라 생각되지만 그러한 자들이 프랑스를 위로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프랑스를 테러한 이들이 바라는 것이 그러한 배척과 폭력의 논리인데, 배척과 폭력이라는 가해자의 논리로 피해자를 위로한다는 것 아닌가. 이처럼 때로는 프랑스 국기 필터가 입장마저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 생각의 끝이 비뚤어져 있다면 그것을 결코 좋은 위로라고 할 수는 없다.

 

46886-03이러한 폭력 행위를 옹호하겠다는 프랑스 국기 필터 계정도 봤다. / ⓒ 공무원U신문

1세계에 대한 전 세계적 위로 동참 행렬이 아쉬울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 역시 1세계가 아니며, 전 세계가 토요일 서울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더욱 많은 사람이 바그다드와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테러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며, 그들에게도 위로와 기도를 보냈으면 한다. 프랑스에 위로를 보내는 것은 하나의 입장이며 의사 표시이지, 그것이 그 사람 의견의 전체를 드러내는 순간도 아니다. 누군가에 대한 위로를 비뚤게 보느니 더 큰 위로를 던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감수성의 영역은 넓어질수록 그걸 감당해야 하는 개인에게는 힘든 순간이 많아질 수 있겠지만, 그걸 끌어안는 사람이 많아지고 공유하는 만큼 차가움은 줄어들고 따뜻함은 늘어날 것이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 위로라는 단어의 온도는 아무래도 따뜻함과 가깝다. 그래서 따뜻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사건마다 입장이 따로 노는 자에게 이 글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폭력과 배척으로 뭔가를 해결하려면 굳이 인간에게 이성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글/블럭(blucshak@gmail.com)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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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도 역사입니다.

1 Comment
  1. Avatar
    ㅇㅇ

    2015년 11월 17일 12:44

    물론 프랑스국기로 프로필을 바꾸는 것이 감수성이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한편으론 페이스북이나 언론이 조장하는 제1세계에 대한 차별적인 동정심 조장에 동의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 이라크와 시리아 사진도 그런 차별적시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구요.. 무작정 비꼬는 사진은 아니라고 봐요
    물론 프랑스테러에 대한 애도와 위로는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의 동정심이나 공감대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지는지,왜 어떤 일에는 더 큰 슬픔을 느끼고 행동하는지 짚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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