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내 주변에선 찾을 수 없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치는 일상이며, 일상 역시 정치입니다. 우리는 몇 번을 열어도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의 민속 인형 마트료시카가, 일상을 파고들 때마다 마주치는 정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단상들을 정치와 연결짓는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의 에세이를 연재하려 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를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제목이 ‘의경 가지 마라’인데, 나는 의경 출신이다. “너는 갔으면서 왜 다른 사람들은 가지 말라고 하느냐?”는 반문이 들어 올 수 있다. 또한,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친구들의 뒤통수를 후리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와 같은 상황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의경에 복무하던 당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스트레스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의경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장점들만을 떠올렸던 나의 순진함은 내게 큰  마음의 상처를 줬다. 집회 참가자를 향한 혐오를 키우는 구조 아래서 그걸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힘겨웠다. 제대 이후로도 그 당시 어지럽혀진 가치관을 정리해나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과거로 돌아가 의경 지원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계속 들었다.

 

집회·시위를 혐오하게 하는 의경부대

 

2011년 6월 22일, 난 소위 ‘폭력시위’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내가 속한 부대는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사분규 현장에 투입되었다. 상황은 격렬했다. 쇠파이프를 든 노조와 방패를 든 의경부대는 직전에 대치해있었다. 충돌은 어느 순간 일어났다. 노조의 쇠파이프에 주위 동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갔고, 내가 속한 부대의 대오는 곧 무너졌다. 당시 노조와 경찰이 충돌하여 약 150여 명가량의 부상자가 속출했는데, 그 부상자의 대다수는 같은 소대, 중대 동료들이었다. 나 역시도 노조원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오른쪽 팔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900527-1ⓒ SBS

 

그땐 내가 부대에 전입한 지 약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처음 겪는 격한 시위에 많이 당황했다. 눈에 보이는 격렬한 상황 말고도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 것은 또 있었다. 활동하고 계시는 노조원분들이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이기에 성숙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리적 충돌을 겪고 난 후 든 생각은 “어른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어떻게 아들뻘인 의경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때릴 수 있지?”였다.

 

그 이후 경찰서 형사과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피해보상까지 받으니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틈틈이 그 현장과 관련된 보도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그제야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사측의 직장폐쇄와 용역을 동원한 노조파괴와 같은 부당한 행위는 계속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해서 그들을 방조하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2일 당일 새벽 무장한 용역들이 무방비상태의 조합원 23명을 집단폭행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 되려, 폭력을 저지른 용역들을 보호했고, 문제 제기하는 조합원들을 연행했다. 노조가 경찰에 대한 적개심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900527-2

쇠파이프, 각목, 방패, 소방호스 등으로 무장한 채 조합원들과 대치 중인 용역 / ⓒ 금속노조

 

하지만 이런 내막을 안 건 나 혼자뿐이었다. 부대 밖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유성기업 파업을 ‘연봉 7천만 원 받는 근로자들의 불법파업’이라며 엄정한 대처를 밝히고 나섰다. 언론은 그걸 그대로 받아쓰면서 파업을 비판했고 공권력 투입을 부추기고 있었다. 부대 내에선 언론을 제한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처럼 직접 찾아보지 않는다면 사건의 내막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의경 부대에서는 투입되는 현장의 정보를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왜 집회가 일어났는지, 어떤 과정에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아 의경들은 노조의 입장을 이해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다. 노조가 왜 물리력을 사용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으니 그저 ‘폭력적’이라는 이미지만 각인되어 갔다. 그리고 그건 노조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900527-3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봉 7천만 원’이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유성기업 파업의 부정적인 시선을 키우는 데 앞장섰다 / ⓒKBS라디오

 

유성기업 파업 이후로 부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집회참가자를 혐오하는 쪽으로 이어졌다. 집회에 동원될수록 부대원들이 내뿜는 혐오감은 커져만 갔다. ‘집회참가자들은 불법폭력시위를 일삼는 자’라는 편견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었다. 여기에 의경부대의 구조적 문제가 엮였다. 의경 부대는 집회·시위를 불법 또는 진압 대상으로 상정하는 듯했다. 집회를 어떤 식으로 제압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만 가르쳤다. 시민들의 합법적인 집회를 어떤 식으로 관리 및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교육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인권과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등의 국민의 기본권 교육 역시 있을 리 없었다. 즉, 의경 부대는 집회참가자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도록 그들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쪽으로만 운영되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제대한 후 몇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계속 남은 듯하다.

 

의경 복무는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망각하게 한다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부터 시작된 연이은 대규모 집회 이후,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과거 옛 의경 동료들의 집회참가자들을 향한 혐오 섞인 글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표현은 정부를 옹호한다기보다는 집회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다. 물리력이 동원된 시위는 불법이고, 그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지켜보며 의경 복무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집회가 열릴 때마다 보수언론에서 패턴처럼 말하는 의경 인권 차원이 아니다. 의경 복무는 집회에 대한 혐오를 강요하고, 헌법상의 권리인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청년들이 의경에 지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의경 제도가 폐지되었으면 한다. 그 성립에서부터 의경 제도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의경 제도가 의경 개개인에게 행하는 인권 침해문제만으로 없어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의경은 복무 기간 21개월이 지나면 시민으로 되돌아간다. 더는 많은 청년이 피해당하지 않도록, 본의 아니게 젊음을 불태우지 않았으면 한다.

 

 

대표이미지.  군인권센터 “의경 집회 동원은 위헌” ⓒMBC

글. 아나오란(wodbst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