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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가 그리는 정상가족 판타지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생계를 부양하는 아버지, 가사노동을 책임지는 어머니, 공부 잘 하는 아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남자와 결혼하는 딸로 이루어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판타지물이라는 것이 말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은 앞서 언급했듯 정상가족을 [생계부양자 남편+가사노동자 아내+부모의 말에 충실한 자녀]라는, 조금 구체적인 형태로 정의하고자 한다.)

 

 

덕선이 전교 999등이어야 하는 이유

 

응답 시리즈를 주의 깊게 지켜본 시청자라면 모두가 짐작할 만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여자주인공의 남편 찾기를 드라마의 가장 큰 축으로 설정한 이 시리즈에서 왜 여자주인공은 남자주인공들에 비해 부족한 인물로 그려지는가. <응답하라 1997>(응칠)의 시원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H.O.T 빠순이였지만 그녀의 남편 윤제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는 수재였다. <응답하라 1994>(응사)의 나정은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생이었지만 의대 1등을 놓치지 않는 재준(쓰레기) 앞에서 그녀의 능력은 보잘것없게 됐다. 그건 차라리 연세대 캠퍼스를 드라마의 주 무대로 설정하기 위한 장치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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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여자주인공 덕선은 공부는 못하지만 착하고 매력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다시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응답하라 1988>(응팔)에서 여자주인공 덕선은 전교 999등이지만, 그녀의 유력한 남편 후보인 정환과 선우는 각각 전교 1등과 전교회장이다. 지금껏 이러한 설정이 여성들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은 많았다. 하지만 응칠과 응사는 극의 마지막에 살짝 인심 쓰듯 결혼은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주인공들은 첫사랑과 결혼했지만 3,40대가 된 현재의 그들은 많은 문제들을 두고 서로 부딪혔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데렐라를 벗어나 현실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 여자주인공의 능력은 남자주인공의 그것과 달리 낮게 설정되고 소비되는가?

 

그것은 거칠게 말해 응답 시리즈가 가정한 현실에서 능력 있는 여자캐릭터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위에 지어진 이 시리즈에서 정상가족의 평범하고 착한 딸이던 여자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면서 남자사람친구와 사랑에 빠져 새로운 정상가족의 가사노동자 아내가 되는 평범한 직선 위에서만 소비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남자주인공이 이미 현실에선 거의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인 이상, 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자주인공의 매력은 그와는 반대되는 조금은 어리숙하고 둔한 것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 착한 아들딸

 

범주를 확대해보자. 응답 시리즈 내내 등장하는 성동일과 이일화 부부를 중심으로 이 시리즈는 언제나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만들려 애써왔다. 응칠에서 부부에게는 딸 시원만 있었지만 이들은 죽은 친구 부부의 아들인 윤제와 태웅을 거의 아들로 키우다시피 한다. 이 결합은 부와 모, 공부 잘하는 아들, 결혼 잘 하는 딸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완성한다. 응사는 더 노골적이다. 응칠과 마찬가지로 친구 부부의 아들을 사실상의 아들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하숙집을 무대로 하면서 부부는 하숙생 모두를 자식으로 편입해 버린다.

 

응팔에 이르러 제작진은 아예 가족을 최전방으로 내세우며 전작과는 달리 등장인물 모두의 가족을 꽤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편모가정인 선우네와 편부가정인 택이네가 마치 잘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들이 그리는 가족엔 부와 모가 필수적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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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여자주인공 시원은 H.O.T의 열성팬이지만 큰 사고 없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한다.

 

정상가족의 세계에선 자녀 역시 ‘정상자녀’여야만 한다. 작은 문제가 있을 수는 있어도 부모의 말을 크게 거역해서는 안 되고 어렵게 설정해놓은 정상가족을 뿌리째 뒤흔들 만한 사고방식을 지녀서도 안 된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H.O.T 오빠들을 보러 다니며 아버지의 속을 뒤집어놓는 전교 꼴찌 시원이 결국엔 동국대에 진학하는 것은 그래서다. 요컨대 응답 시리즈에 등장했던 수많은 딸과 아들들은 공부를 조금 못할 수는 있어도 몸 튼튼하고 마음 착한 아이들이었다.(그리고 대개는 공부도 잘했다.)

 

정상자녀의 판타지가 극대화된 것은 응사의 빙그레 캐릭터다. 빙그레는 함께 연세대에 입학한 신촌하숙 친구들 가운데 유일한 의대생인데, 그가 의대에 입학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뜻이다. 이 때문에 빙그레는 친구들과 달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휴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의대로 돌아와 의사가 된다. 빙그레가 의대 공부에는 흥미가 없는 대신 TV를 유난히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그가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정상가족

 

응답 시리즈가 설정하고 풀어내는 정상가족의 구조는 이토록 공고하다. 시리즈 내내 성동일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이일화는 한상 가득 차린 음식들로 캐릭터를 구체화한다. 그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치열한 가사노동의 결과물이다. 응팔에서는 처음으로 맞벌이 가정이 등장하지만(동룡의 모), 그녀는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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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정상가족이 ‘정상’가족인 이유는 그들이 정말로 보편적이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냐고.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0년에 이미 2인 가구(24.3%)와 1인 가구(23.9%)가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4인 가구(22.5%)의 수를 앞질렀다.

 

설령 정말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라 하더라도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를 완벽하게 챙겨야만 하는 어머니, 부모의 과한 기대 아래서 꿈을 접어야 했던 자녀의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그러므로 인정하자. 응답 시리즈는 이상적인 정상가족을 그리며 그 폐해를 사랑과 정으로 덮는 판타지물이라는 것을.

 

 

글. 아레오(areoj@daum.net)

아레오

아레오는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게 너를 좋아한단 뜻은 아닙니다

2 Comments
  1. 김성원

    2015년 11월 30일 05:42

    .. 이론 하나만 배운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무식한 틀짜기네요. 여성학 수업 들어서 신났쪄여~

  2. 지나가다가

    2015년 12월 9일 16:54

    이 글 쓴 사람은 응답하라 1988을 보는건가 응답하라 2015를 보는건가….. 주장 “설령 정말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라 하더라도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 이유 “맞벌이를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를 완벽하게 챙겨야만 하는 어머니, 부모의 과한 기대 아래서 꿈을 접어야 했던 자녀의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이건 정신 승리인가요 무슨 멍멍이 소리인가요. 그냥 지나가다가 황당해서 댓글 달고 갑니다. 논증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그 “자녀의 사례”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나 사례 모음 등을 통해서 제시해야지… 그리고 4인 가족 100가구 있으면 그 중에 부모때문에 꿈접는 사례가 50가구 이상 될거 같아요? 정말요? 하다못해 우리나라 4인 가족은 자식을 핍박하는 그런 가족뿐이라고 쳐도.. 그게 왜 응팔이 4인가구 폐해를 뒤덮은 판타지라는거요?? 너와나의 연결고리는 어디에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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