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감기 전에 한을 풀어 달라.”

국내에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김학순 씨가 1991년 기자회견 당시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6년 후, 김학순 씨는 세상을 떠났고 “일본 정부가 정신대에 대한 공식 사과를 피해가기 위해 마련한 국민기금은 절대로 받으면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죽음을 앞두고 강조한 말에는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법적 배상금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눈을 감는 그 순간 그는 살아생전의 한을 털어낼 수 있었을까.

 

지난 28일, 한일 외교장관이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외교장관회담 후 구두로 발표된 합의문은 일본 총리가 사죄를 표명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 10억 엔을 투입하여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총리의 사과, 100억 예산, 피해자를 위한 재단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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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소리(VOA)

 

 한일 합의문에 없는 것

 

그러나 이번 합의문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배상이 교묘하게 배제되어 있다. 실제로 합의문 발표 직후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재단 설립을 두고 “배상은 아니다”고 못 박으며,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치유하기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상과 배상은 엄연히 다르다. ‘보상’은 피해의 원인이 위법행위는 아니지만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 관한 것이고, ‘배상’은 피해의 원인이 위법행위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금이 아닌 단순 보상금을 지원하는 일본 정부는 위안소 운영과 그곳에서의 만행이 위법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법적 책임을 회피한다고 볼 수 있다. 법적 책임을 인정했는가의 여부는 향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때 관건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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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에 있는 만삭의 임산부가 ‘위안부’ 생존자 박영심씨다. 그는 위안소 생활로 자궁을 드러냈고, 신경쇠약을 앓다가 2006년에 별세했다.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100억을 들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두고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껏 ‘위안부’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높인 건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분명하게 법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상을 전제하지 않은 총리의 공식 사과는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완전히 배제됐다. 과연 피해 당사자들과의 합의 없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이 가능한가? 미리 알려주고 함께 상의해야 하지 않았느냐는 피해자들의 비판에 대해, “공교롭게 크리스마스 전날 일본이 갑자기 움직이고, 연휴가 사흘이나 돼서 따로 뵙고 의논을 못 했다”는 정부의 변명은 궁색해 보인다. 당사자에게 언급조차 않고 발표한 합의문이 정말로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한다고 믿는 이가 있을까.

 

12.28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일 수 없다

 

        “이번 발표를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12.28 합의에서 양국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최종적’과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번 합의로 ‘위안부’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합의에 의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재단 설립을 위한 예산을 제공해줄 시 더는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입을 다물 것이다. 100억과 ‘위안부’ 피해역사를 맞바꾼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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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터넷언론인협동조합

 

그런데 정말 이번 합의문으로 인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게 타결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비슷한 전례가 있다. 박정희 정권 때 체결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다.

 

제2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위 조항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오랜 기간 ‘위안부’를 비롯하여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이러한 일본의 전후 배상 행태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쇄도했다. 그러던 중 2012년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청구권협정과 관계없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청구권협정은 국가 간의 정치적 협의일 뿐,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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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종군 기자 프랭크 맨워랜이 촬영한 사진.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일본군에 의해 집단으로 총살된 채 버려진 위안부 30명의 시신을 중국 군인들이 매장하고 있다. 사진 뒷면에 이들이 조선 여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피해자의 배상청구권과 전쟁범죄의 공소시효

 

전쟁범죄와 개인의 배상청구권에 대해 이미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경북대 법학연구원 장은정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 협력 방안에 관한 소고(201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현대 국제법에서는 국제법의 주체를 개인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개인은 국제법의 수범자로서 국제법의 주체이며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인권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천부인권으로 인정되고 보장되는 것이다. 노예제 금지, 국제법상의 범죄, 인권침해 등 강행규범의 범위에 들어가는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중대한 침해에 대해서는 국가 간의 조약이라 하더라도 이들 인권 및 기본적 자유는 물론 그 침해의 결과 발생한 개인이 가지는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가령, 조약에서 포기되어도 그 조약은 무효이다.

 

또한 장은정(2015)에 따르면 UN은 1968년 ‘전쟁범죄와 인도에 대한 죄의 시효부적용에 관한 국제조약’을 채택하여 ‘국제법상 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에 대해서는 시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전쟁범죄를 비롯한 국제법상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배상청구권의 시효도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국제법상에서는 세계인권선언 제8조, 자유권규약 제2조 3항,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협약 제13조 등에 이러한 내용을 규정하며 ‘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배제론’을 보편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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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커스뉴스

 

이를 ‘위안부’ 문제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위안부’와 강제 징용을 비롯하여 일제의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반인도적인 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는 배상의무를 지닌다.

2. 국가 간 조약으로는 피해자가 가진 개인 배상청구권을 포기할 수 없다. 12.28 합의 후에도 ‘위안부’ 피해자는 지속해서 일본의 법적 책임 및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3. 일제가 ‘위안부’ 피해자에 가한 극악무도한 범죄는 국제인권법에 총체적으로 위반되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세계인권선언 8조, UN 채택 피해자권리장전 6조 등을 참조할 때,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원활한 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배상청구권의 시효는 소멸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위안부’ 생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여전히 유효하고, 전쟁범죄의 배상청구권의 시효는 무한하다는 점은 앞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투쟁이 있을 것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아내는 일을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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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프로. 12.28 이후 열린 30일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생존자의 모습.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찍이 건국대 조시현 교수는 “한국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의 태도와 많은 부분 닮은꼴임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시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역사와 법(2011)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일본에서 진행되는 배상소송에서 한국정부 차원의 소송지원은 필자가 알기로는 없으며 소송의 결과는 예외 없이 모두 원고패소로 귀착되어 일본에서 개인청구권을 통해 배상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한쪽으로는 한일 정부 차원에서 편의에 따라 과거와 역사문제를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상문제는 개인 차원의 문제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은 한일관계에서 양국 정부 모두 피해자 인권을 존중할 국가의 역할을 외면한 것이며, 국민/개인의 신뢰를 배반하고, 국가가 져야 할 의무와 책임의 방기로 여겨진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배상청구권이 있지만, 실제로 개인의 배상청구와 소송제기만으로 온전히 배상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국가의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조시현(2011)은 현재 상황을 두고 “피해여성들이 일본정부에게 책임을 물으면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라고 하고, 한국정부에 호소하면 외교적으로 보호해 줄 순 없고 개인적으로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의 순환론”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청산하려면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협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2011년 헌법재판소는 청구권협정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 정부의 입장 차이와 관련하여 “한국정부가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해결에 나서지 않아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에 위헌 결정을 내렸었다. 하지만 변한 건 없고, 피해자들은 12.28 합의문을 통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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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강덕경 씨가 그린 <책임자를 처벌하라>

 

“어차피 (정부는) 우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부는 국민에 대한 책임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글. 달래(sunmin5320@naver.com)

기획. 이설(yaliyalaj@gmail.com). 달래(sunmin5320@naver.com). 압생트(9fif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