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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 그러니까 3포가 아니라고오오

정치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내 주변에선 찾을 수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치는 일상이며, 일상 역시 정치입니다. 우리는 몇 번을 열어도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의 민속 인형 마트료시카가, 일상을 파고들 때마다 마주치는 정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들을 정치와 연결짓는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의 에세이를 연재하려 합니다.

 

삼포세대는 먹힌다. 내 지갑 사정이 어려운 건 늘 공감을 받는 얘기다. 삼포세대엔 이러한 감각과 생애주기 곡선에 따라 20-30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결합되어 있다. 보편적인 공감대 두 개가 더해지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중을 염두에 둔 모든 곳에서 삼포를 말하게 됐다. 저널리즘부터 시작해서(고함20도 많이 썼다) 드라마 등의 문화콘텐츠, 정치권까지. 삼포세대라는 단어는 전염병처럼 퍼졌다.

 

삼포세대를 전염병이라 지칭한 건 미사여구가 아니다. 삼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위험한 단어다. 전제부터가 굉장히 불편한데, 삼포세대라는 단어가 연애, 결혼, 출산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N포세대라는 단어는 특정한 인생곡선을 그려낸다. N개를 포기했다는 말은 ‘(N개는 인생에서 필수적인 요소인데) N개를 포기했다’라고 다시 읽을 수 있다.

 

연애 얘기를 듣고 싶으면 순정만화를 보새오

 

한국에서 연애, 결혼, 출산 얘기는 굉장히 안전한 대화 주제로 취급되고 있다. 

 

“애인 있어요?”
“슬슬 결혼할 나이네요.”
“애는 언제 낳아요?”

 

정치, 종교 얘기가 첫만남은 물론 오랜 사이에서도 꺼리는 대화 주제라면 연애, 결혼, 출산 얘기는 다르다. 상대방이 연애, 결혼, 출산 상태가 아니어도, 심지어 그러한 상태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연애, 결혼, 출산 얘기가 무례한 경우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대방이 그 주제로 전혀 얘기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건 듣는 사람이 연애, 결혼, 출산 상태가 아닌 결핍에서 비롯된 ‘열폭’으로 치부되지 말하는 이가 비난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삼포세대가 이곳저곳에서 더 많이 사용될수록 그 단어가 숨기고 있는 전제는 더욱 단단해진다. 연애, 결혼, 출산 상태는 정상이고, 독신, 비혼, 무자녀 상태는 비정상이 되는 이분법이 공고해진다. 연애, 결혼, 출산은 무엇보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임에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오지라퍼들에 의해 이는 모두가 씹고 뜯고 즐기는, 공적 영역이 된다. 비연애인구는 솔로/모솔, 비혼주의자들은 눈만 높은 노처녀/노총각으로, 무자녀 부부들은 애국도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정상상태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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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왜 없는지, 결혼을 왜 안했는지, 애는 왜 안 낳는지 묻지 말아요 / ⓒ어드벤처타임

 

오지랖의 최종보스는 국가

 

삼포세대라는 전염병의 무서움은 유행어를 가장 늦게 쓰지만, 가장 티 나게 쓰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 전해졌을 때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청년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0월 30일 교섭단체 연설 중 발언

 

만사결통 : 광역자치단체 인구보건복지협회 공동으로 미혼남녀 만남의 기회 제공 사업(가칭) 프로그램 추진 
-보건복지부, 10월 19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중

 

그리고 엊그제는…

 

“만혼화 현상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소득이 없고 고용이 불안해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중략)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삶에 쫓겨가는 일상이 반복될 것”

-박근혜 대통령, 12월 10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심의를 위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중

 

삼포세대라는 라벨의 끔찍함은 정부와 여당이 삼포세대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김무성 의원은 삼포세대 구출작전이라는 연막으로 ‘그들의’ 노동법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더 괴랄하게 만사가 결혼으로 통한다, 줄여서 ‘만사결통’이라는 아재네이밍 센스를 보여주며 다 큰 국민들의 결혼을 중매하려 하고 있다. 그 사업이 포함된 저출산 정책을 심의하는 자리에서는 ‘실업’과 ‘젊은이들의 사랑’이 엮이는 엄청난 인과관계를 보여줬다. 이를 보자니 실업, 저출산 정책(난임 부부 지원, 육아 제도 선진화 등)을 넘어 이제 국민의 삶의 중대한 선택에도 관여하는, 비정상적으로 매우 거대한 국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간섭 속에는 정책결정자들이 국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무려 중앙여성위원회에서 참석한 김무성 의원의 발언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애기를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하지 않나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1월 3일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회 참석 중 

 

농담이든 아니었든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국회 과반인 여당대표가 출산 여부와 참정권을 묶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끔찍한 일이 아닐까. 그들에게 국민들은 오로지 ‘국민이라는 집합으로 구성된다. 한국 국적의 우리들은, 개개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고회로 속에 개개인의 삶따윈 없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소환되는 인적자본으로 사용된다. 다른 이가 만들어가는 국가를 위해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할 것을 요구받고 그 행위를 통해 만이 애국자(시민)으로 인정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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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채널에이

 

청년들이 삼포세대를 강조했던 최초의 이유는 청년의 처지를 직관적이고 강하게 알리기 위한 장치였다(연애, 결혼, 출산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므로). 하지만 ‘삼포세대’는 점점 퍼져나가면서 배제의 논리가 공고해지고 있으며, 국민 개개인의 삶따위엔 그닥 관심이 없는 정책결정자들의 그럴듯한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지금이 더 이상 삼포세대라는 라벨을 안쓰거나 최대한 조심해서 쓰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개념어가 그렇듯 단어가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할 수는 없지만, 삼포세대는 “나는 동의해” 혹은 “나는 동의하지 않아”로 단순히 공감/공감하지 않음에서 끝나지 않는 역효과가 굉장히 강해졌다.

 

곧 있으면 총선이다. 후보들은 정파와 관계없이 다들 배려심 깊은 사람들이 되니 분명 청년을 염두한 삼포세대 발언들이 쏟아질 거라 예상해본다. 모두들 청년문제에 관심이 덜 했을 땐 삼포세대가 말하며 삼포가 된 청년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반가웠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수많은 선거홍보 발언 속에서 삼포세대라는 네이밍 아래 배제되고 강등당한 존재들을 꺼내 올려줄 발언을 애타게 찾고 있다. ‘국민’의 삶이 아닌 국민인 ‘나와 너’의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지지, 지원해주는 후보나 정당 말이다. 

 

 

대표이미지. 이주엽 – 너나잘해 ⓒ실버아이티비 ‘ 전국TOP트로트’

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

릴리슈슈

릴리슈슈는 이와이 슌지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에서 따왔습니다. 에테르가 풍기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이팀 저팀 돌아다니고만 있습니다. 아 그리고 여러분 국카스텐 들으세요.

2 Comments
  1. ㄱ1

    2015년 12월 14일 11:15

    삶의 다양성과 별개로 국가라는 공동체는 국민으로부터 시작한다. 국가 공동체를 몸이라 생각한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건 몸에 도는 피, 혈액이 감소한다는 거다. 공동체는 구성원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그렇담 국가라는 공동체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유지, 존속을 위해 구성원이 감소하는 걸 막으려고 하는 게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 2016년 3월 7일 17:12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건 목적-수단 전치같고요. 공동체가 구성원감소를 막으려는게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정당성이 있는건 아니고요(자연주의의 오류) 또, 지금 말씀하신 아이디어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나오는게 국가주의 전체주의 쇼비니즘 등등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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