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476명이 탄 세월호가 팽목항 인근 맹골수도에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인파가 팽목항에 몰렸고 그 작은 항구는 애통과 비통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월호는 물속에 잠겨있었다. 9명의 미수습자 역시 마찬가지다. 물에 가라앉은 세월호, 9명의 미수습자. 세월호에 대한 단상이자 하나의 상징이다. 안도현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이후 600일이 지난 날이다. ‘600일이 지난 팽목항의 모습은 어떨까?’란 의문이 고함20을 팽목항으로 이끌었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12월 4일 저녁 11시 용산에서 목포행 기차를 탔다. 목포에서 진도로 가는 시외버스 1대, 팽목으로 가는 군내버스  1대를 더 탔다. 버스 대기 시간을 포함해 9시간의 여정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팽목항은 사진과 영상에서 보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닮은 듯 달랐다.  

 

그 모습을 공유하고자 카메라에 팽목항을 담아봤다. 세월호 참사 600일 이후 팽목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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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보다 덜 춥다던 일기예보와 달리 유난히 추운 팽목항이었다. 이따금 울리는 뱃고동 소리 외에는 물소리뿐이다. 여태껏 본 바다 중 가장 물살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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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등대길. 진도항 매표소 직원은 이따금 찾아오는 단체 손님 외에는 팽목항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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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등대길에 매인 풍경. 바람에 계속 흔들렸다. 녹이 슬어서인지 소리는 잘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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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에 놓인 쇠사슬.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옆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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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 늦둥이 딸이자 누군가의 짝이었던 故 이혜경 학생.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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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이 마이콜이었다는 故조성원 학생. 2014년 4월 15일, 안개로 인해 출항이 늦어지자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 연락이 故 조성원 학생의 마지막 연락일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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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문지성 학생은 부모님이 보내준 학원에 다니는 게 미안해 버스비라도 아끼려 늦은 밤 추운 거리를 걸어 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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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생을 잘 돌봐주던 故 안준혁 학생. 동생들에게 해주던 요리가 취미가 되어 요리하는 걸 좋아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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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분향소 옆, 가라앉은 세월호를 본뜬 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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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을 따라 묶인 노란 리본. 미수습자 다윤 학생의 이름이 보인다. 다윤 양의 아버지는 “세월호 사건은 돌이켜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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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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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등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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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우체통 옆 편지 모양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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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에 묶인 노란리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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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허다윤 학생을 기다린다는 노란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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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에 묶인 노란리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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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등대와 하늘 나라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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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등대 앞에 선 추모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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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벽과 기억의 등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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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픈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토해내겠습니다”

 

 

 

사진. 아레오(areoj@daum.net), 콘파냐(gomgman32@naver.com)

글. 콘파냐(gomgman32@naver.com)

[아직, 세월호] 기획. 릴리슈슈, 아레오, 압생트, 풍뎅이, 콘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