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은 발 딛고 있는 지점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작가다. 살아온 경험의 궤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는 “경험치야말로 작가 최대의 무기”라고 말한다. 한때 힙합 뮤지션이었던 그는 지금 뮤지션 유니언에서 뮤지션들과 연대하고 있다. 영화 <소수의견> 원작 소설가이자 각본을 맡은 것으로 유명해진 이후론 꾸준히 문학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를 만나보았다.

 

부일 영화상에서 소수의견 각본상을 탔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감사하다. 작가 데뷔 이후로 소설 쪽에서 못타고 첫 영화 각본으로 상을 타게 되어 느낌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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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는 영화 ‘소수의견’의 원작과 각색을 맡았다. / ⓒ하리마오 픽쳐스

 

 

요즘 많이 바빠 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다녀오고, 파주 북소리 작가와의 대화에도 간다고 들었다. 요즘엔 어떤 활동에 가장 신경 쓰고 있는지?

영화 음악 저작권이 영화계에서 잘 지켜지지 않아 당사자들과 문제제기를 했는데 요즘 이게 가장 신경 쓰인다. 그래도 잘 되어가고 있다. 조만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표준규정을 마련하겠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소설도 쓰고 영화 각본도 쓴다. 어떤 게 더 재밌나?

창조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에 쓰는 건 소설이 더 재밌다. 내가 모든 걸 조작하니까. 다만 영화는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는 내가 각본을 만들더라도 촬영감독이 바꾸거나 연출자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수많은 선택들이 합쳐지면 원래 했던 것과 다른 모양이 나온다. 그런 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내 통제에 벗어나서 흘러가는.

<소수의견> 촬영장에 엑스트라로 참여하러 하루 갔었는데 시위씬이었다.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고 경찰들이 서 있고. 다 내가 묘사한 모습대로였다. 내가 만들어놓은 장난감 왕국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느낌이어서 소설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네이버 경력이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 멤버와 멘사코리아인데. 본인에게 진말페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일단 멘사코리아는, 내가 등록한 게 아니다. 출판사가 올려놓았다. 멘사코리아는 쓰지 말라그랬는데도 써버렸다.(웃음)

진말페는 98년도에 만들어졌다. 나름대로 나에게 있어선 의미가 깊다. 창작자가 되는 첫 단추였으니까.

 

 *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힙합그룹이다. 지금은 밴드 못(MOT)으로 활동하고 있는 웨이브 마법사(이하윤)와 손전도사(손아람), 오박사(오혁근)이 결성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인기를 누렸지만 2003년 오박사의 군입대로 공식 해체되었다.

 

하이텔동호회에서 유명해진 건가?

그렇다. 피씨통신 이런 데에 흑인음악 동호회가 몇 있었는데 그런 곳에 올렸다. 당시엔 데뷔루트랄 것도 없었다. 둘 중 하나였다. 클럽에서 공연하든지, 피씨통신에 음악을 올리든지. 우리는 둘 다 했다. 공연은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진말페에서 손전도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세기말적인 느낌인데.

그냥 장난친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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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 개인 페이스북 계정

 

뚱딴지 같지만 갑자기 궁금해진 게 있다. 글은 밤에 쓰는 편인가.

평소에는 낮에 쓰려고 한다. 밤에 쓰는 게 낫긴 한데 낮에 안 쓰고 밤에 쓰면 섬에 들어간 느낌이다. 정신적으로도 고립된 느낌이고. 직업인데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낮에 쓰려고 한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대단하다. 다시 인생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본인에게 90년대 후반에서 2천년대 초반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최근 나온 디마이너스도 2천년대 초반 운동권에 대한 이야기다. 이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다. 나에게 영원히 젊음이라 할 시기고, 젊을 때 할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다. 젊었던 시기하면 이 시기가 떠오른다. 또, 내 세계관이 형성되는 시기기도 했다. 80년대 중반쯤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 민주화운동이 각인된 기억이었던 것처럼 나에게는 아는 것과 경험해보는 것은 또 다른데, 많은 것을 경험해보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작가가 가진 최대 재산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이때 많은 것들을 경험해서 지금까지 좋은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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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2천년대 초반 대학 운동권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손아람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디 마이너스’ / ⓒ자음과 모음

 

그리고 등단하지 않고 작가가 되었다. 작가지망생은 대부분 등단할 생각부터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등단을 고려한 적이 없었나?

아니다. 첫 소설을 공모전에 냈었다. 작가가 엄청나게 꿈이었던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살고 싶었다. 대학 졸업하기 전에 책을 한 번 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서 일단 썼다. 쓰고 나서 알아보니까 공모전에 입상해야 작가가 될 수 있다더라. 그래서 냈는데 떨어졌다.(웃음) 근데 이게 한 공모전에 내서 안 되면 다른 공모전에 낼 수 없게 되는 식이더라고. 심사위원도 많지 않아 이쪽저쪽 심사하고, 공모전 권위를 위해서라도 이쪽에서 떨어진 건 다른 쪽에서도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공모전으로 노력해서 작가가 되고 싶진 않았고 책을 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해서 책이 나왔다. 그리고 작가 생활을 하다보니까 등단제라는 게 상당히 웃기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더라. 최근에 여러 문제가 터지면서 바꿀 수 있는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윤리적이라서가 아니라, 등단제도에 빚진 게 없기 때문에 나서게 되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작가나 공모전을 통해 작가가 된 사람들은 입을 열기 어렵다. 나만 해도 사람들이 공모전 붙은 사람들 부러워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등단하는 것이 입성 티켓으로 작용하는 건가.

상당히 도그마화 되어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대학 입시랑 비슷하다. 20살 때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장애물이 많듯 공모전을 통과하지 않은 작가는 모든 단계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게 된다.

 

 

신경숙 사태 이후 여러 문제들이 불거졌다. 매번 비슷한 이야기로 돌다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엔 어떻게 될 것 같은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는 힘들 거다. 대형 출판사 이권이 걸려있는 거니까. 공모전을 열고, 공모전을 통과한 작가를 비평가들이 화력지원 해주고 책이 많이 팔리고. 이런 구조다. 수많은 작가들이 등단한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게 된다.

항복까진 기대하지 않고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반성하겠다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등단제 폐지해라”, “비평 청탁을 의뢰하지 마라”. 이렇게 두 가지다. 문예지는 현재 평론가들의 창작과 비평의 장이 아니라 출판과 홍보의 장이 되었다. 그런 시스템을 없애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문예지가 독립잡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긴 출판 상황상 어려울 거다. 대신 문예지에서 비평청탁 관행을 근절해달라는 것, 등단제를 폐지하라는 것. 이게 출판 기득권 재생산의 두 매커니즘이니까 이걸 없애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등단이 없어지면 출판사가 하나하나 검수 하는 건가.

한국만 등단제도가 있다. 다른 모든 나라에선 그렇게 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좋은 문학작품을 발굴하고 컨택하면 된다.

 

 

순문학, 대중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편의상 부르는 이름인데, 이것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다. 시장에서 통속적인 문법의 문학과 다르다고 말하는 게 순문학인데, 살아남을 수 없는 문학이 제도적 장치를 통해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남고 있다. 제도로 보호받는 문학. 물론 이중에선 가치 있고 훌륭한 문학도 있지만 비대칭적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통속적인 걸 원하는데 그런 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별로 없다. 출판사는 그런 대중소설을 안 읽고 순문학을 읽길 바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문학 시장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되지 않았다. 대중들은 대중문학 대신 순문학을 읽는 게 아니라 그냥 문학 읽기를 포기해버렸다. 문학의 저변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대중문학을 기반으로 점점 늘어나게 되는 것인데, 통속 소설은 거의 없고 순문학이라고 일컫는 것들만 있는 지금 형태는 기형적이다.

읽기 욕망에 충실한 독자들은 읽기 편한 글을 찾게 되는데 그 수요를 얻지 못하고 있다. 순문학 바깥을 모두 죽인 대가로 지금의 문학 시장 형성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 어떤 걸 준비하고 있는지?

소설이랑 영화 시나리오 준비하고 있다. (콜록콜록) 일단 감기를 나아야겠다.

 

 

* 인터뷰는 10월 5일에 진행되었습니다.

 

메인 이미지 : ⓒ 한겨레

 

 

글. 농구선수(lovedarkte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