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내 주변에선 찾을 수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치는 일상이며, 일상 역시 정치입니다. 우리는 몇 번을 열어도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의 민속 인형 마트료시카가, 일상을 파고들 때마다 마주치는 정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들을 정치와 연결짓는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의 에세이를 연재하려 합니다.

 

 

지난 11월 14일, 서울에서 10만 민중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며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현 정부 아래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시위처럼 변화는 없어 보였다. 각종 언론과 SNS에서는 불법폭력시위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시민들이 모여서 만드는 거리정치에 대한 혐오는 기존의 의회정치에 대한 혐오보다 더욱 커 보였고 효과는 미약해 보였다.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난생처음 참여해본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100만에 육박하는 인파까지 경험해봤지만 변한 것은 별로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원천 무효’라는 구호는 비교적 안전한 3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광우병 사건 이후에도 용산참사, 미디어법, 언론파업, 한미FTA 등 다양한 주제로 집회가 생길 때마다 많은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용산참사문제는 아직도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종편을 탄생시킨 미디어법은 날치기로 통과됐다. 정부의 방송장악도 이뤄지고 한미FTA도 결국 체결됐다. 사람들이 거리로 모인다고 해서 제대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회의감이 가득할 법도 하지만 뜻밖에 나는 비교적 작은 현장에서 거리정치의 효과를 경험했다. 바로 2011년 부평 GM대우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투쟁현장이었다.

 

 

처음 느껴본 작은 변화

 

당시 부평 GM대우 공장에서는 3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2007년에 해고된 뒤 3년 넘게 투쟁 중이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노동자 두 명이 한겨울에 정문 앞 아치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방학을 맞아 지인들과 함께 그 현장에 방문했고 한동안 매일 아침 출근 선전전도 함께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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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공농성을 진행했던 황호인, 이준삼 씨  ⓒ민중의 소리

 

작은 행동이라도 그분들에게는 큰 힘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함께했지만, 어린 대학생들이 투쟁현장에 동참한다고 해서 바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정문에 자리를 잡고 앉아봤자 용역과 경찰들에게 바로 들려 나올 뿐이었고, 매일 밤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며 구호를 외쳐봤자 허공에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보낸 뒤, 우리에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 것을 약속하며 투쟁하시는 분들과 헤어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설 연휴에 명절 선물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 소식이 들려왔다. 사측이 끝까지 싸운 1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원 복직시키는 데 합의한 것이다. 기쁜 마음도 컸지만,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비록 작은 결과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거리로 나서는 것도 우리 삶에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한 첫 경험이었다.

 

바로 그해 여름에는 반값등록금 구호가 거리를 뒤덮였다. 수년간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외친 결과, 비록 문제는 많지만 취업 후 학자금상환제도가 생겨났고 국가장학금제도가 생겨났다. 그리고 서울시립대는 반값등록금이 이뤄졌다. 물론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이전의 실패한 경험보다 훨씬 적었지만, 이 두 번의 경험은 나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언제나 필요한, 어떻게든 참여할 수 있는 거리정치

 

87년 6월항쟁 이후, 한국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갖춰진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내 손으로 뽑는 것을 넘어 지방자치제도 발전했다. 그만큼 과거처럼 굳이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오지 않아도, 선거를 통한 제도권력을 획득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바꿀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는 거리정치보다 효과적이다. 80년대를 치열하게 싸웠던 활동가들이 6월 항쟁 이후 국회에 들어가거나 정당을 만들려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리정치는 의회정치만큼이나 중요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속에서 우리가 직접 정치에 참여할 기회는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의회정치가 먼저 나서서 다뤄주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많다. 이는 거리정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거리정치는 일반 시민들이 의회정치의 한계를 넘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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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구호를 만드는 활동 ⓒ프레시안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정치적 구호는 의회가 아니라 거리에서 만들어진다. 매해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협상을 통해 결정하더라도 협상을 유리하게 만드는 힘은 거리에서 나온다. 그런 힘을 키우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작게나마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본인이 활동가가 아니어도 혹은 대규모 집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거리정치에 참여하는 스펙트럼의 폭은 매우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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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100℃’

 

 

역사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물론 현재의 정부, 여당을 떠올려볼 때, 광화문에 차벽이 설치된 모습을 볼 때, 대부분의 시위를 불법폭력집회로 규정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거리정치를 통한 현실사회의 변화는 너무 아득해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길게 한 번 살펴보자. 7~80년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은 그런 현실이 얼마나 더 아득해 보였을까? 만화 ‘100℃’ 최규석 작가의 표현대로 물은 100도가 되면 끓기 마련이다. 물이 끓지 않는다고 포기하며 냉소에 빠지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

 

 

글. 풍뎅이(koreayee@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