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구매할 때 그 상품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은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다. 허위‧과장 광고가 처벌받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권리까지 갈 것 없이 우리는 몇천 원짜리 식사메뉴를 고르는 데도 몇 분씩 메뉴판을 쳐다보며 고심하곤 한다. 그런데 몇천 원이 아니라 수백만 원짜리 소비라면? 더 열심히 심사숙고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수강신청이 바로 이 수백만 원짜리 소비*다. 사립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인문계의 경우 300만 원, 이공계의 경우 4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고등교육의 소비자인 대학생들은 수백만 원을 내면서도 수강신청 전에 강의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강의계획서’가 제때에 올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강신청은 일반적인 소비와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본부가 지식에 비싼 값을 매겨 파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황을 감안해 비유했다.

 

강의명만 보고 수강신청 하라고?

 

강의계획서는 강의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평가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15~16주라는 긴 기간 동안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리포트 등 과제에 대한 정보도 포함하기 때문에 강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47962-1

ⓒ 단국대학교 학보사 <단대신문>

 

문제는 수강신청 이전에 강의계획서를 확인할 수 없는 강의가 많다는 것이다. 2013년 2월 한신대학교 학보사는 강의계획서 입력 기간이 지나도록 “971개 중 727개의 미등록 강의계획서가 있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정도는 다르지만 많은 대학이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경우에 학생들은 강의명과 교수만으로 어떤 강의를 들을지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올라온 강의계획서가 부실한 것도 많다. 교수가 정해진 양식 등을 지키지 않고 강의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강의계획서만으로 시험 일정이나 평가방법 등 기초적인 사항을 알 수 없어 사실상 강의계획서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제성 없는 강의계획서 업로드

 

강의계획서가 올라오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강의계획서를 제때 올려야 하는 강제성이 교수들에게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학기가 끝난 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강의평가에 관련 질문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전임교수의 경우 강의평가 결과에 크게 영향받지 않으므로 효과는 미미하다.

 

교직원 역시 강의계획서가 학생들에게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학보사의 관련 보도에서 담당 직원은 “수강정정 기간에 강의를 변경하면 되기 때문에 강의계획서를 입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학생들의 피해는 미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역시 서울대의 강의계획서 업로드 문제를 다루며 “(대학은) 수강신청 기간에 강의계획서를 공개하지 않은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 차원의 대응이 있기도 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담당 부서와의 면담을 통해 강의계획서를 제때 올릴 것을 촉구하는 메일을 보내도록 했으며, 학교 차원의 교원업적평가에서 강의계획서 업로드가 반영되는 점수를 높이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글. 아레오(areoj@daum.net)