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황성신문에 게재된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패러디한 것이다.

 

 

수일야방성대곡(水日也放聲大哭).

 

지난 12월 28일, 왜국 아베 총리와 대한 박근혜 정부가 회담했을 때에 그를 잘 아는 우리 국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왜국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끼긴 한다, 유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법적책임 없다’를 자처하던 터라, 오늘 회담함이 필경은 우리나라의 정부와 담합하여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완벽히 떨쳐낼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했다. 국민들은 독도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경계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다마는, 이 회담은 진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내었도다. 

 

오천만 꿈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5개 소망조차 어찌하여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1990년 10월 17일, 기자회견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에 다섯 가지만을 요구했노라. 그러나 12.28 합의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동포의, 소녀상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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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영.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비추어 본 2015년 한일외교장관 회담의 문제”에서 발췌 

 

이 합의는 본래 피해자가 주체가 되어야 함인 즉, 그렇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본뜻이 합의문 어디에 있었던가? 우리는 오로지 제 잘못에 대한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바랐을 뿐인지라. 그런데 피해자의 동의 없는 합의를 푼돈으로 무마하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사항이니 더 이상 입을 열지 말라 한다. 왜 국제사회에서 우리 한국의 위치를 감히 왜국이 규정한단 말인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통령 마마의 성의가 강경하여, 조약인지 협의인지 합의인지 그 성격도 분명치 않은 이 무언가를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회담이 성립될 것인 줄 아베 총리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슬프도다. 이야말로 2015년 을미사변 이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친일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는 것인지, 왜국에 충성하여 ‘역대 가장 잘 된 합의’랍시며 나라를 팔아먹고 국민을 저버리는 배신자가 되기를 감수했던 것일까?

 

아, 반만년의 강토와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5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성 노예가 됨을 겨우 10억 엔에 인정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교부와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왜교차관인지 외교차관인지 임성남은 “연휴 기간 중 협상 진전이 급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 라는 말을 변명이라고 늘어놓는단 말이냐. 명색이 대통령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눈과 귀를 막고 남은 임기 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47864-2ⓒ KBS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처럼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말하지도 못했다. 2016년 1월 6일, 소한(小寒)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제 1212차 수요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처럼 할머니들의 얘기를 듣지도 않았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아이들도 협의무효 팻말을 높이 들고, 청년들은 노숙으로 밤낮없이 소녀상을 지키는 바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가 이르길, “정부는 시민단체가 25년 동안 끌어온 이 운동을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박근혜 정부가 이뤄냈다고 말했다.” “굴욕적인 한일협상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도 박탈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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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함20

 

그 무슨 면목으로 돌아가신 위안부 최초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5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아! 참담한지고. 우리 5천만 동포여, 서러운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5천 년 국민정신이 1905년에 홀연 망하고 2015년에 또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비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고함20신문] (2016. 1. 6. 제 1212차 수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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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이등(伊藤) 후작[이토 히로부미]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게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 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 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여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 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전문) [황성신문] 2101호 (1905.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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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설(yaliyalaj@gmail.com)

사진. 참새(gooook@naver.com)

기획.압생트(9fifty@naver.com), 달래(sunmin5320@naver.com), 이설(yaliyala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