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다시 뭍 위에 섰다
 
고함20의 기획 [뭍위에서]는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시작된 ‘세월호 감정’들을 타임라인 식으로 기록한 인터뷰 기획이었다. 다들 세월호 보도에 지쳤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쪽으로 기획의 윤곽을 잡아나갔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을 섭외하려 했다. 가장 수가 많을 것 같은 집단을 골라서 그를 통해 가장 많은 공감을 얻길 바랐다. 기억이 빛을 바라는 시점에서 우린 인터뷰이들과 독자에게 “당신은 2014년 4월 16일에 무엇을 했나요?”를 물어 다시 기억이 빛을 발하길 의도했다. 그후 찾아온 겨울, 고함20은 다시 한 번 세월호 사건에 대해 기록하기로 했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물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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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광화문 광장
 
 
1. 해진 후 휴대폰 조명 하나
 
이윤하(가명) 씨를 처음 만난 건 12월의 안산에서였다. 그는 휴대폰 플래쉬에 의지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단원고 교실을 지키기 위한 서명입니다. 동참해주세요.” [고함20]은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인 12월 9일, 안산의 한 카페에서 윤하 씨를 만났다. 
 
현재 단원고에는 희생자 학생과 선생님의 흔적이 보존되어있다. 그곳은 4월 16일 이후로 삶의 시간이 멈춘 책상 주인들의 시간과 그를 찾아온 사람들의 시간대가 공존하고 있다. “이게 당시 가장 급한 일이었기 때문이 이 이슈를 골라 서명운동을 한 거에요. 교육청이 1월 11일 이후에 철거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서명은 공식적인 압력 수단이라기보단 읍소에 가깝지만 저희는 최소한의 활동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현재 경기도 교육청은 교실 존치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참고기사(링크)
  
그는 현재 안산에 있는 한 대학에서 세월호를 공부하는 모임에 속해있다. 모임은 윤하씨가 온·오프라인 대자보를 써서 만들어졌고 현재 다섯 명 정도의 인원이 속해있다. 모임의 첫 활동은 책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을 읽으며 세월호가 어떤 사건인지를 알고, 서명운동이란 방법으로 그 사건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었다. 
 
“교실철거 이슈가 시급하기도 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망각은 자연스러우니 망각하지 않으려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사회적인 노력의 기본은 흔적을 남기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여태까지 불길한 일이 일어나면 없었던 일처럼 만들었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생각해보죠. 흔적이 아무것도 없어요.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고 반성하는 것. 그래야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2. 세 번의 계기와 눈물들 
 
“원래부터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 아니었어요. 신문 보는 걸 좋아했지만, 제 이름을 내걸고 사람을 모은 적은 처음이에요.” 
 
대학 4학년인 윤하 씨가 모임을 만든 건 올해 늦가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4·16 기억저장소 사무국장님을 만났어요. 그분이 우리 학교에 원서를 넣은 단원고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아이들이 학교에 붙어 입학했을 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면 무슨 절망감을 느낄지 상상할 수 없다고 걱정하셨어요. 우리 학교가 안산에 있다지만 세월호 관련 활동을 많이 하는 학교가 아니에요. 지역사회에 큰 슬픔이 생겼는데 왜 연대하지 못하느냐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사건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그는 한국에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확 와 닿은 건 아니에요. 외국에 있으니 시차도 있고 분위기도 달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어요. 그저 무력할 뿐이었죠. 제가 이렇게 활동하게 된 몇 가지 계기들이 있었어요.”
 
“그런 장면을 기사에서 봤어요.* 유가족 어머님이 전경 발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또 누가 우리가 죄인이냐고 화를 냈어요. 그러자 그분이 자식 잃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기사를 수업 중에 보다가 나가서 펑펑 울었어요. 국가가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에요. 그런데 가장 위로 받아야하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망자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적다’라는 발언을 하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 앞에서 면담을 요구했고, 그 요구가 거절되자 다시 청와대 앞으로 가서 항의한 사건이다. 참고기사(링크)
  
“다른 계기는 일간 베스트의 폭식 퍼포먼스였어요. 앞선 계기는 국가가 유가족들을 조롱한 경우였다면 이번엔 같은 시민들이 또 다른 시민에게 치욕을 주는 상황이었죠. 또 이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한국에 없어서, 분위기를 몰라서 이해를 못 하는 걸까?’ 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요. 무력을 넘어서 외로워졌죠. 가장 끔찍한 사건을 앞에 두고 서로가 공감할 수 없는 상황이요.”
 
“마지막은 1주기 홍보차 도보행진 때였어요. 안산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걷고 마지막으로 유가족들과 일반 참여자들이 포옹을 하는 행사 떄였어요. 제 앞엔 유가족인 여자 중학생이 서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이랑 눈물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고 뒤에 순서에도 계속 울고 있었는데 어느 유가족 아버님이 찾아와 저를 안고 가셨어요. ‘울지마라. 함께하면 되지 않나.’ 이건 또 무슨 느낌이지 싶었죠. 세월호는 그런 식으로 제게 새로운 감각들을 던져주며 제 인생과 얽혀나갔어요.”
 
 
3. ‘용기 있다’라는 이름의 안전장치
  
생각과 행동 사이는 무척 멀다. 그 거리 때문에 다수는 행동하는 소수를 응원하는 관조자로 남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윤하 씨는 복학한 지난봄부터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고 그를 위해 행동했다. 1주기엔 캠퍼스에서 세월호 1주기 기념행사를 기획하기 위해 대자보를 썼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10대, 20대의 기고문을 모아 100부 정도를 출판했다. 이번 학기에 만든 세월호 공부 모임에서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책을 읽고 팽목항, 단원고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유가족들과도 연대하며 다양한 행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 용기 있다, 대단하다고 말했다. 무슨 힘으로 세월호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예상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저는 그런 말보다 ‘뭐 도와줄 거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걸요. 만약 우리 학교에 더 열심히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도 뒤에서 응원하는 입장이었을 거에요(웃음). 하도 없으니까 제가 하는 거뿐이죠.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인터뷰도 실명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근데 저도 평범한, 취업을 앞에 둔 사람이니 그런 건 부담스럽더라고요. 종종 내 일이나 잘하자는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가 외면한 문제들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그걸 또 비겁하게 외면한 채로 살아가면 뭘 얻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절 붙잡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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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광화문 광장
 
 
0. 우리는 다시 뭍 위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자주 잊는다. 많은 사람이 망각을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깊숙한 속으로 스며드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어떤 자극이 발생하면 우리는 언제든 그와 관련된 사건을 떠올릴 능력이 있다. 세월호 사건에 반응했던 우리는 이젠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지만, 우린 언제든 계기만 주어진다면 그 사건에 대해 떠올릴 것이다. 
 
소설가 황정은은 그 ‘계기’가 우리의 삶에 알아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네 탓이라고 누군가 노려볼 때 그게 왜 내 탓이냐고 항변하고 싶은데 생각하고 보면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삶. 멀쩡하게 사는 것 같다가도 불규칙한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 같은 그런 심정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
 
과거는 잊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우린 같은 층위에서 무한히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가졌던 감정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한 채로 숨어있을 뿐이다. 다른 층위로 이동하고 싶다면, 우린 그 감정들을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매듭짓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를 위해 다시, 뭍 위로 가야 할 시간이다. 
 
 
 *황정은. ‘작가노트’.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인터뷰. 글/ 릴리슈슈(kanjiwon@gmail.com)
 
*제목은 영화 ‘암살’에서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를 달리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