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나의 프랑스 연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과거 지독히 사랑한 연인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10년 후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다면 당신은 그 전화를 받을 것인가? 혹시나 모르는 번호로 걸려와 받아버렸던 전화에 그 옛 연인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갑자기 서로 사랑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말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더욱이 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당시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고, 지금은 새롭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 그때와는 완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면 말이다.

 

SW_BellevilleBaby_still01 ⓒ bellevillebaby.com

 

영화 <나의 프랑스 연인>은 이런 상황에 있는 여주인공 미아가 옛 연인 벵상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미아는 벵상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황한다. 애써 지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 무시하려 하지만, 벵상의 말을 듣자마자 전화기에서 귀를 뗄 수 없게 된다.

 

“은행강도를 저지르다 잡혀 10년 동안 감옥에 있었어. 지금은 나를 찾는 과정에 있어. 예전의 기억을 통해 삶의 조각을 다시 맞춰보고 싶어. 도와줄 수 있겠어?”

 

10년 전 갑작스레 떠나버린 줄 알았던 그는 사실 감옥에서 복역중이었다.

 

벵상의 부탁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던 날들의 기억들을 말해 주는 것. 미아는 당혹스러워하지만 간곡하게 부탁하는 벵상를 거부하지 못한다. 미아는 현재 스웨덴 스톡홀롬의 한 대학교에서 예술을 가르치며 영화감독을 하고 있고, 벵상는 이제 갓 출소해 프랑스 파리에서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 그렇게 며칠에 한 번 프랑스의 벵상는 전화를 걸어왔고, 미아는 그때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냈던 날들을 하나하나 떠올려간다.

 

고향인 스톡홀롬에서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었던 미아는 8인치, 16인치 캠코더와 휴대폰 카메라로 당시의 추억을 찍어두었다. 카메라 속에는 둘이 처음 만났던 파리 지하철에서부터, 같이 살던 마르세유의 집, 마약밀거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벵상와 그의 스쿠터 그리고 ‘베이비’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찍혀있다. 미아는 이것들을 토대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미아는 몇 편의 동영상을 기반으로 과거의 추억을 기억해낸다.

 

 

연애는 진정 ‘상대’를 사랑하는 것일까?

 

캠코더 화면 속 두 사람은 프랑스 방리유 지역의 폭동을 놓고 대화한다. 벵상는 방리유를 지켜보며 자신의 불후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곤 “누구는 은행 강도가 되고, 누구는 영화제작자가 되는 것일까? 누구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편안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며 `운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폭동을 통해선 ‘세상에 정의가 있는가’를 물으며 `계급, 정체성`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통해선 선택할 수 없는 운명, 계급, 정체성 이 모두를 과연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한때 연인 사이였던 둘은 마치 다른 사람을 만났던 듯이 추억을 각자 다르게 기억한다. 통화가 거듭될수록 미아와 벵상는 각자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아는 “어쩌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억이 왜곡되고 잊혀졌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서로 사랑했던 그때도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미아는 자신의 기억 속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지 못하는 벵상와 얘기하며 고민에 빠진다. “서로 사랑한 것은 맞을까? 혹시 벵상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닐까?” 미아는 연애가 진정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곤경에 처한 연인을 어찌하지 못했던 나

 

영화는 등장인물이 직접 나오지 않는, 오로지 통화 속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전개된다. 영화 초반 미아의 현재 모습이 잠깐 보이긴 하지만 다른 시점의 상황은 나오지 않으며, 벵상의 상황은 영화 내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영화적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막바지에 이를 때쯤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영화감독이자 여주인공인 미아 엔그버그는 이 영화에 ‘객관적인’ 진실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논픽션과 픽션, 기억과 상상을 섞어 만들어진 영화는 역설적으로 상상의 범위를 넓히는 효과를 준다. 영화는 계급, 인종, 정체성, 그리고 인간의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논의를 확장하기도 한다. 작게는 남녀 간 연애에 관한 이야기부터, 크게는 가부장제, 정치∙사회 문제까지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감독은 누구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마약 딜러 벵상와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의 말처럼 <나의 프랑스 연인>은 누구나 과거의 사랑과 함께, 내면의 어둠을 가진 연인을 구할 수 없을 때 느꼈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곤경에 처한 연인을 어찌하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자기 자신의 어둠을 직면하게 한다.

 

 

메인이미지 : ⓒ bellevillebaby.com

 

글. 아나오란(wodbst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