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세 글자에 수많은 단상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많은 이미지들이 곧 도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고시생’과 ‘수산시장’ 없는 노량진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보았는가? 그 많은 ‘고시생’과 ‘수산시장’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충분한가? 이제 고함20은 우리가 감각하지 못했던 ‘노량’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 이 글에는 KBS 드라마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노량진에 가본 게 몇 번이나 될까. 서울에 살게 된 지 햇수로 벌써 4년이지만, 악명 높은 1호선-9호선 환승구간 때문에 노량진 땅을 밟았던 걸 제외하면, 내가 노량진에 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다섯 번이 채 안 될 것이다. 그마저도 얼마 전 바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환승 통로가 생겼다고 하니 아마 앞으로도 내가 노량진에 갈 일은 손에 꼽을 듯하다.

 

한마디로 나는 노량진을 손쉽게 재단할 수 있는 쪽에 서 있었다. 노량진이라는 지명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고시원’과 ‘수산시장’, 이 두 단어로도 나는 얼마든지 노량진을 말할 수 있었으므로, 아주 가끔 노량진을 말해야 할 때 나는 내가 가진 적은 단어들로 그곳을 조금씩 짜깁기해오면서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노량진을 말하게 되었다. 그곳에 가본 경험도 변변찮고 그곳을 잘 아는 지인도 없는 내가 가장 먼저 택한 것은 노량진을 다룬 단막극을 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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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지방 출신의, 아르바이트하는, 착한 고시생

 

KBS 드라마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노량진역)>의 주인공은 33살 남자 고시생이다. 거칠게 말하면, 공무원 시험에 계속해서 떨어지는 주인공이, 어느 날 과정도 중요하다며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을 외치는 여자주인공을 만나서 전보다 행복해진다는 게 <노량진역>의 줄거리다.

 

이 1시간짜리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나는 어딘가 아쉬운 느낌을 받았다. 그건 단순히 여자주인공이 혈액암에 걸렸다는 뻔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제작진이 만들어낸 남자주인공의 설정과 그의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의 제작진이 20대에게 건네려는 위로가 더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뻔함이 노량진 고시생, 나아가 20대 청춘을 손쉽게 재단하는 데서 출발했음을 포착한 탓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서른셋 고시생인 남자주인공 희준(봉태규)은 지방에서 올라왔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고시학원에서 지도원을 하고, 공부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수산시장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이런 점들로 미뤄보아 그는 아마도 착한 사람인 것 같은데, 시험은 냉정한 것이므로 그는 4년 동안 10번이나 고배를 마신다. 그래도 희준은 열심히 산다. ‘남들처럼만 살자’, ‘나 모희준은 부모님의 자존심이다’ 따위의 문구를 고시원 벽에 붙여놓고 기약 없는 수험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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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주인공 희준은 공무원 시험에서 계속해서 고배를 마신다.

 

 

현실을 즐기라는 조언의 이상성(理想性)

 

희준에게 과정도 중요하니 현재의 행복을 깨달으라고 1시간 내내 말하는 유하(하승리)는 지금은 은퇴한 전 기계체조 선수다. 그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는 “금메달 못 따고, 합격 못 한다고 해서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잖아요”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녀는 전국체전에서 기계체조 금메달을 딴 적이 있으며, 그녀 역시 혈액암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 되고 나서야 현재를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희준은 비록 공무원 시험에 1점 차이로 떨어진 후 마포대교로 향한 적 있는 인물이지만 그에게 죽음은 아주 먼 이야기다. 그런 그에게 유하의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어렵다. (물론 드라마는 유하를 희준에게 소중한 인물로 만든 후 그녀의 죽음을 통해 그에게 그녀의 메시지를 각인하려 하는데, 이것이 TV 너머의 시청자에게까지 효과적인가를 생각하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준에게 유하는 현실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희준을 유하는 공원에서 만나자고 이끌고 계속해서 연락한다. 당연히 공부가 될 리 없고 그는 학원에서 실시한 모의고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 때마침 서울에 올라온 어머니는 희준을 만나 반찬과 용돈을 전하고, 이를 계기로 희준은 유하와의 연락을 끊고 공부에 집중해 시험에 합격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희준은 유하를 찾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뒤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주인공이 각성 하는 것 역시 닳고 닳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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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드라마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유하의 메시지는 희준이 노량진 고시생의 현실을 벗어난 후에야 와닿게 된다.

 

만약, 희준이 시험에 불합격했다면 유하의 메시지는 희준에게 온전히 가닿을 수 있었을까? 그러기는커녕 원망만 샀을 거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요새 애들은 편하게 공부한다”는 식으로 ‘꼰대짓’ 하던 고시학원 실장 역시 “연애나 하고 다니니까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며 희준에게 비난을 퍼부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현실에 충실하라’는 유하의 말은, 희준의 현실에선 전혀 소용이 없는 말이었으며, 희준이 현실이 아닌 이상을 실현하고 나서야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꿈꿔왔던 이상이 희준에게 새로운 공고한 현실이 될 때쯤 유하의 말은 또다시 힘을 잃을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위로들의 답습

 

노량진을 손쉽게 재단하던, 고시생도 아닌 내가 노량진 고시생을 재단하는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언뜻 역설적이다. 그건 드라마의 제작진이 만들어낸 희준이라는 인물이 단순히 노량진 고시생을 대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청년의 범주까지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수많은 ‘어른들’이 자신들이 상상하는 ‘청춘들’에 했던 위로와 조언의 답습이다.

 

뻔한 인물에게 건네는 당연한 위로는 무의미하다. 돋보기를 들어 개인의 삶에 갖다 댔을 때, 희준처럼 뻔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한 듯 보이는 위로는 유하의 그것처럼 비현실적이므로. 진부한 위로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 않겠냐고 당신이 반문한다면 거기엔 나는 할 말이 없다.

 

 

글. 아레오(areoj@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