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사실 항상 그랬다. 성적 폭력, 혹은 추문의(사실 둘은 겹쳐지기도 한다.) 무대 위에 ‘올려진’ 여성들은 항상 비슷한 서사에 마주쳤다. 멀게는 11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랬고, 가깝게는 중앙대 음대 자살 사건이 그랬다.

 

밀양 사건의 피해자는 “딸자식 잘 키웠어야지” 소리를 듣다가 밀양 ‘여중생’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을 나돌았고, 캠퍼스 이지메의 피해자 A씨는 같은 과 학우들이 만든 갖은 루머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다. 그 둘 사이엔 또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존재했을까.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조선대남’ 사건은 근래 최악의 (성폭력이 개입된) 폭력 사건이자 또한 2차 가해 사건으로서 우리에게 밀양부터 중앙대까지의 악몽을 되살려 놓는다. 모두 다른 사건이 아니냐고? 다르지 않다. 밀양과 조선대는 동영상 협박, 심지어는 ‘더러운 X’ 꼬리표까지,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마주친 폭력의 맥락은 결코 다르지 않다. 주변 사람들로 인한 피해의 심화양상은 오히려 소름 끼치게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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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 최근 논란이 된 조선대 의전원 학생들의 카카오톡

 

‘조선대 사건’의 피해자는 3월, 사건 발생 당시 이미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도, 법원도, 학교도, 심지어 같은 과 학우들도 가해를 재생산할 뿐이었다. 11월, 피해자의 사연이 올라온 웹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적극적인 항의활동을 펼치기 전까지 그는 가해자와 함께 등교해야 했고, ‘연인 간 쌍방폭행’이라는 규정 위에 놓여야 했다. 그리고 저 한 장의 사진이 보여주듯, 사건이 까발려진 지금도 그는 폭력에 시달린다. 10년을 넘어서도 아무 달라진 바 없는 피해자 조리돌림의 전형이다.

 

 

조선대남의 문제? 조선대의 문제? 아니면…

 

밀양, 중앙대, 조선대를 넘어 ‘폭력의 확장’을 보여준 많은 사건의 공통점은 또 있다. 가해자와 2차 가해자들에게 ‘당연하게’ 쏟아진 대대적인 비난의 목소리. 네티즌들에 의한 신상 공개, 조리돌림 등 이른바 ‘정의구현’ 일각에선 지나치다고까지 평가하는 이 징벌의 과정이 항상 사건의 뒤를 따랐다.

 

조선대남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지금, 조선대나 광주법원에 대한 항의와 비판은 물론이고 가해자 ‘조선대남’과 사건 담당자, 판사, 학교 관계자, ‘카톡방 친구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물론 정도의 문제를 젖혀둔다면 당연한 분노다. 그러나 괴롭게도, 한 편으로는 의아한 일이다.

 

이 ‘정의로운’ 시민 사회에 끔찍한 폭력은 (그것도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사회 속에서) 왜 반복되는 걸까. 간혹 등장하는 저 악마 같은 ‘조선대남’ 개개인들 때문일까? 아니면 속속 밝혀지고 있듯 이전에도 비슷한 2차 가해를 자행한 바 있는 당 대학의 문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의대에 대한 몇몇 일반화적 비난이 조소하듯 ‘사람 우습게 보는’ 엘리트 의식의 문제인가? 그렇다기에 비슷한 ‘가해자’가 너무도 많고, 비슷한 ‘친구들’도 너무나 많다.

 

보도되는 사건뿐 아니라 둘러보면 주위에, 특히 대학 사회에 ‘가해자와 친구들’은 널려있다. 걸레라느니, 헤프다느니, 걔도 잘못이 있다느니, 가만히 있지 왜 나대느냐느니. 그 기막힌 워딩들도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건 절대 ‘특수한’ 일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다. ‘정의롭고’ ‘일반적인’ 또래들이 ‘특수하고’ ‘악마적인’ 이들에게 쏟아내는 비난이 민망하게도, 사실 이건 절대 특수하다고 볼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 내의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 그에 따른 2차 가해 등은 (물론 대학 외도 그렇지만) 이미 수없이 문제시되고 연구 되어온 주제다.

 

다소 긴 사설을 곁들여, 이번 청년연구소에선 청년층, 특히 대학(원) 내 성폭력의 원인을 그 구성원(학생/청년)들의 성 의식과 연관 지어 연구한 두 개 논문을 살펴본다. 그를 통해 혹 지나칠지 모르는 우리 세대의 위험한 모습을 되돌아본다.

 

 

의식과 폭력, 그 사이

 

최청일, 박자연이 동아대학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대학(원)생의 성의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2004)는 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대상자들의 낮은 성 지식, 성 의식 수준을 성폭력의 원인으로 문제 삼는다. 성폭력에 대한 민감한 인지와 대처를 기대하기엔 학생들의 전체적인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사 내용엔 저술 당시와의 시차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는 항목들이 많다. ‘비물리적 성폭력’에 대한 낮은 인식, 성적 의사 표현에 있어 여성들의 상대적 소극성 등은 최근까지 나타나는 성폭력 문제에도 유지되는 항목들이다. 성폭력 경험에서 보이는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인지 차이 또한 마찬가지다.

 

성폭력에 대한 태도 유형에서 ‘피해자 비난형’이 12% 가량을 차지한 통계는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고려한다 해도 참혹해 보인다. 적어도 10년 전엔, 캠퍼스의 10명 중 적어도 1명이 ‘조선대 2차 가해자들’과 같았다는 거다. 더불어 가해자와의 친분 관계로 생길 수 있는 편견을 생각하면 이 ‘친구들’의 출현 가능성은 더욱 크리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청년층 섹슈얼리티와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연구> 또한 의식과 폭력의 사이를 집었다. ‘상대 동의가 불충분한 청년층 성행위 실태’에 있어 상대의 끈질긴 요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 점은 지금에도 유의미하다. 친밀한 관계 내 성폭력 발생과 음주의 밀접한 관계나, 모텔 동행이 성행위 동의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지표(70~80%에 달하는)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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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본 논문에 첨부된 인터뷰, 아직도 흔한 의식이다.

 

조선대남 사건의 ‘동영상 협박’을 대입해 보자. 피해자가 ‘4시간 폭행’까지 가해자와의 연인관계를 지속하게끔 만든 문제의 동영상도 (놀랍게도 사랑을 명분으로 한) 끈질긴 요구와 거절에 대한 협박에 가까운 질책의 결과였다. 또한 틈만 나면 페이스북을 돌아다니는 성폭력 이슈들을 보자. ‘왜 따라 갔느냐’는 질책, ‘네가 따라간 거면’이라는 전제들이 판을 친다. 동행과 동의를 착각하는 우리 세대의 여전한 성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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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트 판 / 카톡 내용과 이후 작성자의 글을 통해 성폭력 정황이 발견됐는데, 많은 이들이 오히려 피해자 추정 여성을 비판했다.

 

물론 통계적 일반화는 위험하다. 특정 (과거) 시간에 적을 둔 통계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성폭력, 나아가 섹슈얼리티 일반에 대한 그야말로 ‘가부장 남성적’인 인식이 이성애 연인관계에 끼치는 해악은 자명해 보인다. 사회적 의식과 구체적 폭력의 사이는 언제나 끈끈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의식의 수준이 5년 10년이 지난 현재엔 ‘괜찮은’ 수준일까 하면, 글쎄, 고개를 젓게 된다. 터져 나오는 페미니즘 이슈에 더 세게 터져 나오는 반발들, 혹은 터지지도 못한 채 곪아가는 사례들. 2015년에 숱하게 보아온 광경이다. 그 광경을 아무리 보아도 괜찮지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남자친구의 성욕에 응해줄 필요가 없다”는 작은 포스트잇 속 문구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회를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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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에 관한 고함20 관련 기사 

 

반복하자면 의식과 폭력의 사이는 실로 끈끈하다. 하여 대학이라는 청년 공간에서 일어난 ‘조선대남’ 사건과 우리 세대 전체의식의 사이도 그렇다.

 

 

악마를 넘어 우리로

 

극단적이고 악마적인 사건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것이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행위의 난이도가 그렇다. 반대로 사건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기는 어렵다. 그러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난이도가 그렇다.

 

충격적인 사건을 자행한 것이 조선대남이라는 개인 차원의 악마였다면 그 악마를 잉태한 것은 우리의 가부장적 사회고, 우리 또래의 의식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서 악마는 몇 번이고 나올 것이다. 실상 그것이 조선대남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준 무겁고 불쾌한 감각의 실체다. 그 감각을 견디어 내며 우리는 조선대남을 넘어야 한다.

 

결국, 우리 속에서 또다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를 없애기 위해, 또한 그보다 미약한 수준의 또 다른 폭력들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사건에 대한 비난과 비판에 더불어 해야 할 일은 악마를 넘어 우리를 돌아보는 일이다. 조선대남을 넘어서 청년세대로. 불편하고 불쾌한 이 사건을 통해 얻어낸 지향점도 거기에 있다.

 

 

메인 이미지 :  SBS

글. 인디피그(dbsrjstl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