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세는 백합> 각 편의 제목은 모두 ‘~일 리가 없잖아’로 돼 있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의 제목은 ‘이게 시작일 리가 없잖아’, 1화의 제목은 ‘첫 화부터 살인일 리가 없잖아’다.

** 이 글에는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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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화면 갈무리. 말 그대로 백합 천지다 ⓒ 딩고스튜디오

 

그렇다. ‘백합’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백합이 맞다. ‘그 백합’이 무엇인지 모를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백합이란 서브컬처에서 여성 동성애를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단순히 동성애만을 지칭하진 않으며 사랑에 가까운 우정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브로맨스(bromance)’의 여성 버전쯤이라고 할까.

 

<대세는 백합>은 제목이 보여주듯 백합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웹드라마다. 당연히 두 주인공은 여성이며,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성이다. 남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꾸준히 나오는 남성은 없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이름은 제갈부치인데 ‘부치’란 여성 동성애에서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말 그대로 백합 취향의 시청자를 저격하는 드라마인 것이다. 직접적인 동성애 코드 외에 뚜렷한 줄거리가 없고 다양한 풍자가 포함된 것도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전개가 안 되는데 드라마일 리가 없잖아

 

전체적인 이야기부터 하자. <대세는 백합>에는 이렇다 할 전개가 없다. 기본적인 설정만 있고 드라마는 그 설정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는다. 주인공 ‘경주’는 20대 아이돌 연습생이다. 드라마는, 경주가 구 남친이자 인기 아이돌인 ‘구남’이 가져간 자기 여권을 찾으려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여권이 구남의 썸녀 ‘선우은숙’의 집에 있다는 말에 경주는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경주는 그곳에서 선우은숙의 동거녀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세랑’을 만난다. 여기까지가 전체 8화 중 1화의 전개이자 거의 모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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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화면 갈무리. 세랑은 초면인 경주에게 생일선물을 내놓으라며 갑자기 키스한다 ⓒ 딩고 스튜디오

 

경주와 세랑이 만난 그 날, 둘은 키스를 한다. 이후 드라마의 배경은 경주가 아르바이트하는 와인바(제갈부치는 이 와인바의 사장이다)로 바뀐다. 하지만 거기서도 이야기나 인물 간 관계는 진전이 거의 없다. 세랑이 와인바 손님들과 이야기하고 세랑과 제갈부치, 제갈부치와 선우은숙이 키스하는 등의 장면만이 이어진다. 이런 전개는 마지막까지 계속돼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박집사’는 8화에나 겨우 등장한다. 주인공 커플인 경주와 세랑이 이어진다거나 하는 명확한 결말도 없이 드라마는 끝난다.

 

동성애가 이렇게 본격적일 리가 없잖아

 

줄거리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당연히 백합, 동성애다. 백합은 드라마의 전개만큼이나 뜬금없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선우은숙의 집에 들어간 경주는 볼일이 급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욕조 속의 세랑과 처음 대면하는데, 세랑은 밑도 끝도 없이 경주를 욕조로 끌어당겨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욕조에서 나온 이들은 얘기를 나누다, 역시나 밑도 끝도 없이 키스한다.

 

드라마에서 동성애 코드가 사용된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촘촘히 짜인 전개 없이 직접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은 <대세는 백합>만의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지금까지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가 동성 간의 사랑이 싹트는 과정 등을 섬세하게 그린 다음 키스신 등을 보여줬다면, <대세는 백합>은 그러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핵심적인 장면만을 즐길 수 있도록 모아놓은 느낌이다. 댓글에서도 “제대로 된 백합이라서 감동적”이라는 식의 반응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지나간 게 풍자일 리가 없잖아

 

<대세는 백합>에서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동성애만이 아니다. 다양한 풍자적 요소가 ‘방금 지나간 게 풍자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고 끊임없게 들어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봤던 풍자를 기대해선 안 된다. <대세는 백합>의 풍자는 상상 속에서 할머니가 된 세랑이 박정희 동상과 새마을운동 깃발을 배경으로 경주를 혼내면서 “박 대통령님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세우셨는데!”라고 말하는 식이다. ‘갑자기 저 얘기가 왜 나와?’하고 의문을 가질 때쯤엔 이미 상상은 끝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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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화면 갈무리. 등장인물의 뒤로 박정희 동상과 새마을운동 깃발이 보인다 ⓒ 딩고 스튜디오

 

풍자는 정치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랑은 전직 아이돌로 설정돼 있는데, 현재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 것은 그녀가 데뷔 전 ‘아이돌 노조’를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제갈부치는 그런 세랑을 “아이돌계의 송곳”이라 평한다. 이 대사가 나오는 에피소드의 제목은 ‘세랑이 종북일 리가 없잖아’다.

 

<대세는 백합>은 이 모든 것들 – 동성애, 갖가지 풍자, 8명의 등장인물 – 을 40분 안에 다 뱉어낸다. 이야기는 마무리되기는커녕 진행되지도 않은 느낌이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요소들을 하나로 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에 접근하는 방법은 하나다. 직접 보는 것. 물론 본다고 해서 모두 이해할 거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글. 아레오(areoj@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