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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② 나의 스무 살, 나의 씨발 스무 살

수능이 끝나고, 한 해의 막바지입니다. 19살은 20살이 되고, 20살은 21살이 됩니다. 사회는 19에서 20이 되는 이들에게 ‘20살은 00다’라며 규정되고, 획일화된 20살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마치 20살 모두는 그런 ‘청춘’의 푸르름과 아름다움의 시간을 거칠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 20살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각자의 삶만큼 다른 이야기가, 아름다운 시간만큼 슬프고 고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하미들은 각자의 20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술회하면서 ‘20살은 이렇다’라는 고정관념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20살은 이러했다’고 담담히 털어놓고자 합니다. 20살로 변하는 이들이, 20살을 추억하는 이들이 20살을 개인의 것으로 그려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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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 이번 주인공들은 20살에 재수생이었다.

 

 

 재수와 함께 시작된 나의 스무 살

 

거의 5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20살이 되던 그 첫날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의 쓴맛을 온 정신으로 느끼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실패나 좌절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실패는 20년이란 짧고도 긴 인생 중에서도 가장 큰 실패였기 때문일지도.

 

원하는 대학에 갈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수리 시간에 계산만 좀 더 똑바로 했어도, 아니 언어 시간에 몽롱한 정신만 붙들고 녹음을 들었어도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 몇 문제만 더 맞았어도. 나의 칠칠치 못함을 자책하는 하루하루였다. 수험 동안 불안이 솟구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믿었었는데. 하지만 나는 이제 나조차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냥 질러보자는 심정으로 원서를 넣었던 대학은 합격할 리가 없었고 그렇게 재수 생활은 시작되었다. 장소만 학교에서 독서실로 바뀌었을 뿐 19살과 20살의 생활은 바뀐 것이 없었다. 엄마가 해 준 아침밥을 먹고 EBS 교재를 챙겨서 독서실로 향했다. 공부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다시 밥을 먹고 공부를 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돌아가 걱정으로 이루지 못하는 잠을 억지로 청하고, 일어나면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웠다. 대학에 간 친구들은 물론이고 같이 재수를 하는 친구들조차 연락이 없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가족들 외에 인강 선생님밖에 없었다. 남들과 얘기는 못 하더라도 남들끼리 하는 대화라도 듣고 싶어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네가 보고 싶어” 뭔가 힘들어 보이는 그녀의 문자. 대학 생활도 재수 생활만큼이나 녹록지는 않은 건가. 걱정되어 보낸 나의 문자에 그 친구는 “그냥 한 번 보내봤어. 우리 캠퍼스로 한 번 놀러 와!”라고 답장했다. 나는 그 아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미워졌다.

 

여름, 강남의 재수 학원의 오후반으로 등록하여 학원에 다녔다. 담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여러분들은 이제 성인이니까 수업에 빠지든 말든 난 개입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본인의 행동에 책임지시길 바라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업에서 무단이탈하면 혼났지만 이제는 학원 선생님도 나를 혼낼 수 없단다. 나에게는 자유가 있다. 그런데 나에게 정말 ‘자유’가 있는 건가? 그런 얘기를 듣고도 나는 이 학원에서 나갈 수 없다. 공부를 해야 했고 이번에는 좋은 대학에 가야 했다. 두 달에 12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학원비 고지서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순 없어. 길거리에 지나가는, 한껏 꾸민 여대생들을 보면서도 나는 다짐했다. 조금만 더 참기로.

 

말하자면, 나는 내가 ‘중간자’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밤거리를 배회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유. 나는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매일 공부를 해야만 하는 수험생이었고 나의 생활은 성인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20살의 재수생활.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 어디 재수 성공 수기에 나오는 것처럼 ‘힘들었지만 그때만큼 보람차게 생활했던 적은 없었어’라던가 ‘재수 경험은 제 인생의 밑거름이 되었어요’라는 식의, 미래의 재수생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는 적고 싶지 싶다. 결과가 좋았으면 나도 모든 아픔을 잊을 수 있었을까. 그때의 과거도 마냥 아름답게 빛나 보였을까. 아무 의미 없었다고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 생각해도 나는 참으로 못났었는걸.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재수 생활. 그저 찬란한 20살을 즐기지 못하고 구석에 박혀 공부나 하는 내가 미웠고 그렇지 않은,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을 미워했던 나날들. 두 번째 수능 날 들이쉬었던 아침 공기에서 느껴지던, 소름 끼치도록 불안한 예감까지. 이제는 조각난 영화필름처럼 살다가 문득, 내 머리를 훅 스쳐 지나가고 이내 사라진다.

 

그 이후로 나는 얼마나 자랐을까. 자유와 책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나의 선택이 뒤엉켜 분간하지 못했던 20살의 어린 나를 뒤로하고 21살을 맞이했다. 나는 앞으로 내 삶을 내가 선택했다고 믿기로 했고 그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가끔 나는 알지 못하는 힘에 앞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20살의 치기를 어루만져본다. 부끄럽고 바보 같아서 차마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에는 아쉬워서 한 번 더 뒤 돌아보게 되는 나날들.

 

글. 베르다드(qwerty9254@naver.com)

 

 

나의 ‘씨발’ 스무 살

 

점심시간이면 잠깐 문이 열렸다. 친구 놈 하나와 함께 나는 항상 밖에서 양치를 했다. 하수구에 치약 물을 뱉으며 우리는 어떤 해방감이라도 느꼈던 걸까. 도시락은 강의실에서 먹어놓고도 꼭 그랬다.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입 헹구러 가기가 귀찮다고 거의 10분은 칫솔을 물고 버텼다. 뚱뚱한 몸매에 후줄근한 후드를 뒤집어쓰고.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으리라. 인정한다. 거품을 국적 거리면서 나누는 잡담도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겠지. 모의고사를 망쳤다거나, 공부하기 싫다는 정도의 그 진부한 이야기들은 항상 같은 결말을 맞았다. 입에 있던 것들을 내려치듯 뱉어내며, “씨발.”

 

참으로도 비참한 이 스무 살의 씨발은 한 해 동안 나를 지겹게 따라다녔다. 씨발로 시작해서 씨발로 끝났다고 해야 할까. 재수할 거냐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던 “해야지 뭐 씨발”부터 이불 속에서 수험표를 찢어발기던 소리 죽인 “씨발”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씨발들을 뱉어냈을까. 모르긴 몰라도 골목길의 칫솔질 횟수만큼은 짖었을 테다. 마초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팔자걸음으로 학원 복도를 배회하던 시절이었으니. 사실 각자의 방식으로 다들 그랬다. 유치하고 한심한 많은 것들이 지배하던 시간이었다. 그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간이었다.

 

그 축 처진 스무 살의 한 해, 참 이상한 일도 많았다. 청년드라마 속 설정 같은 가난과 불화가 우리 집을 덮쳤고,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랍시고 나는 부담과 특권을 동시에 몸에 안았다. 실직 신세였던 우리 아빠, 아들의 공부가 당신에겐 거의 강박이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형에게 아빠는 툭하면 무언가를 집어 던졌고, 옆에서 우리 엄마, 월 80벌이 중 30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그 돈으로 밥을 사며 고민이랍시고 가족 이야기를 늘어놓았지.

 

찌개를 입에 쑤셔 넣으며, 친구들은 너도 진짜 불쌍하다 씨발, 알 수 없는 이야기로 답례를 했다. 그러곤 그 암굴 같은 자습실로 돌아와 웅크려 잠을 청했던 거다. 일어나면, 또, 씨발. 생각해보면 이 상스러운 두 글자가 알량하고 이기적이던, 그리고 길었던 그 시간들을 아슬아슬 붙여놓은 듯하다.

 

영어 듣기 시간만큼의 자존심과 수학 공식 몇 줄 정도의 보상심리, 소설 지문 한 편 가량 자기연민, 알쏭달쏭 사회 탐구적인 우월감과 열등감, 호감과 비호감들, 긴 시간 속에서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그 모든 것들이 씨발, 또 씨발로 대충 뭉쳐지고 버무려져 나의 스물 덩어리가 되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길었는데,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지나갔지. 돌아보니 딱딱하게 뭉쳐진 나의 씨발 스무 살, 이제와 헤집기도 민망하다. 지나쳤던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덮쳐 올까 겁이 나니까. 가끔은 이제 다 컸다는 듯, 웃기도 한다. 어른처럼 어렸던 그 감정들이 그땐 진짜 같았는데.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좀 성숙하다? 아니다 싶은 거지. 큰 덩어리 하나를 뒤에 두고 오 년을 걸어왔지만 사실 아직도 내 키는 작디작다.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던 스물한 살 대학 새내기, 툭 하면 사고나 치던 멋없는 군인, 정의의 투사인 줄 스스로 착각하던 열혈 복학생, 실수와 욕심만 찬 이기적인 남자친구까지, 내가 지나온 모든 날들이 덩어리가 되어 내 뒤에 남았다. 스무 살의 덩어리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말이다.

 

그걸 밟고 서면 참 좋은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네다섯 개 덩어리를 사이에 두고 스무 살의 나를 바라볼 자신이 아직은 없다. 더 크고 더 무거운 덩어리들이 너무나 많은걸. 미안하다. 바로보기 어려운 나의 씨발 스무 살이여. 어쩔 수 없이 그때 그 날들처럼, 아직도 어른처럼 어린 태도로 얼버무리며 끝내야겠다. 말로 표현하자면, “음, 씨발”쯤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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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저러고 양치했다.

 

 

글. 인디피그(dbsrjstls@naver.com)

 

인디피그
인디피그

비겁하다 비겁맨!!!!!!!!!

1 Comment
  1. Avatar
    E()3

    2015년 11월 21일 16:25

    해결되고 마무리된 것 하나없지만 읽고나니 뭔가 속이 시원하네요 씨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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