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 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결혼한 사람들이 ‘갈라서는’것을 꼭 나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사회는 합치된 형태의 부부상을 올바른 것으로 교육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혼은 최후의, 혹은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가정폭력 피해자들 중에는 이혼절차에 포함된 상호 상담기간 등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지 않는 것이 법률상의 이혼서류보다 더 간절한 상태인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 이들에게 법과 행정이 제시하는 화해는 억지에 가까울 것이다. 

 

EBS의 [달라졌어요]는 부부싸움의 바람직한 갈등해소 과정을 제시한다. 매회마다 ‘문제’를 겪고 있는 부부의 사연을 받아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전문가의 상담을 받은 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부부의 행동은 놀랄 만큼 같은 무게로 다뤄진다. 배우자의 외도, 여성을 둘러싼 가부장제의 공격 -시댁의 인격모독이나 비혼 상태의 임신의 취약함- 등은 이러저러한 사연 중 하나로 지나간다. 배우자가 폭력을 행사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이런 문제 앞에서 가정을 지키고 가꿔나가는 여성의 역할은 공고해진다. 상담으로 갈등을 해소한 후, 여성은 시댁에 방문해 자신에게 모진 말을 했던 어른들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거나,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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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달라졌어요] 방송화면

 

 

“그래도 엄마라면…”, “때리긴 뭘 때려”

 

[달라졌어요]에는 사회가 규정하는 결혼적령기 여성, 가정이 있는 기혼여성을 둘러싼 구조적, 사회인식상의 문제도 그대로 드러나있다. 비혼 상태로 임신한 여성이 친가와 애인 모두에게 버림받고 유산을 하거나, 그런 상처를 주변사람들에게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스스로가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래도 엄마라면 아이를 지켰어야지.” 프로그램을 통해 화해한 현재의 남편이 연극 상담에서 뱉은 말이다. 시청자들 중에는 이런 섣부른 조언에 공감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은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도 지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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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달라졌어요] 방송화면

 

상담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의 사회생활까지 지적 받는다. 남편의 수입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맞벌이 여성으로 사는 이에게, 전문가는 “가정으로 에너지를 돌리라”고 조언하고, 남편과 아들은 이것을 여성의 “돈 욕심”으로 폄하한다. 가정주부, 아내의 모습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마치 지나치게 일한 것이 여성의 잘못처럼 비춰진다. 한 사람의 월급으로 가정을 건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말하지 않고, 지혜롭게 살림하지 않는 여성이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다. 사연 속 남편은 여성의 가사노동을 완벽히 해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빨래와 청소를 남자가 해서 ‘모양이 빠진다’는, 어디서 많이 본 투정이다. 여성이 출근 전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은 또 ‘당연한’것이 된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성은 늦은 시간 퇴근해, 청소와 요리 등의 가사노동을 완벽히 해내야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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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달라졌어요] 방송화면

 

전통적인 여성 역할 강조 외에도 우려스러운 점은 남편의 외도나 가정폭력 등 과거 행적이 상담치료를 통해 마무리되는 것으로 비춰지는 방송 형식이다. 여성이 가사노동에 무관심해져 집안이 엉망이 되고,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한 사례가 각각 ‘평생 남편 성에 안 차는 아내’, ‘이혼, 과연 누구의 탓일까?’같은 제목을 달고 방영된다. 사례 속의 남편들은 모두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했지만, 이것은 에피소드 제목이나 프로그램 초반부 등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가정폭력 발생 시 취해야 할 신고절차나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서도 방송은 말하지 않는다. ‘동등한 사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가정폭력과 가정폭력이 아닌 행동이 동일선상에 놓인다는 것은 위험하다.

 

방송이 마지막으로 다다를 때, 여성들은 “남편의 마음을 몰라준 것 같다 미안하다”고 말한다. 결국 이 모든 상담과 방송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된다. 가정폭력의 위험에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보여주자 않은채로 말이다. “때리긴 뭘 때려”라며 자신의 폭행을 부정하다, 결국 “큰 소리 내서 때렸다”고 윽박지른 남성은 상담 초기 ‘기억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하는 사과를 거부했다. 상담장소와 전문가가 갖는 권위가 없었다면, 과연 이 부부들 중 누가 먼저 사과했을지 알 수 없다. 상담의 효과가 일시적인지 아닌지를 떠나, 폭행과 폭언의 가정폭력 현장에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피해자의 존엄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 역시 ‘같이 살아온 세월 속에 있었던 그저 그런 일’로 생각하기엔 가정폭력의 그림자는 너무 무겁다.

 

 

글. 블루프린트(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