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저격수였지만 지금은 멋진 남편

 

처음 신경숙 표절 논란을 터뜨렸던 이응준 작가가 비판했던 것은 신경숙 작가만이 아니다. 그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글에서 부인인 신경숙 작가의 표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는 남진우 문학평론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하일지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을 표절작가라며 그토록 가혹하게(아아, 정말로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괴롭혔던 것 아니겠는가? 참으로 기적적인 것은, 그랬던 그가 자신의 부인인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서는 이제껏 일언반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일언반구’ 없던 남진우 문학평론가가 약 5개월 만에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에 대해 글로 입장을 밝혔다. 월간 ‘현대시학’ 11월호에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표절에 대한 명상 1’에서 “표절은 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 그것도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썼던 것이다. 표절 저격수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가 이렇게 달라졌다. 표절이 문학 최초의 시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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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시비 이후 신경숙 작가는 뉴욕에 칩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뉴시스

 

문학계 큰어른의 쓴소리

 

9월 10일, 황석영이 교보 인문학 석강에서 “오늘날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대학의 문예창작과 탓”이라고 말했다. 여러 언론들은 황석영 작가의 말을 일제히 보도했고 조선일보, 이데일리, 연합뉴스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문창과 때리기에 나섰다.

 

황석영 작가는 문학계에서 좋은 소설이 나오지 않는 이유로 문창과를 지목했던 건, 문창과가 ‘진짜 문학’을 가르치지 않고 글 쓰는 기술만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후 논란은 여러 매체에서 비판하는 기사를 내면서 사그라지긴 했지만 문학계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문창과가 문단의 문제라는 것은 문단 원로가 할 말은 아니다. 아직 입성하지도 않은 문학 지망생 집단이 문단의 문제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호도성 발언이다. 만일 좋지 않은 글을 쓰는 문학 지망생이라면 매년 등단제도를 통해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한국문학의 질이 떨어졌다면 가볍게 문학 지망생들에게 문제를 떠넘기기보다 왜 떨어졌는지, 왜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듯하다.

 

 

대중의 관심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엔

 

지난여름, 문학계에 유래 없는 관심이 쏠렸고 연일 이어지는 ‘병크’는 재깍재깍 공격받았다. 현재 그 관심이 떠난 자리엔 요상한 발언들이 비판 없이 수용되고 있다. 표절과 관련해서 남진우 문학평론가가 옹호하는 글을 썼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작아졌다. 황석영 작가가 문단 문제에 대해 문학 지망생 탓을 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렇구나’하고 지나갔다.

 

어쩌면 한국문학의 문제는 이것 자체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쪽’ 논리대로 흘러간다. 문학 내 논리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건 문학을 알지 못하면 말하기 어려운 구조 탓이 크다. 언론이 황석영 작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베껴다가 보도하고 남진우 평론가의 글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새 대중의 관심이 떨어져 버려 다시 ‘문학계’ 사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라는 예술의 진입장벽, 그 진입장벽에 기반해 공고하게 구축된 출판시장은 끊임없이 대중과 멀어지고, 멀어짐으로써 살아남는다. 신경숙 사태 이후 문단권력으로 지목된 출판사들과 편집동인들이 쇄신을 약속했다지만 그 쇄신으로 한국문단은 달라질 수 있을까. 여기에 답을 내리긴 어려워 보인다.

 

 

글. 농구선수(lovedarkte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