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 합니다. 공부합시다!

 

인문학을 하고 싶은 학생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었고, 지방대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했다. 그리고 석사, 박사학위를 땄다. 그렇게 ‘지방대 시간강사’가 되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그 청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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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문제는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다. 몇 년 전에는 처우개선 요구와 함께 한 시간강사가 자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발의된 ‘강사법*’은 다가오는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폐지 혹은 재유예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시간강사 간의 견해 차도 존재한다. 일부 강사들은 ‘대학이 비용 증가를 이유로 오히려 강사 수를 줄일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다른 강사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강사법: 시간강사에게 교원자격·임용 기간·4대 보험 보장 등을 골자로 한 법안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그런 논란에서는 한 발 비껴나 있다. 대신 필자의 성장 과정과 대학원 입문기, 대학원에서 겪은 일들을 담담히 술회한다. 그 과정은 고되고, 필자를 좌절케 하는 순간들이었다. 더해서 시간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필자는 학생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한다.

 

글을 읽으며 독자가 만나는 것은 ‘분노’와 ‘좌절’이다. 필자는 감정 표현을 최대한 억누르고 절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자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대학과 학계의 부조리함, 그에 따른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 ‘보험이 되지 않아 맥도날드에서 일해야 하는 교수님’, 수년간 ‘잡일 돕는 아이’로 통칭되며 인권도 없이 일한 필자에게 ‘자네는 그래도 살만했지?’라고 물어보는 학계. ‘1,600원의 학자금 대출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해 ‘꾸마우더리’에게 후원하는 금액을 끊어야 했던 30이 넘은 연구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가장 절망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책에는 담겨 있지 않은 그 결말 때문이다. 책이 나간 이후, ‘309동 1201호’라는 이름을 쓰는 저자는 선배들에게 ‘그것을 네가 썼느냐’란 질문과 ‘왜 이 공간을 그렇게 묘사했느냐’라는 힐난, 더해서 ‘교수들에게 사과해라’는 충고까지 받았다. 결국 저자는 강의실을 떠났고, ‘대학을 그만둡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물론 그것이 동료에 대한 실망 때문만은 아니며 대학 밖의 세계를 알았기에 ‘대학이라는 세계’를 깨뜨리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남기는 마지막 말은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으며, ‘어디에나 <지방시>는 있다’라는 지적이다. 309동 1201호라는 필명 역시 ‘한 개인’이 아니라 ‘시간강사 모두’와 ‘청춘 모두’를 의미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두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이처럼 아팠음을 모두 기억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기를’이란 메시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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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범욱

 

 우리는 모두 ‘지방시’다

 

저자는 연구실에서 자신의 아픈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 시대의 많은 청년은 각자의 위치에서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공간이 저자와 같은 대학교이기도 하고, 직장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 장소이기도 하며, 집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 모두 ‘지방시’다. 그 선언은 ‘지방시’가 개인의 경험에 국한된 특정한 이야기가 아님을 말하며, ‘지방시’가 겪었던 부조리함을 다른 청년 누군가가 겪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네는 그래도 살 만했지?’라는 질문에 “그것이 나를 지탱해 온 어느 한 부분을 사정없이 무너뜨렸다. 그다지, 살 만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정말로요.”라고 속으로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의 연구실 생활 끄트머리를 찾아온 선배들에게 “많이 힘들었지, 우리도 많이 힘들었어, 고생 많았다.”라는 말을 듣는 기적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유의미한 것은, 그것은 곧 ‘우리’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지방시는 있다’고 이야기하며 청년들을 동일시하지만,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삶을 다양화한다. ‘나는 이곳에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라는 믿음을 전제한, ‘어디에나 지방시는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다소 역설적일 수 있지만,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이 그 역설이다.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며 ‘많이 힘들었지, 우리도 힘들었다. 고생 많았다’라는 존중을 기대하는 청년, 그 청년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각기 다르게 존재하고 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자격론에 휘말려야 했다. 저자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이었다면, 더 인정받는 연구원이었다면 그렇게 끔찍한 삶을 겪었을 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가 이야기하는 지점은 그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 누구도 아파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309동 1201호가 신자유주의화 된 대학에 의해 무너진 것과 달리, 다른 누군가는 그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결국 309동 1201호는 무너졌고 대학 안에서의 시간과 싸움을 마무리했다. 그 지점에 대한 회의는 있을 수 있다. 다만 309동 1201호가 말하는 것은 ‘모든 청춘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이다.

 

저자는 대학을 그만두며 마지막에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라는 말을 사용하며 그 사실을 알았기에 행복하다고 서술한다. 2015년,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지방시이며, 309동 1201호에서 거주하고 있다. 동시에 309동 1201호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누구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아파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지방시>의, 그리고 청년의 목소리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