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2010년 당시 유명했던 ‘김예슬 선언’이다. 그리고 전국에는 수많은 ‘김예슬’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김예슬 선언은 화제가 되었고, ‘용기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그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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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하니누리

 

우리가 알고 있는 김예슬 선언과는 조금 다른 ‘대학 거부자’들이 있다. 이번 [청년연구소]는 책 <대학 거부 그 후>에 담긴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본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 정도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30%라는 이야기다. 그들 역시 20대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대학을 가지 않은 이들은 ‘김예슬 선언’만큼 관심받지 못하고 격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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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교육공동체 벗

 

 

* 아래에 등장하는 ‘나’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자가 새롭게 작성한 가상 인물의 가상 스토리입니다.

 

 

대학거부 이유

 

내가 대학을 거부한 건 단순하고, 복잡한 이유였다. 간단히 말하면, 성적으로 줄 세우고 대학을 가는 교육제도가 맞지 않았다. 물론 대학을 거부한 수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어쨌거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야자, 성적이 낮으면 가해지는 무시와 폭력 속에서 대학교를 간다고 해서 그 모습이 바뀔 거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자퇴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여전히 나름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였다. 대안학교를 나온 학생들도 꽤 대학교로 갔다. 대학 갈 준비를 안 해 본 건 아니다. 허나 예체능에서도 ‘줄 세우기’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다. 결국, 난 대학을 거부했다.

 

 

머나먼 정규직, 머나먼 괜찮은 직장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로 ‘고졸’이 되든 아니면 그대로 ‘중졸’이 되든 이제 노동을 해야 했다. 대학교에는 가지 않았고, 성인이었으니까 내 돈은 내가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아예 빠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대학을 거부한 사람이 일을 아예 안 할 순 없으니 노동을 시작했다. 문제는 중졸, 혹은 고졸을 위한 ‘괜찮은 정규직 직장’은 없었다는 거다. 공장같은 생산직이나 카페같은 서비스업 뿐이었고, 거기에 더해 정규직이 되기조차 힘들었다. 일은 힘들었고, 돌아오는 돈은 많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40~50대 어른들은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도 ‘이런 곳에서 일하지 말고 경리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곤 했다. 종종 정규직 제안을 받거나, 운이 좋아서 조금 나은 일자리를 구해도 미래를 그리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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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포털 커리어, 2015년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는 ‘좋은 직장’뿐 만은 아니다. 대외활동 역시 대부분 대학생으로 한정지어진다. 종종 대외활동이나 직장에 대학생 혹은 대졸자와 같은 것을 명시하지 않은 곳을 보고 지원하려고 한 일도 있었다. 허나  ‘소속’이나 ‘대학교’, 혹은 ‘학력’을 기재하는 칸을 발견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했고 결국 지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왜 중졸(혹은 고졸)이냐?’ 와 같은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일이 너무나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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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고교10대 천왕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대학을 가지 않았다’ 혹은 ‘대학을 다니지 않는다’고 설명하면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다. 나에게 돌아오는 시선은 ‘사회 부적응자’ 혹은 ‘무언가 문제 있는 사람’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 그렇구나’라면서 ‘그게 뭐?’라는 태도의 사람을 만나면 반가웠고, 고마웠다.  대부분은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더라도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며 훈계를 꺼내 놓곤 했다. 결국에는 움츠러들어서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혹은 ‘직장을 다닌다’며 회피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너무나 귀찮아지니까 결국엔 ‘대학생’이라는 지위나 다른 지위를 꺼내서 나를 설명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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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1월 12일 있었던 대학 거부자들 파티

ⓒ’투명가방끈’ 페이스북 페이지

 

 

30%을 위한 시선이 필요해

 

대학을 가지 않는, 30%는 절대로 적은 숫자가 아니다. 또한, 그 숫자가 1%라도, 0.1%라도 그 적고 많음과 상관없이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학거부자는 애초에 사회에서 인식하는 ‘20라는 인식과 논의에서 배제되어있다. 책에서는 대학을 가는 건 선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선택이 아니었다’라고 나온다. 사실은 강요된 선택인 것을, 그렇지 않은 걸 선택했다는 이유로 당연히 가야 하는 길을 가지 못한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은 절망하고 있다. 대학 거부자들에게 특권을 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20대에는 대학거부자도 있다는 인식이며,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며 공감하려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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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왕성>

 

2013년에 개봉한 영화 <명왕성>은 1등만을 강요하는 입시제도의 비정함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김준은 “매일매일 앞에 달려가는 애들 등짝만 보면서 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라며 “나 이제 열아홉인데… 왜 그렇게 살아야 돼!”라고 분노한다. 대학 거부자들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명왕성>에 나오는 입시 전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며, 그들 역시 ‘분명히’ 2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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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가방끈’페이스북 페이지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라 거부자다”.

그동안 있었던 ‘투명가방끈’의 대학거부행사 메인 슬로건 중 하나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