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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질질 끌지 말고 추억으로 남겨두세요

tvN <응답하라 1988>을 놓고 여주인공 덕선(혜리)의 남편이 누군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응팔’이 여태까지 <응답하라(이우정 작)> 시리즈의 전철을 밟는다면, 남편은 선우가 될지도 모른다. 그가 여주인공 덕선(혜리)의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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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모든 주인공은 드라마 속 첫 사람이나 인생 첫사랑에게 돌아간다. 고백되지 못한 짝사랑, 부쳐지지 못한 편지에 대한 애잔함일까? 특히 여자가 첫 남자와 새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관계가 자주 보인다. 새 사람이 주인공에게 잘해주든 못 해 주든 사랑을 덜 주든 더 주든, 어쨌거나 그녀의 사랑은 첫사랑의 소유가 된다. 재주는 새 남자가 넘고 사랑은 옛 남자가 얻는다.

남자는 첫사랑을 되찾아 승리를 거머쥐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러 남자들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입장이 된다. 우리가 익숙해지고 있는 이 대리만족은 정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맞는 걸까? 우리는 순정으로의 회귀를 자연스럽게 강권당하고 있다.

 

MBC <그녀는 예뻤다>는 혜진이 성준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서로가 첫사랑인 소꿉친구 성준—혜진 관계의 완성은 한 번 놓쳤던 첫사랑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첫사랑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는 건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갈등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혜진이 신혁과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코난처럼 드라마를 일일이 분석하기도 했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혁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이다며 혜진—신혁 라인에 대한 응원이 열렬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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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tvN <로맨스가 필요해1> 인영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새 남자를 마다하고, 거짓말에 바람을 일삼는 전 남자친구에게 돌아간다. 그러고선 첫 사람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뒤늦게서야 구성한다. 왜 첫사랑에게 돌아갔는지 ‘사실은 이렇게 된 것이다.’ 따위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사연은 필연이 되지 못하고 해명에 그친다. 바람 핀 남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는지, 이에 대한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다. 심지어 이 핑계는 시청자들이 첫사랑을 더 애틋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주인공의 순정을 완수하기 위해 희생당하는 역할까지 극에 마련되어 있다. 사각관계에서 가장 비중이 적게 다뤄지는 역은 항상 여자 조연이다. 여자 주연이 남자 주연과 남자 조연 사이에서 고민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다르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는 여자 조연은 방해만 되는 악녀로 그려진다. <궁>의 민효린 역, <쾌걸춘향>의 홍채린 역. 그나마 <프로듀사>에서는 여자 조연에 해당하는 신디가 악녀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신디가 여자 주연의 남자가 아니라, 남자 조연을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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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KBS

 

왜 ‘여자는 옛 남자에게 약하고’,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가야 하는가? <연애의 발견>의 한여름은 항상 여자친구에게 져주는 하진을 뒤로 하고, 자신에게 최소한의 관심마저 주지 않던 전 남친 강태하에게 돌아간다. 연인에게 함부로 대하는데도 그게 첫사랑이면 돌아간다니? 그건 아름다운 순정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는 미련이다. 첫사랑이 풋풋한 과거의 추억이 될 수는 있어도, 언제나 답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더 이상 때를 놓친 미련에 공감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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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고 한다. / 경순왕릉. 글의 내용과 사진은 무관함 ©문화유산채널

 

 

글/사진 편집. 이설(yaliyalaj@gmail.com)

이설

남다른 소리

1 Comment
  1. Reader

    2015년 12월 11일 15:23

    이 글의 주된 논지는 ‘순정으로의 회귀를 자연스럽게 강권당하고 있다.’이며

    근거는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모든 주인공은 드라마 속 첫 사람이나 인생 첫사랑에게 돌아간다.’ 를 바탕으로 한 여러 사례 소개이다. 사례는 근거문을 보조해주는 장치이다. 따라서 근거만을 보고 그 타당성을 따져보면 ‘모든 주인공은’ 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 진정으로 모든 주인공이 그러했는가? 그 어떤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한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논증을 따라간다면 특정 사례만을 모아 얼마든지 독자를 호도할 수 있다.

    모든 주인공이 그렇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러한 것과 ‘순정으로의 회귀를 강궝단하는 것’과의 연결고리는 정당화되지 않는데,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모습이 어떻게 강권되는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정당화와 논거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사례 중심을 소개로 작성하는데 치중해야 하는게 아니라, 드라마 속 모습이 어떻게 개인에게 특정 가치나 프레임을 강권하는지, 강권되는지, 그럼 왜 강권하는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 중심으로 재구성되야 마땅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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