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내 주변에선 찾을 수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치는 일상이며, 일상 역시 정치입니다. 우리는 몇 번을 열어도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의 민속 인형 마트료시카가, 일상을 파고들 때마다 마주치는 정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들을 정치와 연결짓는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의 에세이를 연재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이 기사가 발행될 때쯤 나는 밀양에 가 있으려 했다. 12월 5일은 경남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투쟁이 시작된 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2005년, 송전탑이 건설된 5개 면 중 한 곳인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북과 꽹과리를 챙겨 시내에 있는 한국전력공사(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시위한 것이 긴 세월의 시작이었다.

 

나는 밀양에 살았다. 그곳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22년 중 15년을 거기서 살았다. 글을 읽는 당신도 짐작했을 것이다. 밀양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공사가 끝난, 그러므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경상도 시골 마을의 이야기로 글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공사가 끝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외부인들에게 밀양은 딱 그 정도의 뉴스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꽤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녔던 내게 송전탑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정치와 이해관계를 맨눈으로 학습하는 계기였다.

 

 

처음 만난 정치적 이슈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건 중학생 때 알았다. ‘765kV 초고압 밀양사망 안돼요’라는 글귀가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등으로 촌스럽게 적힌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의 스티커가 눈에 들기 시작했다. 내가 떠올린 것은 우습게도 ‘님비’였다.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반대하는구나. 전기니까 건강에 안 좋겠지? 그래도 너무 이기적이야.” 정부가 하는 사업인데 주민들에게 안 좋아 봐야 얼마나 안 좋겠어? 하는 순진한 생각이었을 거다.

 

이 생각은 고등학생 때도 계속되었는데 그건 구독할 수 있는 신문이 <조선일보>뿐이었기 때문이다. 반강제로 매일 아침 받아본 지면 속에서 밀양은 불순한 외부인들에게 점령된 순진한 시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글들은 밀양에 살고 있던 나마저 속아 넘어가게 했다.

 

밀양을 다시 본 건 역설적이게도 밀양을 떠난 뒤였다. 대학생이 되어 올라온 서울에서는 신문과 뉴스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 중 몇몇은 밀양이 고향이라는 내게 송전탑을 물었다. 그 시간들을 거치며 자연스레 생각이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집에 내려갔을 때 탈핵 희망버스를 보며 아버지와 말싸움하고, 종편을 보지 않겠다며 리모컨을 사수하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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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저널

 

 

송전탑에서 신공항, 그리고 ‘안녕들’까지

 

그렇게 생긴 정치에 대한 흥미는 비슷한 다른 문제들로 확장되었다. 당시 밀양은 송전탑 외에도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이슈에 직면해 있었는데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동남권 신공항이었다. 나는 집에 내려갈 때마다 ‘에어시티 밀양’ 식의 홍보를 보았다. 신공항은 부산과 경북의 싸움이 되었다가 타당성 조사 후에 무산되었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었다. 송전탑을 보다 보니 자연히 원자력발전소가 보였다. 원전이 보이니 원전이 있는 곳에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원전 생기고 나니 까치가 없어졌다”고 흘리듯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던 차에 다니는 학교에는 이런저런 대자보가 붙었다. 그 기묘한 현상을 사람들은 ‘안녕들’이라고 불렀다. 나는 생전 처음 대자보를 썼다.

 

 

당신의 밀양에 다가가길

 

지금의 나는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본다. 사람들이 중앙정치라고 부를 만한 영역에도 조금의 흥미가 있고 성평등과 젠더에 관한 글도 읽는다. 내 동네 사건에서 시작되었던 정치의 범주가 전국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나 개인의 정체성으로 축소되기도 하며 변주하고 있다.

 

이것은 긍정적인 현상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된 내 앞에는 자주 선택지가 놓였다. 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회비용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12월 5일은 내 앞에 놓인 가장 최근의 선택지다. 송전탑 투쟁 10년과 2차 민중총궐기가 겹쳐버렸다. 밀양에 가기로 했던 나는 아마도 광화문으로 향할 것이다. 밀양을 통해 정치를 보기 시작한 내가, 내 기준으로 재단한 ‘넓은’ 정치를 보기 위해 밀양을 등진다.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양은 이전까지 내게 활자로만 존재하던 정치적 사안이 사실은 무수하게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정치는 곧 일상이라는 진부한 명제가 참임을 알게 해주었다. 아주 높은 확률로 당신 곁에도 나의 밀양을 대신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강요하려는 건 아니다. 언젠가 당신의 마음이 동하는 때가 왔을 때 당신의 밀양에 다가가길 바랄 뿐이다.

 

 

글. 아레오(areoj@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